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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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드라마를 지켜보며 : <닥터앤닥터 육아일기>

2021-12-28 김민서


끝나지 않은 드라마를 지켜보며 : <닥터앤닥터 육아일기>


어느덧 한 해가 저무는 달이다. 12월 31일이나 1월 1일이나 겨우 하루 차이일 뿐인데, 우리는 시간이 흘러가는 하나의 사이클에 의미를 부여하고 연말이면 삶을 되돌아본다. 나는 잘 살아왔는지, 올해엔 어떤 의미 있는 일들이 일어났는지. 그리고는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왠지 영원이 남은 것 같은 앞으로의 생을 계획한다. 나에게는 얼마의 시간이 주어졌을까, 나의 죽음은 어디쯤에 있나 떠올려볼 때, 2021년은 유난히 죽음이 가깝게 느껴지는 해였다. 대부분의 웹툰 속 인물들은 마스크 없이 생활하고 있지만 현실의 우리는 2년째 백신과 마스크와 거리두기 속에서 살고 있다. 12월엔 죽음이 가까웠던 해를 마무리하고 이전과 같지만 새롭게 살아갈 새해를 맞이하며 볼 만한 웹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닥터앤닥터 육아일기>가 네이버 도전만화에서 정식연재에 입성하기까지 초반 인기 요인은 재미와 유익함이었다. 임신, 출산, 육아가 어떤 것이었는지, 베르와 안다는 그 과정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를 아주 솔직하게 전해 독자들의 마음을 얻었다. 부정적인 면모까지 가감 없이 보여주었지만 부정적으로 전달하지는 않았다. ‘이런 모습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배운 것, 자신이 느낀 어려움과 아름다움을 담아냈을 뿐이다. 육아가 어떤 것인지를 베르가 전공한 공학에 빗대어 표현한 신선한 개그도 한몫했다. 예를 들면 신생아를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진 않지만 하여튼 무언가 필요하면 사이렌을 울리고 끝없이 똥을 생산하는 10억짜리 자가학습 시스템 ‘알파똥’에 비유하는 식이다. 또한 임신했을 때 운동은 얼마나 해도 괜찮은지, 모유 수유는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지, 아이 훈육은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등 아이를 낳고 기를 계획이 있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했다. 첨가하게 되는 전문적인 정보에 대해서 논문 인용으로 출처를 밝혔던 것도 화제가 되었다.



제목에까지 포함된 ‘육아일기’라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성별과 연령층에서 사랑받은 것은 <닥터앤닥터 육아일기>가 단순히 아이에게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기르는 엄마와 아빠, 안다와 베르에게 집중해 두 인간의 이야기까지 담아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취미를 포기하고 공부에만 전념했던 고등학생 안다가 대학에 가서 방황했던 이야기, 아빠가 주 양육자인 가족으로 살면서 부딪혔던 편견, 박사과정 중 레서를 돌보느라 3년간 휴학을 했던 베르가 대학교로 돌아가 박사 학위를 따고, 예상치 못하게 웹툰 작가의 길을 겪게 된 과정까지. 우리에게 영원히 없을 일 같지만 그와 다른 삶을 살더라도 듣는 것이 의미가 있을 통찰을 녹여낸 이야기들이 담겼다.

육아일기로 시작한 <닥터앤닥터 육아일기>는 후반부에 이르러 삶과 죽음에 대한 베르의 생각이 주제가 된다. 베르가 소포성 림프종 4기 진단을 받으면서부터다. 이 시점부터 작품은 단순히 ‘재미있는 삶을 산 공학박사 육아빠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죽음이 정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진실을 직접 마주했던 사람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된다. 베르가 전하는 말들 중 필자가 가장 마음에 울림을 얻은 것은 215화의 이야기다. 인생의 급류를 타고 있다는 베르는 말한다. “설령 이 물살의 끝에 있는 게 폭포뿐이라고 해도 나는 눈앞의 바위를 피해 폭포까지는 갈 거야. 그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이야. 나는 포기하지 않아. 나는 내가 숨 쉬는 모든 순간을 살아갈 거야.” 2021년의 마지막을 앞두고 생각해본다. 나는 물살 속에서 노를 젓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나를 합리화하지는 않았나, 나는 숨 쉬는 순간들을 정말 살아가고 있었나.



어느 시점에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든 추천하고 싶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황폐해진 일상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더욱 보여주고 싶은 올해의 웹툰이다. 진실 가득한 육아일기로 시작해 한 인간의 끝나지 않은 드라마로 마무리한 작품. <닥터앤닥터 육아일기>를 정주행하며 올해를 마무리해보는 것은 어떨까.

필진이미지

김민서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