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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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의 우리들

“사실은, 내심 잘됐다싶었어. 선생님과 학생이라니, 그런 걸 넘어서고 싶다거나, 그럴만한 용기도 담력도 없으면서, 사실은 아직도 선생님이 날 좋아하는 게 아닐까 착각하다니. 정말 뻔뻔도 하지...! ....결혼식 오길 잘했어, 고마워, 쿠로하.” “아베...나랑 사귀...

2013-02-22 김진수
“사실은, 내심 잘됐다싶었어. 선생님과 학생이라니, 그런 걸 넘어서고 싶다거나, 그럴만한 용기도 담력도 없으면서, 사실은 아직도 선생님이 날 좋아하는 게 아닐까 착각하다니. 정말 뻔뻔도 하지...! ....결혼식 오길 잘했어, 고마워, 쿠로하.” “아베...나랑 사귀지 않을래?” ‘BL계’의 대표작가 나카무라 아스미코의 단편집 “길모퉁이의 우리들”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사실 나카무라 아스미코는 “J의 모든 것”, “동급생”, “졸업생(春, 冬)” 등의 야오이물로 일본을 넘어 국내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작가다.(여장남자의 애달픈 삶을 다룬 “J의 모든 것”은 본편의 인기를 몰아 “장밋빛 두 뺨의 기억”이라는 외전이, 학교를 무대로 한 정통 야오이 “동급생”과 “졸업생”은 “소라와 하라”라는 속편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너무 치밀하고 날카로워서 신경질적으로까지 보이는 ‘펜선’과 차갑고 건조한 작화풍과는 다르게 따뜻하고 공감이 가는 스토리 구조를 결합시킨 나카무라 아스미코의 작품들은 순정만화 팬이라면 한번쯤은 꼭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BL’계열 말고도 “우츠보라”나 “이방인과 신부”같은 장편, “철도순정만화”나 “짝사랑일기 소녀”같은 단편집들도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어 있는데, 이런 정통파 순정만화들도 평들이 아주 좋다. “흡혈귀란, 밤마다 미녀의 신선한 피를 빨고, 새벽의 태양빛과 십자가 앞에서 그 모습이, 재로 변하는 운명을 가진, 어딘지 비극적이고 로맨틱한 괴물이다....라는 건...,19세기 소설 ‘마인 드라큘라’에 의해 만들어진, 완전히 날조된 이미지이다. 라고 주장하시는 사카모토 히이치로 교수님. 귀하의 저서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조되었다는 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고자,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나카무라 아스미코의 단편집 “길모퉁이의 우리들”은 5개의 단편(뒷이야기 같은 느낌의 짧은 1편까지 포함하면 정확히는 6편)이 실린 작품집으로, “아베 소년과 쿠로하 소녀”, “불청객 흡혈귀”, “모두가 반짝반짝”, “벚꽃 바람에 피는 등”, “길모퉁이의 우리들”(& “흔들리는 우리들”) 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학교를 무대로 한 단편들이 주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인데, (“불청객 흡혈귀”는 대학 캠퍼스를, “모두가 반짝반짝”은 유치원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학교’의 일종이므로 넓은 의미에서 포함시켰다.) 학교를 무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단편들의 소재는 단연 ‘싱그러운 청춘’들과 ‘사랑으로 인한 설렘’ 같은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종류의 단편이나 순정만화들이 워낙 많아서 어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에이, 뻔하네~’하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지도 모르지만, 그것만큼은 ‘당신, 실수하는 겁니다.’라고 꼭 말리고 싶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나카무라 아스미코는 만만치 않은 내공과 독특한 감수성을 가진 작가다. 순정만화를 좋아하시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가는 도중에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서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낄 것이다. 개인적으로 책의 표제작인 “길모퉁이의 우리들”이 참 좋았다. 추천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