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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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NIGHT Of DEMONS)

인간과 요괴의 공존, 그 기이한 환상특급 은 일본 작가 Ichiko Ima가 그린 일종의 ‘환상괴담’기로 밤에 행진하는 요괴나 귀신들에 대한 일본의 전설에서 모티프를 따온 만화다. 옴니버스 형식의 이 만화에는 매 편 다양한 요괴와 이야기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리...

2014-01-20 원은주
인간과 요괴의 공존, 그 기이한 환상특급 <백귀야행>은 일본 작가 Ichiko Ima가 그린 일종의 ‘환상괴담’기로 밤에 행진하는 요괴나 귀신들에 대한 일본의 전설에서 모티프를 따온 만화다. 옴니버스 형식의 이 만화에는 매 편 다양한 요괴와 이야기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리쓰’. 고등학생 소년으로 등장해서 느긋하게 나이를 먹어가는 중이다. 리쓰는 요괴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덕분에 보통 인간은 보지 못하는 이계의 존재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으며 그들과 때로는 교감하고 때로는 싸워가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리쓰의 삶은 그야말로 다이내믹 그 자체이며 독자는 리쓰를 통해서 오싹하고 슬프며 감동적이기도 한 신기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리쓰의 특별한 능력은 그 할아버지인 ‘가규’에서부터 시작됐는데, 환상 소설가로 유명했던 가규는 사실 리쓰보다 더 강력한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그는 요괴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루고 부릴 수 있는 선택받은 사람이었다. 가규의 그러한 능력은 그의 자손들에게까지 전해졌는데 그 중 가장 강력한 힘을 물려받은 사람이 바로 손자인 리쓰였다. 하지만 리쓰에게 할아버지가 물려준 능력이 늘 ‘축복’은 아니다. 인간에게 남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이 선물이자 축복만은 아닌 것은 리쓰도 마찬가지다. 요괴와 동거하는 소년의 눈을 통해 보는 인간 군상 환상소설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이이지마 료’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었는데, 그가 그리는 환상의 세계, 요괴, 이계의 이야기가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그가 직접 보고 경험한 일들이란 사실이다. 가규는 누구보다 강력한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요괴를 직접 다루거나 부릴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저승에서 여덟 요마를 불러내 그들을 조종했었다. 그리고 죽음이 닥쳐오자 그중 하나였던 ‘아오아라시’와 계약을 통해 손자인 ‘이이지마 리쓰’를 지키도록 명령했다. 그 계약 덕분에 리쓰는 아오아라시의 보호를 받게 된다. 아오아라시는 죽은 리쓰 아버지의 몸을 빌려 생활하며 이후 리쓰에게 위험이 닥칠 때마다 그를 구해주고 지켜준다. 물론, 그것은 주인이었던 가규와의 계약 때문이다. 리쓰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이상한 것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친구를 사귈 수도,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낼 수도 없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요괴가 끊이지 않았다. 어린 소년에게 그런 삶이 평탄할 리는 없다. 리쓰는 남들의 눈에 ‘이상한 아이’로 자라났지만, 자라면서 점점 그는 강해지고 섬세해지고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눈과 마음이 넓어진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세계, 그 안에 얽힌 다양한 사연과 관계를 알아가고 때로는 무시무시한 요마들과 싸우기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동시에 성장하게 된다. 리쓰는 일종의 퇴마사다. 인간 세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요괴를 퇴치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지 못했다면 깨닫지 못했을 여러 가지를 자연스럽게 배워간다. 리쓰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퇴마사로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자라고 성장하고 변한다. 리쓰가 성장하면 할수록 이야기는 더욱 다양하고 다채로워진다. 물론, 모든 이야기에서 리쓰가 중요한 역할을 하거나 요괴를 퇴치하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 그는 이야기의 주변인이나 엑스트라가 되기도 한다. 뛰어들거나 지켜보는 역할을 반복함으로써 이야기는 더 다채로워진다. <백귀야행>에는 리쓰 외에도 독특한 캐릭터가 많이 등장한다. 리쓰의 사촌이자 오랫동안 요마를 등에 달고 살았던 즈카사, 보지는 못하지만, 듣거나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사촌 아키라, 할아버지의 명으로 리쓰를 지키는 아오아라시와 자칭 리쓰의 부하인 까마귀 요괴 오지로, 오구로. 오랫동안 그림에 갇혀 있었다가 돌아온 카이 삼촌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들은 캐릭터에 다양성을 부여하며 크고 작은 재미를 더해준다. 그중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첫 등장 이후 종종 등장하는 오자키 여우와 그의 남편, 딸의 이야기를 다룬 <고리의 안>과 20년간 전신마비상태였던 여자가 다른 여자의 몸을 빌려 자신의 인생을 망쳤던 남자의 아들과 만나 풋풋하고 따뜻한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이야기 속 여자는 20년 전 한 음주운전자의 차에 치여 아들을 잃고 그 자신은 전신이 마비된 채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식물인간이 된다. 죽은 것과 다름없는 몸속에 갇힌 채 그녀는 점점 자신을 잊어가는 친척과 남편을 증오하며 ‘미움’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20년을 지낸 어느 날, 자신의 찾아온, 삶에 찌들어 초췌하게 지친 남자를 보게 된다. 그 남자가 바로 20년 전 음주운전자의 아들이었고 죽은 자신의 아들 또래의 어린 아들과 그 어머니가 도망간 남편을 대신해 막대한 배상금을 갚기 위해 지금껏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그때의 사고는 여자의 인생뿐 아니라 그들의 인생도 앗아간 것이다. 그제야 증오심은 사라지고 불쌍한 남자를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어진 여자는, 불륜으로 인생을 낭비한 채 죽어가던 젊은 여자의 몸에 들어가 이제는 청년이 된 어린 소년을 찾아가 그의 집안일을 도맡아 해주며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처음엔 경계하던 남자도 어느덧 여자에게 마음을 열고, 두 사람은 따뜻하고 행복한 새 미래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20년간 마음속에서 키워왔던 여자의 ‘증오심’은 그대로 사라진 게 아니었다. 자랄 만큼 자란 ‘증오심’은 여자가 더는 바라지 않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부정하려 하지만, 그 ‘증오심’이야말로 얼마 전까지 여자가 마음속에서 키워왔던 그녀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유명한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처럼 증오심은 여자와 분리되었지만, 그러나 여자의 과거이고 그녀의 속에서 나온 그녀 자체다. 이제 여자는 자신의 속에서 나와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진 ‘증오심’과 맞서 싸워야 한다. 작용, 반작용의 원칙이자 20년간 키워온 증오심의 대가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리쓰는 해결자가 아니라 관찰자로 등장한다. 철저한 조연이지만, 이 또한 <백귀야행>에서 리쓰가 맡고 있는 역할 중 하나이다. 주인공 1인 활약의 이야기는 집중도가 높은 만큼 소재 고갈의 위험이 큰 편인데 <백귀야행>은 주인공의 역할을 때에 따라 달리하며 그만큼 에피소드의 폭을 효과적으로 넓히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권이 더해질수록 리쓰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인데, 주인공의 존재감이 흐릿해지며 전반적으로 이야기 자체도 꽤 느슨해지고 정확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덕분에 초반부와 비교해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긴장감이나 쫀쫀한 재미가 떨어지기도 한다. 이는 옴니버스 스타일의 장기 연재작들이라면 자주 부딪히는 한계이자 넘어야 할 산이다. 밤을 잊기 딱 좋은,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 어찌 보면 독특한 소재이지만, 달리 보면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요괴도 사람을 도와주는 착한 요괴도, 사람의 말을 듣고 부림을 당하는 요괴도 사람과 선을 그어가며 살아가는 요괴도. 따지고 보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단지 요괴로 변형해 놓은 것뿐이다. 인간의 마음이 곧 천국이자 지옥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만화다. <백귀야행>은 현재도 계속 발간 중이다. 어차피 요괴를 소재로 인간적이거나 혹은 신기한 이야기를 계속 풀어내는 내용이니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인간 세상에는 놀랍거나 재미있거나 충격적인 일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의 민속을 소재로 한 귀신이나 요괴가 등장하는 등 다소 일본적인 색채가 강한 에피소드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야기의 재미나 캐릭터의 매력이 더 강하기 때문에 큰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또, 장기 옴니버스 연재작이다 보니 오래전 이야기와 최근의 이야기 사이에 연결되지 않는 점이나 상황, 배경 등의 설명이 불분명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점도 간간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백귀야행>은 충분히 재미있다. 이 겨울, 다소 무서워도 은근히 중독성 강한 <백귀야행>을 읽으며 밤을 잊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