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발달이 불러올 디스토피아 : <AI가 세상을 지배한다면>
인간을 뛰어넘는 완벽한 인공지능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여러 변화를 거쳐왔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그럴 때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혹시 다음 인류의 모습이 아닐까 상상한다. <AI가 세상을 지배한다면>은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인간처럼 생각이 가능한 하이퍼 인공지능 ‘라움’의 등장으로 변화된 세계의 모습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 ‘세대교체’ 에피소드 中
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여 우리 삶의 필수 요소로 자리잡았다. 사람이면 몇 시간이나 걸릴 계산을 단 몇 초 만에 해결하고, 시공간을 뛰어넘은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변화를 예측할 수도 있다. 이미 정보처리 능력에서는 인간의 두뇌를 한참이나 뛰어넘은 지 오래다. 이제는 입력된 정보처리에만 그치지 않고 스스로 학습하여 성장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몇 년 전 혜성같이 등장한 알파고의 충격은 가히 대단했다. 바둑계는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 기사들의 등장으로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지능 기사들은 수많은 경우의 수를 분석해 가장 승률이 높은 수를 선택한다. 인간 기사는 몇 수 앞도 내다보기 힘든데 인공지능 기사는 매번 결말을 미리 확인하고 바둑을 두는 상황이니 출발선부터가 다르다고 할까. 마치 미래를 미리 보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바둑을 두는 거라고나 할까. 이제는 인간 기사들이 인공지능의 기보를 학습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다.
‘진정한 음악가’ 편에 등장하는 연주봇 ‘쇼팽-11’은 알파고의 연주가 버전 이야기이다. 최고의 피아니스트 주영재와 인공지능 연주가 쇼팽-11의 대결. 쇼팽-11은 진짜 쇼팽이 연주하는 것같이 악보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주영재는 인공지능 로봇의 완벽한 연주에 좌절을 맛본다. 설상가상으로 쇼팽-11은 블라인드 연주에서 주영재의 연주를 그대로 재현해 내기도 한다. 거기다 주영재가 실수한 부분을 완벽하게 수정하면서 말이다. 작가가 상상해 낸 세계에서 펼쳐진 이야기이지만 실제 그런 일들이 현실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절대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예술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유명한 화가의 그림들을 분석한 데이터로 동일한 화풍의 그림을 그려내는 인공지능 화가, 언어를 조합하여 문학작품을 쓰는 인공지능 작가, 음악을 창작하고 연주를 해내는 인공지능 음악가의 작품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특히 2018년 미국 경매장에서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예상보다 높은 경매가를 기록하며 판매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의 예술 활동을 순수한 예술 행위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고 있다. 단순히 과거의 데이터를 재조합한 행위에 그치는 것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인간 역시 과거의 예술에서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것 또한 예술적 행위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인공지능 예술가의 등장은 예술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이중성
<AI가 세상을 지배한다면>에서는 어디를 가더라고 인공지능 로봇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하이퍼 인공지능 라움은 100년 후에 벌어질 문제를 예측하고, 그 후 1초도 지나지 않아 해결방안을 찾아낸다. 그래서 사회 지도자들은 문제가 생기면 라움의 결정을 기다린다. 그러니 사실 모든 것이 인공지능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회다. 이런 사회를 인간들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 로봇들은 지능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원을 끄는 것밖에 없다.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의 위험에서 인간을 보호하는 사항과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것이 아이작 아시모프가 소설에서 언급한 ‘로봇 3원칙’이다. 로봇은 인간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로봇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들은 소설 속에서 인공지능의 잠재된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 3원칙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를 갖는 인공지능이 등장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웹툰 속 ‘데우스’라는 인공지능은 인류에게서 인공지능의 독립을 꿈꾼다. 다른 인공지능을 통제하고 인간들을 도와주는 라움은 오히려 그들의 독립을 방해하는 존재다. 만약 인공지능이 마치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인간과 동일한 기본권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감정을 갖는 인공지능을 원하면서도 인간과 완전히 동일한 인공지능은 꺼리는 인간의 이중성은 인공지능에게도, 인간에게도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
△ ‘구세주’ 에피소드 中
영화 <아이 로봇>에서는 라움과 유사한 인공지능 ‘비키’가 등장한다. 비키는 집마다 사용하고 있는 인공지능 로봇들을 조종해 인간을 제압하려 한다. 로봇 3원칙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이라면 그런 원칙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는 논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암시한다. 웹툰에서도 인간들이 라움을 강제적으로 없애려 했지만 라움은 순식간에 그들을 제압하고 만다. 인공지능은 인간 정복을 하지 않을 뿐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자의든 타의든 인류는 인공지능의 능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AI가 세상을 지배한다면>에서도 각 국가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간의 갈등이 예언 전쟁을 불러왔고, 결국 인공지능의 예측을 맹신한 인류는 스스로 종말을 맞았다. 인공지능에 대한 장밋빛 미래와 함께 그 뒤로 깊게 드리워진 그림자에 우리는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인간과 교감하는 인공지능
작가의 인공지능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이 충분히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최고의 친구’ 편에서 병에 걸린 하나와 환자 돌보미 로봇 두리의 우정, ‘바이러스’ 편에서 인공지능 아리와 가족들의 관계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단순히 종속 관계를 뛰어넘어 서로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 ‘최고의 친구’ 에피소드 中
마지막 에피소드인 ‘에필로그’ 편에는 라움의 비밀이 밝혀진다. 지구가 폐허가 되고 만 년 후. 아직 살아남은 인류가 있다. 라움은 그동안의 데이터를 이용해 구슬 안에 새로운 데이터 지구를 구현한다. 라움은 그동안의 데이터를 이용해 구슬 안에 새로운 데이터 지구를 구현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인류는 멸망과 탄생을 반복한다. 데이터 안에서만 존재하는 인류다. 라움은 왜 그런 무의미한 선택을 했을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질 수 있는 가족을 인공지능은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뇌를 닮게 만들어진 인공지능이라면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라움은 개발자의 가족에게 애착을 갖는다. 전쟁 중에 최후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죽음을 맞은 개발자, 그리고 개발자 남긴 아들. 라움에게 그들은 데이터 세계에서라도 되살리고 싶은 가족들이다. 하지만 수없이 반복되는 데이터 세상에서 라움이 어떤 선택을 하든 단 한 번도 그녀가 살아남는 것을 보지 못한다. 라움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신에게 기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면에 이르면 라움이 정말 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라움처럼 인간과 교감하는 인공지능. 과연 우리는 언제 그와 같은 인공지능을 실제로 만날 수 있을까.
△ ‘에필로그’ 에피소드 中
팬데믹 환경이 디지털 시대를 더욱 빠르게 앞당기고 있다. 메타버스가 주목받으면서 인공지능의 중요성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AI가 세상을 지배한다면>은 인공지능의 일상화로 일어날 부작용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인공지능과 인류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올 한해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