1. 나만의 대상
2021년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현재, 부천만화대상 수상작들이 발표되었다. 수상작들 모두 뛰어난 작품이지만, 수상과는 별개로 각자의 한 해를 빛내준 자신만의 대상이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된 나윤희 작가의 <고래별>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 작품은 2020년도 오늘의 우리 만화 상과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드라마화도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고래별>은 ‘나만의’ 대상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훌륭한 작품이다.
2019년부터 시작해, 2021년 연재를 마친 <고래별>은 1926년 일제강점기 시대 속 조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6원에 군산의 친일파 집안으로 팔려 와 윤화 아가씨의 몸종으로 일하고 있는 17세 소녀 수아는, 자주 가던 바닷가에서 쓰러져있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불령선인이라며 쫓기고 있던 독립운동가 의현이었다. 그런 의현을 정성스레 간호해주면서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된 수아는 작별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그를 떠나보낸 것이 아쉬워 의현의 부탁을 들어주는 겸, 한 번 더 그를 만나기 위해 금화여관로 향한다. 그곳에서 수아는 의현의 동지, 해수와 연경의 계획을 엿듣게 되고, 그들은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 수아에게 양잿물을 먹여 죽임을 시도한다.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목소리를 잃게 된 수아는 모시던 아가씨의 자살로 있을 곳마저 잃게 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녀는 복수를 위해 독립 운동가들의 접선지, 고래별로 향한다. 과연 수아는 그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인어공주 같은 수아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2. 동양에 서양을 섞다
<고래별>은 독립운동을 큰 주제로 잡고 있는 만큼, 어둡고 비극적인 스토리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 독립운동이라는 주제에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한 로맨스를 가미하면서 암울하기만 한 작품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주고 있다. 동양적인 작품에 서양의 동화를 자연스럽게 녹이고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철하고 있다는 점은 이 작품만의 색다른 매력이다.
그 어떤 작품보다 동양적일 수밖에 없는 작품에서 서양 동화라니, 조금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래별>은 인어공주의 큰 틀, 왕자님을 바닷가에서 구하고 그를 다시 한번 만나는 대가로 목소리를 잃은 채, 끝내는 왕자 대신 희생하는 이야기를 독립운동과 엮어, 억지스러운 부분 없이 매끄럽게 진행하고 있다. 이를 가능했던 것은 바로, 왕자가 사랑한 이웃나라 공주가 특정한 인물이 아닌, 조선이라는 점이다. 이 작품은 장르가 로맨스인 만큼 다양한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작품 속 가장 크게 다뤄지는 사랑이란 감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이 아닌, 바로 ‘애국’이다. 왕자가 사랑한 대상이 인물이었다면, 독립운동이라는 주제가 로맨스에 묻혀 희석되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고래별>은 애국 또한 하나의 사랑으로 표현해 주제 의식도 잃지 않고, 사랑 이야기 또한 진부하지 않게 풀어나간다.
3. 민족의 정신을 기린 작품
자유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막을 수 있을까? <고래별>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있다. 수아가 모시는 아가씨, 윤화는 부잣집에서 나고 자라 부족함 없는 생활을 보냈지만, 그녀는 사실 오라버니들과 똑같이 학문을 배우고 싶어 했으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런 윤화의 꿈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겐 그저 주제넘은 투정일 뿐이었다. 윤화의 아버지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딸을 나이 많은 일본 경부에게 시집보내려 하고, 윤화는 머리를 짧게 자르며 스스로의 뜻대로 살아본 적도 없이 죽고 싶지는 않다고 항의를 해보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연못에서 자살하고 만다.
윤화는 여자로 태어난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자유를 찾아, 절망할 자유도, 파멸할 자유도 모두 자신의 것이라 말하며 세상을 떠난다. 작품에서 다뤄지는 독립운동도 윤화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타국에 지배받지 않는, 조선의 자유를 갈망하며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막을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지배하고, 자유를 박탈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가 현재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운 덕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래별>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꼭 한번 읽어 보아야 할 뜻깊은 작품이다.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대한 독립 만세’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말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잊지 못할, 잊어서는 안 되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고래별>을 우리나라, 우리 민족만의 대상이라 칭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