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
재미있고 감동적인 만화는 한번 손에 들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히게 마련이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흡입력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론 굉장한 흡입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속도가 유독 더딘 만화와 만나게 된다. 치매 어머니와의 교감을 다룬 만화, 가 바로 그런...
2014-01-27
김현국
재미있고 감동적인 만화는 한번 손에 들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히게 마련이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흡입력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론 굉장한 흡입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속도가 유독 더딘 만화와 만나게 된다. 치매 어머니와의 교감을 다룬 만화, <페코로스, 어머니를 만나러 갑니다>가 바로 그런 만화다. 일단 이 만화에는 아름다운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불안한 삶에 안도감을 선물한다. 순식간에 다 읽어 내릴 만한 요소를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한 장, 한 장 아껴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만화가 주는 행복감과 여운을 최대한 곱씹으며 길게 가지고 가기 위해서다.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어떻게 잘 살아가느냐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느냐의 문제도 매우 중요해졌다. 고령화가 만연한 세상엔 늙고 지친 사람들의 고단한 모습이 더 많이 보이게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은 것이 노인성 치매라 할 수 있다. 치매 환자를 돌보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힘겨운 모습들을 가끔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 아니면 여타의 매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몸서리친다. 우리 가족에게는 저런 힘든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치매’는 그 자체로도 힘들지만, 함께 겪어내어야 할 또 다른 가족의 불행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더 고통스런 대상이다. 그것은 남의 일이라면 위로와 격려의 대상이지만, 내 가족의 일이라면 더 없이 끔찍한 공포이다. 그런데 왜 이 만화는 치매 환자인 어머니와의 기억을 아름답게 반추해내고 있을까. 누가 뭐래도 ‘치매’라는 병은 드러내놓기 힘든 병이다. 그러나 무명만화가 오카노 유이치는 굳이 자비 출판이라는 방법까지 동원해 치매 환자 어머니를 만화를 통해 이야기했다. 그럼으로써 치매 환자인 미쓰에 할머니는 사랑과 헌신, 모성과 자애의 전도사가 되는 자격을 얻게 되었고 무명 만화가로 그럭저럭 평범함 삶을 이어가던 오카노 유이치는 일본에서 일약 유명 만화가가 됐다. 그리고 제42회 일본만화가협회상 시상식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오카노 유이치는 고향 나가사키를 벗어나 도쿄로 무작정 간다. 술에 취하면 어머니에게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말리며 유이치는 먼 미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 아버지의 나쁜 유전자가 분명 자신에게 이어져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어머니를 버려두고 도망가는 것밖에 없다. 원폭의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진 고향과 부모를 벗어나 꿈을 나름의 펼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만화가로서 인기를 얻지도 못했다. 그저 도쿄의 소규모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 경제의 활황을 떠받쳤던 거품이 사라질 즈음, 회사 일도 만만치 않고 개인사(이혼)까지 겹쳐 결국 그는 아들 마사키와 함께 고향의 품,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는 길을 택한다. 바야흐로 오카노 유이치의 제3의 인생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작은 양파’라는 뜻을 지닌 페코로스라는 필명으로 치매 어머니와의 삶을 잔잔한 필체로 그려 지역 정보지에 연재를 했다. 그리고 페코로스는 이렇게 시작한 만화를 모아 묶어 자비 출판을 한다. 그런데 그것이 뜻밖의 반응을 얻게 되고 서서히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 사이에 전파되기 시작한다. 작은 물결이 큰 파도가 됐다. 나가사키를 넘어 일본 전국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오르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도 않았다. 이후 NHK에서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지고 지난 가을 영화로 제작돼 전국 개봉을 통해 감동과 여운을 이어가기에 이른다. 어느 날, 미쓰에 할머니는 오십 줄을 훌쩍 넘긴 아들을 보고 당황한다. 당연히 있어야 할 머리카락이 안 보여, 자기 눈이 먼 줄 안다. 머리털이 빠져 대머리가 된 것으로 연결이 안 되는 할머니의 인지 능력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어느새 아들의 대머리를 신기한 듯, 찰싹찰싹 때리며 손맛을 즐기게 된다. 페코로스는 어머니가 때릴 때마다 아프지만, 또 아프지 않다. 이 만화는 이렇게 아픈 것을 아프지 않게 치환하는 감성이 지배하고 있다. 만화가 페코로스는 이 만화를 통해 단순히 어머니의 투병 생활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사실, 이 만화는 치매 할머니의 투병기가 아니다. 치매라는 병이 갖는 통상적인 증상을 매개로 하여 과거와 현재, 상처와 치유의 이분법적 관계를 분해하여 자연스럽게 한 두름으로 묶어낸다. 새벽녘. 잠에서 깬 미쓰에 할머니는 바느질을 한다. 단순하고 투박한 선으로 표현된 할머니의얼굴은 더 없이 평온하며 자애가 넘친다. 누구의 옷을 꿰매고 있는 것일까. 치매 증상으로 인지 능력은 어린 아기의 그것과 같지만, 할머니는 본능적으로 모성애를 드러내며 맏아들 페코로스가 입을 나들이옷을 기워주고 있는 것이다. 실과 바늘도 없이 자기가 덮고 있는 이불이 아들의 옷인 줄 알고 바느질을 하는 미쓰에 할머니. 우리는 이 장면을 만날 때 우리는 치매 할머니의 이상 증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을 발견하고 가슴이 먹먹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평생 조선소의 근로자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온 아버지는 술만 마셨다 하면 어머니를 구타하고 괴롭힌다. 평생 그렇게 참으며 살아온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삶이 이제 서서히 지려고 한다. 치매로 인해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어릴 적 못다 꿨던 꿈도 다시 꾸고 먼저 보낸 여동생도 마루미도 만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괴롭히던 남편을 만난다.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냈지만 미쓰에 할머니는 남편이 그립다. 아직 그를 용서하지 못해서일까? 모진 주먹다짐으로 아내를 윽박지르던 남편을 진정 용서하지 못해서일까? 그녀는 자꾸 남편을 소환한다. 꿈을 꾸듯 아버지와 대화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페코로스. 어머니는 비로소 꿈에서나마 아버지를 용서하는 듯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여위었다고 걱정한다. 아마도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렇게 남편도 다시 만날 수 있으니 치매도 그리 나쁜 게 아니네’라고 말이다. <페코로스, 어머니를 만나러 갑니다>는 만화 외에도 중간에 삽입된 글과 삽화가 배치돼 있다. 이 장치는 만화의 감동과 여운을 더 깊게 아우르는 촉진제로서 작용한다. 원폭 피해의 상흔을 드러내고 아직도 고향 나가사키 도처에 남아 있는 상처와 추억을 서정성 넘치는 글과 삽화로 표현해 내고 있다. 작가 페코로스는 성장기 고향에서의 기억을 이렇게 오롯이 되새김질하며 추억한다. 그 추억은 고생스럽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죽음을 앞둔 어머니 앞에 다시 선 페코로스. 그는 어머니의 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만화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아버지, 어머니, 자신에 대한 구원의 언어를 빚어내고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빼앗길 염려가 없는, 가족의 시간 속에서 반짝인다. 이 만화의 밑바닥엔 크게 세 가지의 상처가 돋아 있다. 2차대전 패전국인 일본에게는 지울 수 없는 원폭의 상흔과, 가족사의 불길한 징조와 불치의 병.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버텨내야 할 할 지난 3. 11후쿠시마 대재난이 그것이다. 이런 상처투성이의 감성을 안고 있는 만화 한 편이 아이러니하게도 위로를 준다. 그 위로는 ‘어떻게든 살아야지’ 한다는 희망의 불꽃을 지피고 있다. 정작 위로를 받아야 할 페코로스와 미쓰에 할머니가 우리에게 ‘괜찮다고, 잘 살아나갈 수 있을 거다’라고 응원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