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의 활용을 통한 압도적 연출의 힘 : <광장>
흔히 범작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클리셰 덩어리라 표현한다. 사전적 의미로 클리셰란 상투적 줄거리 혹은 전형적인 수법을 말한다. 즉, 클리셰 덩어리라는 말은 상투적 줄거리와 전형적 수법의 집합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클리셰가 과연 나쁠까?
필자가 생각하기엔 클리셰란 조미료와 같다.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서 안정적이고 대중적인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안정성과 대중성이야말로 웹툰이라는 장르에 요구되는 미덕 중 하나이다. 클리셰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대중성과 보편성과 접근성이 달라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광장>은 경우 올해 만난 웹툰 중 이 클리셰를 가장 잘 활용한 작품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광장>이 표방하는 느와르 장르의 특성상 클리셰의 활용은 더욱 강조되는데, 느와르 장르에 익숙한 이들이 원하는 서사와 인물, 구도 등을 얼마나 적절하게 사용하느냐가 대중에게 좋은 느와르 작품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느와르 장르를 통해 느끼게 되는 카타르시스는 클리셰들이 얼마나 적절하게 구성되었으며 잘 전달되는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혹 공감이 안 되신다면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봐왔던 느와르 영화들을 떠올려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어두운 뒷골목의 삶, 폭력, 복수, 우정 등이 항상 사용되고 있음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웅본색>에서 <신세계>에 이르기까지 여러분들이 익숙했던 영화의 대부분은 앞서 언급한 소재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얼마나 잘 활용했는지가 그 작품들에 대한 평가를 갈랐을 뿐이다.
<광장>의 서사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은둔 고수의 복수극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설적인 깡패였던 기준이 동생 기석의 죽음을 통해 현역으로 복귀를 하고 복수를 이루어내는 과정은 그동안 우리들이 흔히 접해왔던 느와르물의 익숙한 서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우리들은 이 작품의 처음 5화 정도만 보더라도 그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느와르 장르의 윤리를 생각해보자면 기석은 복수에 실패하거나, 혹은 성공하더라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하지만 이러한 진부함은 <광장>을 감상하는 데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익숙한 클리셰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분위기와 연출에만 독자가 집중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같은 부분은 이 작품의 영리함과 대범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부분이다. 기실 클리셰를 사용하는 것은 항상 부담이다. 그 적절함이 조금만 지나치더라도 진부한 작품의 평가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장>의 경우 군더더기는 모두 클리셰를 통해 해결하고 작품이 보여줄 수 있는 압도적인 분위기와 폭력에 대한 연출에 집중한다. “앞뒤 다 쳐서 이 씬의 NO.1”이라는 남기준을 표현하는 수식은 그대로 작품에 투영된다. 작품은 세세한 서사에 집중하지 않고 오직 기준의 복수 궤적만을 쫒는다. 이 집요함은 기준의 폭력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야만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기준의 폭력은 이 작품의 본질이 복수와 폭력에 맞춰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연출은 독자들이 오롯이 기준의 복수와 폭력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며 기준이라는 인물에 몰입하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몰입이 고조될수록 그의 비극적 결말에 대해 예감을 하게 되고, 그 예감하는 결말을 확인했을 때 독자들은 느와르 라는 장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양가적 감정, 카타르시스와 허무를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잘 만든 느와르를 만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이유들 때문이다. 느와르 라는 장르는 클리셰를 기반으로 하기에,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장>은 이러한 어려움을 비웃기라도 하듯, 클리셰를 앞장세워 자신만의 연출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클리셰의 적절한 활용, 이를 통한 연출의 극대화,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서사의 완결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작품. 완성형 느와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준 <광장>이야말로 올해 최고의 웹툰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