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우메노키 여관의 정원에는 매년 늦은 매화만이 핀다. 우메노키 여관에서 태어나서 우메코. 이런 무성의한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지금은 세상에 없는 엄마. 기녀였던 엄마는 이곳에 손님으로 묵고 있던 외국인과 덧없는 사랑을 했다. 주변의 반대도 뿌리치고 그때 생긴 나를 혼자 낳았고, 3년 뒤 병으로 허무하게 돌아가셨다. 여기 주인아줌마는 엄마의 소꿉친구로 일찍 부모를 여읜 엄마에게 의지가 돼주었다. 그래서 허구한 날 아줌마네 가족의 보살핌을 받았고,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도 그렇게 18년이 흘렀다. 불우해 보이지만 아줌마네 가족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고, 어릴 때부터 키워주셨으니 거의 친 가족이나 다름없어서...비교적 건강하게 잘 자랐다.” ‘카츠타 분’이라는 일본 만화가가 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으로는 “그애에게 받은 음악”(전 2권), “새벽녘의 거리”, “말해도 말해도”, “꽃은 꿈꾸고 있다”, “똑딱똑딱 댕댕”(1~3권, 현재 발매 중) 등이 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읽을 때 ‘은근한 맛’이 나는 것이 장점인데,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은은하게 밀려드는, 포근하게 가슴을 감싸주는 느낌이 아주 좋다. 이렇듯 ‘은근한 매력’이 있는 작가 카츠타 분의 작품 중에서 이 지면을 빌어 소개하는 작품은, 그의 작품 중에서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소개된, “그애에게 받은 음악”이다. “18년 전, ‘사업에 성공해서 꼭 당신을 데리러 오겠어요. 기다려줘요.’, 그렇게 말하고 그가 귀국한 뒤에야 네 엄마는 임신한 걸 알았어. 바로 그에게 알리면 될 텐데 네 엄마는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며 비밀로 하고 너를 낳았다. 그는 당시 정신없이 바빴던 것 같아. 정기적으로 편지만 보내왔지. ‘그 사람한테는 지금이 중요한 시기야. 언젠가 꼭 데리러 올 테니 조용히 기다리고 싶어.’ 네 엄마의 말이 맞았단다. 하지만 그의 사업이 궤도에 오른 건 3년이나 뒤였어. ‘겨우 떳떳하게 당신을 데리러 갈 수 있습니다.’, 의기양양하게 돌아왔지만...때는 이미 늦었어. 게다가 혼자 남겨진 처음 보는 여자 아이.... ‘제 아이입니다! 아이만이라도 제가 보살피게 해주세요!!’, ‘아뇨! 우메코는 지금까지 우리가 키웠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일본에서 일본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는 게 행복하다구요! 댁은 3년이나 팽개쳐 뒀잖아요!’,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알겠습니다...하지만 대신...아이가 졸업했을 때 스스로 결정하게 해주세요. 나한테 와주지 않아도 저는 그 아이를 위해 뭐든 할 겁니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이렇다. 여자주인공인 우메코는 시골 여관에서 주인 부부의 손에 자라난 쾌활하고 씩씩한 소녀이고 그녀의 엄마는 그 여관에서 일하던 기녀였다. 주인아줌마와 자매처럼 지내던 우메코의 엄마는 손님으로 묵었던 독일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가 사업을 하기위해 독일로 떠난 후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된다. 아이를 낳은 지 3년 후에 허무하게도 병에 걸린 우메코의 엄마가 죽고, 결국 주인 부부의 손에서 우메코는 친딸처럼 길러진다. 주인부부에게는 우메코와 15살 나이차가 나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름은 쿠라노스케로 이 작품의 남자주인공이다. 그는 한때 쇼팽콩쿠르 본선에 나갈 정도로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였다. 결승 전날 불운한 사고로 손을 다치고 ‘프로’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한 쿠라노스케는 현재 부모의 여관에서 ‘게으름뱅이’로 지내며 마을의 피아노 교사이자 ‘시골 삼류 음대’의 강사로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다. 우메코의 고등학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우메코의 독일인 아빠가 여관으로 찾아온다. 오래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딸에게 돌아온 아빠는 자신과 함께 독일로 가지 않겠느냐고 우메코에게 제안한다. 아빠를 따라 독일로 갈 것이냐, 일본에 남아 살 것이냐, 우메코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오래전부터 우메코를 바라보았던 쿠라노스케의 사모하는 마음을 모두에게 들키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상황은 급전개를 맞아 쿠라노스케와 우메코는 벼락치기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된다. 이것이 이 책의 첫 번째 에피소드이자 이 작품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줄거리다. “조용히...아무 말도 하지 않고...언제나 옆에서 피아노를 쳐주었다. 나, 이 노래가 아니면 잠을 이룰 수 없어. 그리고 자장가는 언제부터인가 세레나데로 바뀌었다.” 카츠타 분의 작품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이렇다. “매우 일본적이다.”, “소박하지만 매력적이다.”, “소소한 이야기 속에 세련됨이 살아있다.”, “다정다감하고 귀여운 그림체와 섬세한 심리묘사, 따뜻한 인물들이 돋보인다.” 등등...위의 평들을 종합해서 결론을 말하자면, “매우 일본적인 감수성이 돋보이는 소소하고 섬세한 작풍”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카츠타 분의 다른 작품들을 봐도, 이런 느낌과 정서들이 내용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스펙터클하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나 기가 막힌 반전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지만, 읽는 사람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예쁘고 깜찍하게 지면 곳곳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아주 세련된 느낌으로 변하는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일본적인 감성’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너랑 쿠라노스케는 달라. 쿠라노스케에겐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아. 예를 들면, 그래. 그에게 박수는 빗소리와 같고, 조명은 달빛, 그는 전 세계에도, 달에도 갈 생각이 없어. 하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달빛이 비치고 있고, 누구보다 자유롭게 피아노를 친단다. 그게 매력이지.” “그애에게 받은 음악”은, 시골의 오래된 여관에서 살아가는, 15살 나이차의 쿠라노스케와 우메코 부부의 조용하고 행복한 일상을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남자 주인공인 쿠라노스케의 매력이 작품을 멋지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인데, ‘지금은 유유자적하게 게으름뱅이로 살고 있지만, 한때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였고, 불운한 사고로 영광의 길을 포기한 비운의 남자’라는 설정이다. (심지어 얼굴까지 잘 생겼다.^^)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쿠라노스케와 우메코,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노코를 중심으로, 일상 속에서 치유의 힘을 발휘하는 음악의 느낌을, ‘만화적으로’ 매우 잘 표현한 것에 있다. 모두 주지하다시피 만화는 출판매체이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매체처럼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그런데 몇몇 표현력이 뛰어난 작가들의 작품들, 가령 니노미야 토모코의 “노다메 칸타빌레”나 이시키 마코토의 “피아노의 숲”, 마츠모토 토모의 “Kiss” 같은 만화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에서 마치 실제로 그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생생하게, ‘음악적 느낌’이 읽는 이에게 전달되는 느낌을 받는다.(물론 가장 좋은 것은 해당되는 곡을 틀어놓고 O.S.T.처럼 감상하며 책을 읽는 것이겠지만^^) 이 작품에서도 쿠라노스케가 달빛을 배경으로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나 연주회 장면 같은 곳에서 그런 ‘생생한 느낌’을 받는다. 사실 그런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감상할만한 가치가 있다. 딱 두 권으로 완결된 작품이라 읽기에도 좋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