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도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 <인력거 일기>
크리스마스가 있는 연말은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필자에게도 괜한 설렘을 가져다줍니다. 밤이 긴 겨울을 좋아하지 않지만, 연말 분위기를 즐기며 다른 때보다도 활력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러나 거리를 거닐며 온통 반짝이 전구를 휘감고 있는 가로수를 보며 갖던 기대감과 가게마다 튼 캐롤을 듣는 설렘이 올해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수고했다는 격려를 나누며 느꼈던 다정함이 없는 겨울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덕분에 유튜브에는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플레이리스트가 업로드됐지만 영 흥이 나지 않는 연말입니다. 모두에게 쓰린 한 해였지만 자리를 지켜준 모두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며 오늘은 그런 일 년을 버텨낸 만화가의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사실 만화 작업은 실내에서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생각할 수 있지만, 여행 만화를 그리는 작가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페달조 작가님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여행과 관련된 만화를 그려 오셨습니다. 코로나로 해외 출국이 어려워지면서 계획했던 여행을 취소하고 소재 고민을 하던 차, 본인의 또 다른 직업인 인력거 가이드를 떠올렸습니다. <인력거 일기>에는 다년간 인력거를 몰며 북촌 주변을 투어 해 온 작가님의 노하우와 숨겨진 명소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북촌에 가 본 분들이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종종 아담한 건물이 모인 길을 걷다 보면 인력거를 마주칠 때가 있었다는 걸 만화를 보며 다시 깨닫게 됐습니다. 저는 외국인 대상 이벤트라 생각해 한 번도 인력거를 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지만, 작가님이 그려나가신 일기를 보다 보면 서촌과 북촌, 광화문 일대에 대한 여행 루트를 꼭 한 번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익숙한 전경이 그려진 컷을 보며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제가 갖고 있던 추억을 새삼스레 꺼내 보게 됩니다. 또 제가 거닐었던 길의 이야기를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하고, 숨겨져 있던 명소를 알게 됩니다. 아마 이 일대를 많이 알고 계신 분들도 이런 곳이? 혹은 이런 이야기가? 하는 순간이 분명히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코로나로 인해 작가님의 일터도 많이 변화했지만 여전히 만화를 보면서 각자의 이야기로 왁자지껄했던 일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님의 섬세한 관찰력 덕분에 더욱더 따뜻한 만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처마 위에 앉은 고양이를 최초 목격한 날짜와 마지막으로 목격한 날짜를 적어 두고, 골목길의 유행을 캐치 해 하나의 관람 코스로 만들어냅니다. 이런 섬세함은 고객의 특성을 빠르게 파악해 그때그때 다른 코스를 짜내는 데에서도 드러납니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인력거에 탄 부모님을 위해서는 최대한 한적한 골목을 돌면서 잠든 아이를 깨우지 않도록 하고, 이런 서비스가 불편한 어르신을 위해서는 많은 이들이 인력거를 타보고 싶어 하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심리적으로 편안해지도록 유도합니다. 다양한 국적으로 이루어진 고객도 완벽하게 만족시키죠. 누군가에겐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작가님 덕으로 놓치고 지나갔던 일상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오매불망 일상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시간이 쌓여 어느새 2년이란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2년이란 시간이 정말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마스크를 쓰는 게 어색하던 시간이 지나 이젠 마스크를 벗는 게 어색해졌습니다. 서로의 눈만 기억하는 사이도 많아졌습니다. <인력거 일기>에 나오는 명소를 마스크 없이 거닐며 미소가 담긴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이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코로나라는 사태로 <인력거 일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관광객이 줄었지만, 오늘도 힘차게 페달을 밟고 계실 페달조 작가님과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응원의 말을 남깁니다. 모임이 힘들어진 지금 <인력거 일기>의 인정을 느끼며 페달조님의 숨겨진 북촌 명소를 코로나가 끝나면 방문해 볼 장소에 추가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