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포마스
“곤충은 영양가가 높으며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은 소나 돼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특히 누에는 견사 등의 쓰임새가 다양하며 함내에서 적은 양의 사료로도 키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수한 우주식량으로 연구되고 있다.” 만화를 그리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2014-01-08
김현우
“곤충은 영양가가 높으며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은 소나 돼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특히 누에는 견사 등의 쓰임새가 다양하며 함내에서 적은 양의 사료로도 키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수한 우주식량으로 연구되고 있다.” 만화를 그리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스토리, 그림, 연출, 편집, 구성, 설정 등등 많은 답들이 존재하겠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아닐까 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창작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장르의 특성상 상업적인 경쟁력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는 만화 분야에서,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은 다른 여타의 기술적인 요소들보다도 한발 앞서 창작에 원천적으로 필요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일 것이다. “500년 후의 화성에서 진화한 바퀴벌레와 맞닥뜨린 인류는 과연 어떻게 반격할 것인가?” 여기에 소개하는 일본만화 “테라포마스”는 이렇게 단 한 문장으로 표현된 작가의 기상천외한 상상력에 매끄러운 스토리와 강렬한 느낌의 작화, 박진감 넘치는 연출을 덧대어 “최강의 재미를 선사하는 상업적인 만화”로 탄생시킨 작품으로, “만화왕국 일본의 저력”이 2013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만화다. “그래서 지금도, 지구의 인구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인구 급증과 함께, 환경파괴며 에너지 문제로 인해 지구는 언제 폭발할지 모릅니다. 그럴 때에 대비해 ‘화성을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이것을 ‘테라포밍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건 다들 알고 있겠죠. 원래 화성은 평균 기온이 마이너스 58도밖에 안 됐습니다. 화성의 대기가 0.006기압밖에 안 돼 태양광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에이~ 그럼 인간은 절대 살 수 없잖아’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겠죠? 그런데!! 화성 지하에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얼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일단 화성을 데우기 시작하면 그 CO2가 녹을 것이고...CO2의 온실효과로 화성이 점점 따뜻해질 거라 생각했죠...그럼 무슨 수로 화성을 데울 것인가...20세기 과학자들은 생각했습니다. 어떤 ‘이끼’와 ‘검은 생물’을 화성에 대량으로 풀어, 지표를 검게 물들임으로써 태양광을 흡수해 화성을 데우자고 말이죠. 화성의 환경에서도 아슬아슬하게 살 수 있는 그 생물이...이끼를 먹으며 활동범위를 넓히고 그 시체에서 다시 이끼가 자라고...그 연쇄작용에 의해 화성을 데우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 겁니다. 여기서 그 ‘생물’이란 바퀴벌레입니다.” “테라포마스”는 2013년 “이 만화가 대단하다! 남자 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히트작이다. 띠지에 박혀있는 “공포와 충격의 SF만화”라는 홍보문구는 절대 거짓이 아니다. 단언컨대 근 10여 년간 이 정도로 충격적이고 재미있는 SF만화를, 적어도 난 본적이 없다. “화성의 지구화 계획을 위해 이끼와 바퀴벌레를 대량으로 살포한다.”는 설정도 놀라웠지만, 500여년의 시간을 거쳐 무시무시한 화성의 지배자로 진화한 바퀴벌레들과 화성을 되찾으려는 인간이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도 매 화마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흥미진진함의 연속이다. SF만화로서의 필수조건인 과학적 기반에 근거한 디테일한 설정, 속도감과 박진감이 강렬하다 못해 충격적으로까지 다가오는 ‘액션활극’만화로서의 구성과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집중하면서도 이야기 전개에 충실하기 위해 주요 캐릭터들을 과감한 방식으로 정리해나가는, 단호함이 느껴지는 스토리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작화가 어우러져 ‘극강의 재미’를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500년 전, 우리 선조는 화성의 지구화 계획의 일환으로 바퀴벌레를 풀었다. 하지만 그들은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생물의 법칙이란 것을, 무제한으로 쏟아지는 우주 방사선에 마이너스 80도의 기온...이토록 가혹한 환경은 마침내...지구에서 3억년 동안 모습을 바꾸지 않았던 바퀴벌레를 진화시켰던 것이다. 선대 우주함 ‘벅스 1호’는 아마도 그것들의 습격을 받아 괴멸했을 것이다. 우주비행사의 힘과 갖고 있던 무기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봐서 상당히 많은 수거나 아니면 한 마리, 한 마리의 전투력이, 매우 높거나...추위에 견디기 위해 거대해지는 경우는 자주 있지만 어쩌면 바퀴벌레의 본래의 기능인 민첩성과 강인함, 단단한 등껍질 등이, 그대로 남았다면...보통 인간의 힘으로 퇴치하는 건...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테라포마스”의 정식 한국어판은 현재(2013.12.) 3권까지 출간되어있다. “테라포마스” 1권은, 이 장대한 이야기의 서막에 아주 잘 어울리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의 도입부는 서기 2599년에 유인우주선 ‘벅스 2호’가 선발된 15인의 남녀를 태우고 온통 초록이 뒤덮인 별로 변한 화성으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왜 ‘벅스 1호’가 아니고 ‘2호’인 것일까?”이다. 원래 ‘벅스 1호’는 최고로 우수한 우주비행사들을 선발하여 화성으로 보낸 최초의 유인 탐사선이었으나 도착한지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어떤 생물’의 습격을 받아 모두 전멸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작은 수확은 있었다. 기존에 지니고 있던 장점은 모두 갖춘 채 인간의 형태로 진화한 바퀴벌레 ‘테라포마’의 힘과 지능의 수준을 알 수 있었고, ‘테라포마’의 ‘알’ 하나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각국의 우주탐사국은 연합하여 1호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벅스 2호’ 계획을 변화시켜 실시하는데, 그 결과 2호 계획은 전과는 매우 다른 형태의 독특한 계획으로 변모하게 된다. 먼저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승무원의 선발에 있어, 우수한 능력과 재능 및 경험을 갖춘 엘리트 요원이 아니라 단순히 “돈이 필요해서 ‘인권’을 포기한 사람들”로 선발한다. 이스라엘 무장 세력의 손에서 성장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하는 고아, 너무 가난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스스로 지원한 청년, 양부에게 성폭행당해 망가진 소녀와 그 양부를 살해한 소녀의 소꿉친구 소년, 내전상태에 빠진 혼란스러운 국가에서 모든 것을 잃은 남녀, 정치적인 이유로 우주비행사의 꿈이 좌절된 남자 등등 지구에서는 더 이상의 미래가 없는 절박한 사람들에게 막대한 돈을 주고 그들의 생명을 담보로 잡아 화성으로 보내는 것이다. 두 번째로 달라진 점은, 화성의 지배자로 자리 잡은 강대한 적, 바퀴벌레의 진화형태 ‘테라포마’에게 대항하기 위해 ‘벅스 수술’이라는, 생존율 30%밖에 되지 않는 특수한 수술을 돈을 받고 인권을 포기한 승무원들에게 시행하는 것이다. 이 수술의 개요는 인간의 체내에 곤충의 능력을 결합시키는 것으로 이 수술을 받고 살아남은 승무원들은 ‘곤충인간’으로 변해 ‘테라포마’와 맞설 수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니게 된다. 더 이상의 설명은 스포일러가 되니 자제하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1권만 읽어보시라.” 아마도 이 작품의 강력한 재미에 빠져 정신없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만화는 정말 만나기가 쉽지 않다. 다음 권이 간절하게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