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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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3 : 디럭스 에디션

태국 치앙마이 북부에는 코끼리 자연 공원이라는 곳이 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코끼리 자연 공원이라는 이름보다는 ‘코끼리의 낙원’이라는 이름을 더 즐겨 사용한다. 태국에서 벌목 현장에서 목재 운송 수단으로 이용되던 코끼리들. 인간과 비슷한 수명을 가진 이 크...

2013-12-13 이규원
태국 치앙마이 북부에는 코끼리 자연 공원이라는 곳이 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코끼리 자연 공원이라는 이름보다는 ‘코끼리의 낙원’이라는 이름을 더 즐겨 사용한다. 태국에서 벌목 현장에서 목재 운송 수단으로 이용되던 코끼리들. 인간과 비슷한 수명을 가진 이 크고 온순한 동물들은 평생을 무거운 목재를 운반하는 고된 노동을 하며 살았다. 노동 조건은 사람보다 훨씬 열악하다. 중장비들이나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떠서부터 해 질 때까지 하는 것은 우리나라 전래 동화에 나오는 주인 구한 개 이야기처럼 조련사인 마후트에 대한 코끼리의 충성심과 미담으로 아무리 덮어 본들 미화되고 포장되기 힘든 잔인하고 고통스런 노동이다. 뱃속에 아이를 가진 코끼리라고 봐주는 법은 없다. 코끼리 자연 공원에 살고 있는 조키아라는 이름의 한 코끼리는 목재 운반 일을 하는 도중에 출산을 했다. 엄마의 배에서 빠져나온 새끼 코끼리는 바닥에 떨어져 언덕을 굴러 내려가 목재더미에 깔려 죽었다. 아기를 잃은 엄마 코끼리는 슬픔에 잠겨 노동을 거부하다가 주인에게 눈을 찔려 장님이 되었고, 그 후로도 계속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가 구조되었다. 1985년 태국에서는 벌목 현장에서 코끼리가 일하는 것을 금지한 이후 코끼리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코끼리의 사육사인 마후트와 코끼리는 공생 관계다. 코끼리가 돈을 벌어야 마후트도 생계를 이을 수 있고, 코끼리도 먹이를 마련할 수 있다. 그래서 벌목 현장 대신 선택한 대안이 흔히 볼 수 있는 코끼리 트래킹. 관광객들을 등에 올려 태우고 관람을 시켜주는 일들이다. 어떤 코끼리들은 서커스 극단으로 팔려가서 재주를 부리고, 어떤 코끼리들은 도로변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상대로 구걸을 한다. 도로에서 구걸하던 코끼리들 중에는 자동차나 기차에 치여 죽거나 큰 부상을 입는 녀석들도 있다. 그것마저 안 되는 코끼리들은 강제 교배소로 끌려가 새끼 코끼리를 낳는 데 이용된다. 이곳에서 여자 코끼리는 아이를 밸 때까지 수십 차례씩 강제로 교배를 당한다. 메도라는 이름의 한 코끼리는 이런 과정에서 골반이 내려앉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몸이 되었다. 그렇게 새끼 코끼리가 태어나면 다시 잔인한 길들이기 과정이 이어진다. 정글의 낭만처럼 느껴지는 코끼리 트래킹의 이면에는 만약 사람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치를 떨고 분노할지 모르는 너무나도 잔인한 현실이 존재한다. 코끼리 자연 공원을 세운 렉 여사는 ‘코끼리 엄마’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의 활동은 태국에서만 그치지 않고, 인접국인 미얀마와 인도에까지 이른다. 미얀마에서 구해온 한 코끼리는 지뢰를 밟고 뒷발 뒤꿈치가 날아가고 없다. 그녀가 구출한 코끼리들은 저마다 온갖 슬픈 사연들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에게 상처입고 학대당한 끝에 마침내 ‘집’을 얻은 코끼리 자연공원의 코끼리들. 처음에는 선뜻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잔뜩 경계했다고 한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쓰다듬고 그들이 겪은 고통을 깊이 공감하면서 마침내 코끼리들은 서서히 마음을 열고 렉과 코끼리 자연공원의 봉사자들과 친구가 되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30~40명의 봉사자들은 코끼리들이 먹을 풀을 베고, 음식을 마련하고, 그들의 방을 깨끗하게 청소해주고 산책과 목욕을 시켜주며 매일을 보낸다. 렉 여사가 돌보는 동물은 코끼리만이 아니다. 이곳에는 개와 고양이들도 다 합쳐 100여마리가 넘는 숫자가 살고 있다. 이들은 홍수와 재난 현장, 혹은 길거리를 방황하다가 자동차에 치인 개와 고양이들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TV 프로그램에서나 간혹 볼 수 있는 다리 세개 밖에 없는 동물들은 오히려 이곳에선 흔하다. 한쪽 다리가 없는 녀석, 뒷발 두 개가 더 없는 녀석들은 짖지도 않고 햇볕 아래서 하루종일 느긋하게 낮잠을 잔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일하는 봉사자들 주변을 멤돌다가 봉사자들의 무릎위에 기어오르기도 하고, 아예 등을 바닥에 깔고 대자로 누워서 쓰다듬어 달라고 장난을 친다. ‘코끼리의 낙원’으로 시작한 렉 여사는 어느새 ‘개와 고양이의 낙원’까지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렉 여사의 꿈은 그저 다친 동물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보살피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처음에 이곳에 코끼리의 낙원을 건설할 때, 인근의 마을 사람들, 정치인들의 많은 반대에 부딪혔었다. 그 인근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인 렉 여사는 마을 여성들을 불러모았다. 코끼리 자연 공원에서 필요한 일자리를 제공할 테니 와서 일하라고. 지금 그 여성들은 다른 노동자들보다 훨씬 높은 소득을 얻고 훌륭하게 자녀들을 성장시키고 있다. 인근의 남성들도 이곳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코끼리를 돌보거나 자연 공원 내에 건축물을 짓고 관리하는 일들이다. 놀랍게도 이런 작은 변화들이 이 지역에서 유독 많은 여성 리더들을 만들어내었으며, 최근의 선거에서도 여성 정치인이 당선되는 결과까지 낳았다. 다친 코끼리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한 렉의 꿈은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면서 지역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지역 경제를 만들고, 나라의 법을 변화시키고, 전 세계인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어마어마한 범위로 퍼져나가고 있다. 사람과 동물의 생명. 그 둘 중에 과연 어느 것이 가치가 있을까? 그랜트 모리슨과 프랭크 콰이어틀리의 그래픽 노블 를 읽다보면 이런 질문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친구를 가장해 동물에게 잔인함을 가르친 사람과 친구에게 배운 방식대로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는 동물. 과연 누가 더 살 가치가 있을까? 로잔느라는 박사가 길거리에서 주인을 잃고 방황하는 동물들을 데려와서 사람의 말을 가르친다. 동물들의 머리에는 칩이 이식되고, 팔다리에는 긴 쇠를 박아 넣고, 겉에 아이언맨의 아머와도 같은 갑옷을 입혀 조종하게 만든다. 어느 집에서 순둥이로 장난꾸러기로 귀염 받고 살았던 동물들은 적국의 리더와 권력가, 암흑가의 범죄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을 암살하여 세상을 정화(?)하는 치명적인 살인 병기로 변신한다. 이들의 핑계가 가관이다. 전쟁터에서 죽어갈 병사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동물들을 희생시킨다는 것. 그러니 로잔느라는 캐릭터에 얼핏 연민이 가긴 해도 마음은 가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가 동물들을 바라보는 눈에는 외롭고 고독하게 사는 자신에 대한 연민만이 가득했을 뿐 동물들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동물들을 의인화해서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 우화처럼 그녀는 그냥 동물들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의 최고조와 결말을 찍으려고만 했고, 그 결과 사람들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만다. 어찌보면 그녀는 동물과의 대화가 아니라 사람과의 대화가 더 필요했던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상부에서는 동물 병기 프로그램을 폐기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치명적인 병기들은 폐기하고 좀 더 조종이 원활한 것들로 대량 생산을 하라는 것. 로잔느는 일생을 건 연구가 문을 닫는 것에 좌절하여 동물들을 놓아주고, 이 때부터 동물들은 어디에도 있는지 모르는 ‘집’을 찾아 여행을 시작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들에게 집을 찾아주는 인물은 제 집도 없어서 길거리를 전전하는 노숙자다. 동물들은 자신들을 쫓는 군대를 따돌려주고 햄버거까지 나눠준 이 착한 노숙자에게서 ‘집’을 찾는다. 재미있게도 그랜트 모리슨이 이 그래픽 노블을 쓸 때 동물의 뇌에 칩을 이식해서 원격조종한다는 연구가 뉴스를 통해서 발표됐었다고 한다. 사람의 상상력은 다 비슷비슷하다는 게 신기하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또 그런 동물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한없이 부어주면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도 정말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그의 상상도 지구촌 한 곳에서 실제로 실현되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집도 없는 노숙자가 동물들에게 집이 되어주고, 자기 통장조차 없었던 렉 여사가 동물들에게 낙원을 찾아 주는 비결. 그 첫걸음이 무엇으로 시작되는가에 대해서 이 그래픽 노블은 노숙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대답해 준다. ‘애정과 관심이면 돼요. 먹다 남은 밥도 좀 주고요. 이 아이들은 제게 행운을 가져다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