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영화편

“어릴 때 보았던 재미있는 영화를 다시 보면 그 작품마다 그걸 보았던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나고 그때마다 난 무척이나 행복한 기분에 휩싸인다. 참 신기하게도 영화의 힘에 이끌려나온 기억 속에는 불행했던 상황이 쏙 빠져 누락되어있다. 난 언제나 경쾌하게 웃고, 솔...

2013-12-19 김현우
“어릴 때 보았던 재미있는 영화를 다시 보면 그 작품마다 그걸 보았던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나고 그때마다 난 무척이나 행복한 기분에 휩싸인다. 참 신기하게도 영화의 힘에 이끌려나온 기억 속에는 불행했던 상황이 쏙 빠져 누락되어있다. 난 언제나 경쾌하게 웃고, 솔직하게 울고, 정신없이 친구와 토론하고 발랄하게 자전거를 몰고 있었다.” “고(GO)”,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영화처럼”이 만화로 각색되어 대원씨아이를 통해 정식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재일교포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문학상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한 가네시로 가즈키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정체성의 혼란을 오히려 가볍고 유쾌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작 소설인 “영화처럼”에서는 다섯 편의 영화를 계기로 펼쳐지는 청춘과 인생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으며, 북폴리오라는 출판사를 통해 한국어 번역본으로도 출간되어 있다. 만화로 각색된 “영화처럼”의 한국어판 제목은 “영화편”이다. 현재(2013.11.) 2권까지 출간되어 있다. “이 날, 난 영화 제작현장에 와있었다. 내 데뷔 소설이 영화화되어 영화감독에게 초대받은 것이다. 인생 최고의 날이 됐어야 할 이 날, 난 뜻밖의 인물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 소설은 영화가 주는 용기와 행복감을 기억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의, 로맨스, 복수, 우정, 그리고 웃음과 감동을 그린 5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 속 사건들은 영화를 매개로 발생한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울고 웃고 감동받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우정을 쌓아가고 사랑하고 세상을 바꿀 용기를 얻는다. <태양은 가득히>는 사랑보다 진한 두 친구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정무문>은 남편의 자살 후 세상과 싸우기로 결심한 아내의 정의를 보여준다. <프랭키와 자니>는 탈출을 꿈꾸는 두 고등학생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페일 라이더>는 오토바이와 가죽 재킷으로 무장한 중년 아줌마의 화끈한 복수를 그렸다. <사랑의 샘>은 할머니를 위해 뭉친 손자들이 선사하는 웃음과 감동을 담고 있다.」 -북폴리오 제공, “영화처럼” 책 소개에서 인용 위의 원작 소설 소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만화는 기존에 출간된 원작 소설을 만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작화가는 엔도 카요, 출판사는 소학관이다. 대원씨아이를 통해 현재 출간된 한국어판 2권까지는 원작소설에 나오는 다섯 편의 영화 중 “태양의 가득히”, “정무문”, “프랭키와 자니 혹은 트루 로맨스”(4화까지)의 에피소드가 만화로 각색되어 수록되어 있다. “우리가 다니던 곳은 민족학교라는 간단히 말해 재일 북한인 아이들이 다니는 초중학교 통합교육 사립학교였고, 나와 용일이는 같은 학년, 같은 반이었는데...반 배정이 되고 석 달이 지나도록 말 한 마디 나눠본 적도 없었다. 용일이는 명랑하고 활발해서 항상 학급 아이들의 중심에 있었고 난 그 무렵 낯가림이 심하고 학교가 싫어서 걸핏하면 결석을 했다.” 이 작품의 원작자인 가네시로 가즈키는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상당히 많은 팬을 보유한 인기 소설가이자 출간된 작품 상당수가 영상과 만화로 옮겨진 유명 작가다. 특히 “플라이 대디 플라이”같은 작품의 경우 2005년에는 일본에서, 2006년에는 한국에서 영화화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한국판의 경우 이준기와 이문식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팬들이 열광하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신선한 문장과 특이한 설정은 그의 독특한 성장환경에서 기인한다. 1968년 일본 사이타마에서 태어난 그는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조총련계 초ㆍ중학교를 다녔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전향으로 인해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매국노 소리까지 들으며 일본인 학교로 전학 간 후에는 다시 한 번 일본인들의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고 한다. 일본 사회에서 차별과 정체성의 위기를 느끼던 어린 시절부터 현실로부터의 탈피를 꿈꾸며 영화와 독서에 탐닉하였던 그는 인권변호사를 꿈꾸며 게이오대 법학부에 진학했지만, 대학생활에 별다른 흥미를 못 느끼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 졸업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98년 “레볼루션 No. 3”로 ‘소설현대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첫 장편소설 “GO”로 123회 “나오키문학상”을 수상해 당시 ‘최연소 수상자’이자 재일한국인 최초의 수상자가 되었다. 또한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구보즈카 요스케가 주연한 한일 합작영화 “GO”도 대성공을 거뒀다. “GO”는 프로복서 출신이자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전향’으로 조총련계에서 민단계로 옮긴 재일동포 3세 고등학생이 일본인 소녀와의 연애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하고 일본사회에 내재한 민족차별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 성장소설이다.(한국어판으로 만화, 소설이 출간) 대표작인 “GO”를 비롯해 “레볼루션 No. 3”, “플라이, 대디, 플라이”, “연애소설”, “SPEED”에 이르기까지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오히려 날아갈 듯 가볍고 유쾌한 필치로 그려낸 것으로 유명하며, 특유의 유머와 매력적인 인물의 창조로 국내외에 수많은 팬을 탄생시켰다. 또한 템포가 빠르고 감각적이어서 영화화된 작품도 유난히 많은데, “GO”(일본), “플라이, 대디, 플라이”(일본, 한국) 등이 있다. 드라마 극본인 “SP”는 가네시로 가즈키가 직접 작성한 시나리오로 화제가 되었으며, 일본 후지TV에서 드라마 “SP”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모았다. 특히 가네시로 가즈키의 “더 좀비스 시리즈”라 불리는 3부작 “레볼루션 No. 3”, “플라이 대디 플라이”, “스피드”는 만화와 소설 모두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어 있다. “이날 일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상영개시를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자 불이 천천히 꺼지기 시작하고 스크린을 덮고 있던 커튼이 서서히 걷혀간다. 그리고 우리는 가슴 설레는 어둠에 휩싸인다.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재일북한인도, 재일한국인도, 일본인도, 미국인도 아니고 스크린 속에서 돌아다니는 등장인물이 될 수 있다. 엿 같은 현실로부터 아주 잠깐 동안 우리를 탈출시켜주는 것이다.” 요 근래에 본 만화 중에 가장 독특했고,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잔한 정서를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원작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로, 책장을 덮자 무언가 가슴에 앙금이 잔잔하게 남는 만화였는데, 전체적으로 익숙하게 느껴지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무언가 굉장히 이질적인 것이 가끔씩 강렬하게 튀어나오는, 아주 신선한 경험이었다. 작품이 품고 있는 이런 특별한 정서는 아마도 원작자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독특한 이력에서부터 기인한 것 이라 보여 진다. 정체성의 혼란을 ‘유쾌함’과 ‘보편성’이라는 무기로 극복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영화처럼”을 만화로 바꾼 “영화편”, 원작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신 분이라면 만화만이 주는 색다름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원작 소설을 읽어보시지 않은 분이라면 아주 신선하고 독특한 느낌의 웰메이드 만화를 만나보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