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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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드맨 (옹고로의 가면)

“기완 족 소년 코도와라고 한단다. 나이는 나미코랑 비슷할 거야. 잠시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했단다. 갑작스러운 이야기라 깜짝 놀랐지? 그쪽에서 이래저래 일이 좀 있었거든. 뉴기니도 요즘은 꽤 근대화가 되었지만, 오지에는 아직도 석기시대 그대로 변함없는 데가 많아......

2013-03-11 석재정
“기완 족 소년 코도와라고 한단다. 나이는 나미코랑 비슷할 거야. 잠시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했단다. 갑작스러운 이야기라 깜짝 놀랐지? 그쪽에서 이래저래 일이 좀 있었거든. 뉴기니도 요즘은 꽤 근대화가 되었지만, 오지에는 아직도 석기시대 그대로 변함없는 데가 많아...내가 조사한 기완 족 마을은 그 중에서도 특히 폐쇄적인 곳이었는데, 인류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부족이지. 인근 부족들과 같은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명백하게 독자적인 신앙 및 종교체계를 가진 사람들이란다. 여러 미신이나 타부(금기)도 많고 말이야...” 1975년 월간 소년 챔피언에 연재되기 시작하면서 일본 독자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판타지 “머드맨”, 그간 몇몇 만화 전문가들이나 출판사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판타지 만화의 틀을 새롭게 정립한 명작”이라는, 이 작품에 대한 좋은 평들을 자주 들어왔는데 2012년에 대원씨아이(미우)를 통해 두 권짜리 정식 한국어판으로 출간되면서 드디어 읽어볼 수 있었다. 1975년에 연재가 시작되었으면, 이 리뷰를 쓰고 있는 현재시간이 2013년 1월이니까, 이 만화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38년째에 접어들었다. 한 세대를 관통하는 긴 시간을 뛰어넘어서 ‘21세기에 적응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도,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명작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에 이런 탄탄한 구조와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가진 판타지 만화를 그렸다니,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천재성이 정말 놀라울 뿐이었다. “머드맨”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이렇다. 파푸아뉴기니의 원시부족인 기완 족의 소년 코도와의 온몸엔 ‘숲의 비밀을 전승하는 자’를 상징하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코도와는 ‘문명’이라는 것을 체험하고 오라는 족장의 명령을 받고 일본인 고고학자를 따라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쿄로 온다. 그러나 코도와가 일본으로 오면서부터 그의 주위엔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놀라운 파국을 맞는다. 스포일러가 될 까봐 더 이상 자세히 쓸 순 없지만, “머드맨”을 관통하고 있는 가장 큰 뼈대는 ‘고대 신화와 샤머니즘’이며, 전통적 내러티브 방식인 ‘선과 악의 대결’(or 원시종교와 현대종교 간의 대결)을 스토리 구조의 중심으로 삼아 작품에 살을 붙였다. 두 권 합쳐서 11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 회마다 ‘독립적인 완결성’을 갖고 있지만, 커다란 줄기를 따라 하나의 스토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문명이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하는 심오한 사회철학적인 질문일 것이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석기시대의 생활방식을 지켜가며 자연과 더불어 힘겹게 살아가는 원시부족의 삶과 고도화된 자본주의 하에서 문명을 만끽하며 안락하게 살아가지만 정신적으로는 점점 피폐해져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극단적으로 비교해 보여주면서, ‘현재의 인류를 향해 강력한 경고를 날리는’ 이 작품은, 환경과 이웃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할 절대적인 가치’를 판타지라는 만화예술의 틀을 빌려서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