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D기관’이야. 육군 최고의 스파이 기관이지.” 1938년 일본 육군은 ‘첩보, 모략’이라는 비밀전에 종사하는 전문요원양성을 목적으로 ‘육군 나카노 학교’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설립 초기에는 방첩연구소 내지 후방근무요원 양성소라고 불렀다고 한다. 설립 당시에는 도쿄 구단의 애국부인회 본부 별관을 빌려서 19명의 제 1기 학생을 같은 해 7월 17일부터 입소시켜 교육을 개시했다. 이 제 1기 학생 중에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현역 장교는 포함돼 있지 않았으며 전원이 간부 후보생 출신인 예비 소위였다고 한다. 교육내용은 2017시간에 달하는 다양한 커리큘럼(군사학, 외국어학, 무술, 암호, 세균학, 심리학, 범죄수법, 자동차 및 항공 실습, 폭파 실습 등)을 거쳐 전문적인 스파이를 양성하는 기관에 어울리는 것들로 구성하였으며, 제 1기 학생은 중퇴자 1명을 제외한 18명이 1939년 7월 31일 부로 졸업하여 육군성 및 참모본부에 수개월간 근무한 후 대공사관 소속 무관실이나 대륙의 특공기관으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육군 나카노 학교는 제 2차 세계대전 시기로 접어드는 1941년 무렵부터 남방 작전에 대응한 비밀전(점령지역에서의 행정, 선전 활동)을 중시하게 됐으며 전황이 열세로 기울기 시작한 1943년 이후에는 정규전의 열세를 메우기 위한 유격전에 큰 비중을 두었으나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과 함께 설립 7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일본의 스파이 양성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D의 마왕”에 등장하는 “D기관”은 바로 이 “육군 나카노 학교”를 모델로 한 것이며 따라서 이 작품은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일종의 팩션이라고 볼 수 있다. “D기관에는 ‘마왕’이란 별명을 가진 남자가 있어....소문에 따르면 배후에서 국제정치를 움직여온 첩보원인 모양인데, 같은 편의 배신으로 스파이 행위가 발각, 적국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지. 하지만 기적처럼 탈출...(중략)...그것도 적국 첩보기관의 기밀정보까지 몰래 빼내왔대. 그야말로 뼛속까지 스파이라고 하더군....오른손에는 고문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흰색 가죽장갑을 끼고 있으며, 잘은 모르지만, 지금은 그 당시의 후유증 때문에 지팡이 없이는 걷지를 못한다나봐. 그 사람이 바로 마왕, 유키 중좌야.” “D의 마왕”은, 일본에서 대중적 미스터리 추리 소설로 두터운 팬 층을 보유하고 있는 소설가 야나기 코지의 대표작 “조커게임”, “고스트” 두 편을 시모츠키 카요코라는 작화가가 만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스파이’를 소재로 한 작품답게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아주 잘 만들어진 만화로 보인다. “사쿠마씨, 쉽게 믿는 쪽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이곳은 스파이 양성소예요. 출신지, 연령, 본명, 모든 게 비밀이며 절대 노출시켜서는 안 돼요. 이곳에서는 ‘사실’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사쿠마씨. 한 가지 충고를 해드리자면, 군인칙유(軍人勅諭)에 나오는 신뢰라는 단어, 즉 동료, 신뢰라는 통념은, 이곳 ‘D’에서는 전혀 가치가 없어요. 오히려 치명적인 방해요소죠.” “D의 마왕” 1권은 ‘조커게임’과 ‘고스트’라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조커게임”은 총 5화의 분량, “고스트”는 총 2화의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개의 이야기가 “D기관”이라는 공통적인 배경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지만 별도의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자체적인 완결성을 갖고 있는 옴니버스 식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D기관에서는 밤낮으로 각 분야의 터무니없는 권위자를 초빙하여 강의를 열고 있었다. 폭약 및 독약의 취급, 8개 국어에 달하는 어학, 암호술에 금고털이, 비행기 조종에 사교댄스...혹은 생도들에 대한 고문 연습 실시, 더 나아가 여성의 성감대 지도에 이르기까지, 군인이 받는 교육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훈련이 실시됐다. 더군다나 그런 특이한 훈련을 별 어려움 없이 해치우고 훈련이 끝나면 밤거리로 몰려나가는 생도들...내가 졸업한 육군사관학교와는 모든 점이 다르다. 이곳은 ‘괴물’의 서식처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조커게임”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이자 뼛속까지 군인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는 투철한 육군 중위 사쿠마가, 평상시 “D기관”을 멸시하며 눈엣가시로 여기는 무토 대좌의 명령을 받고, 참모본부와 “D기관”사이의 연락책으로 파견되면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첫 번째 에피소드답게 작품의 무대가 되는 “D기관”을 차분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기능에 맞춰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스타일 자체가 “스파이”에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스파이”라는 존재 자체를 ‘비열하다’는 이유로 내심 멸시하고 있는 ‘정통파 군인’ 사쿠마가 “D기관”의 교육을 받으면서 서서히 내면의 변화를 겪어가는 이야기이다. 사실 작중의 주인공은 “D기관”의 수장, 유키 중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뼛속까지 스파이”인 그는 현재 현직에서 은퇴, 국익을 위해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는 중이며, “스파이”로서 자신의 노하우와 인맥 등을 철저한 교육을 통해 제자들에게 물려주고 있다. 그는 에피소드의 처음, 중간, 끝부분에 골고루 등장하며 에피소드의 분위기나 핵심내용을 수시로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이야기의 마무리에서 그의 스파이로서의 과거나 동료의 배신으로 인한 상처, 지휘관으로서의 진심이나 실체가 조금씩 밝혀져 가는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고스트”는 “조커게임”에서 조연으로 등장해 “숙달된 스파이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D기관”의 제 1기생 미요시 소위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조커 게임”이 신입 교육생 사쿠마 중위의 내적인 변화를 통해 “D기관”의 실체를 상세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였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인 “고스트”는 제목 그대로 “스파이‘로서의 본격적인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하는 미요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D의 마왕”은 현재(2013.12.) 정식 한국어판으로 삼양출판사를 통해 1권만 나와 있는 상태다. 이야기의 탄탄한 짜임새와 에피소드의 흥미진진함, 특히 “스파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보여주는 당시의 치열한 국제정세와 기상천외한 사건 해결 장면들은 읽는 이를 만족시키는데 있어서 전혀 부족함이 없다. 다음 권이 무척이나 기다려지는 수작(秀作)이다. 독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