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속의 벚꽃
“배심원 제도란, 20세 이상의 일반시민이 형사재판에 참가하여, 판사와 함께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판단하고, 유죄의 경우는 어느 정도의 형량을 받을 것인가를 정하는 제도이다. 여러 경험과 지식을 지닌 일반시민이 형사재판에 참가하여, 정말로 피고인이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 ...
2013-02-15
석재정
“배심원 제도란, 20세 이상의 일반시민이 형사재판에 참가하여, 판사와 함께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판단하고, 유죄의 경우는 어느 정도의 형량을 받을 것인가를 정하는 제도이다. 여러 경험과 지식을 지닌 일반시민이 형사재판에 참가하여, 정말로 피고인이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 아닌지를 신중히 판단하는 것이 시민의 자유나 권리가 부당하게 박탈당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으로 이어지며, 나아가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국민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다.” “여검시관 히카루”, “교도관 나오키” 등의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도 단단한 지지층을 지닌 일본만화가 고다 마모루의 신작 “미궁 속의 벚꽃”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일본의 새로운 재판제도인 “배심원 제도”를 소재로 삼은, ‘상?하 두 권’으로 완결된 비교적 짧은 작품인데, “제대로 만든 사회파 드라마”를 오랜만에 만난 것 같아 무척 반가웠다. “공소사실...피고인, 카노가와 유키히코는 10년이나 자택에 틀어박혀 지내고 있었습니다만...2009년 3월 29일 오후 8시 45분경 오사카시 네코타구 관음언덕 1번지 11호에 위치한 카노가와가 소유의 공터에서, 이웃에 사는 주부 3명이 공터 안에 있는 벚나무를 베려고 모의하던 것을 듣고, 이들에게 일상적으로 토지 침범 및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역으로 원한을 품고 있던 피고인은 분노를 폭발...방에 숨겨두고 있는 서바이벌 나이프로 테라모토 에츠코, 하마치요 리카, 히구치 쿠루미, 이상 3명을 칼로 질러 죽였습니다. 죄명은...살인!! 형법 제 199조!! 위 사실에 기초하여 심리해주시길 바랍니다.” “미궁 속의 벚꽃”은 “배심원 제도”를 소재로 삼은 만큼, 스토리의 대부분이 법원을 무대로 진행되는 법정드라마다. 10년 넘게 방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질 않던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한 동기도 없이 이웃에 사는 주부 3명을 칼로 찔러 살해한 “네코타 관음언덕 사건”은 사건 자체의 특수성과 그 안에 담겨진 사회적 의미 때문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형사건이다. 당연히 이 사건을 다루는 재판은 사회적인 주목을 받는 중요한 재판일 수밖에 없었고, 고민하던 법원은 결국 최초로 시행되는 “배심원 제도”를 통해 이 사건을 다루기로 마음먹는다. 이 사건을 심판하기 위해 7명의 일반시민이 심사와 면접을 통해 배심원으로 선발되고, 3명의 배석 판사와 2명의 예비 배심원까지 총 12명의 사람들이 “사형”이냐 “사형 면제”냐를 놓고 열띤 토론과 공방을 벌이게 된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개요다. 전작들을 통해서 ‘사회와 국가와 개인 간의 문제’를 심도 있게 고찰해 온 작가 고다 마모루는 이번 작품에서도 ‘독특한 재능과 깊이 있는 시선’을 맘껏 발휘해 ‘긴장감 가득한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현재의 일본에서 가장 민감한 사회문제들(히키코모리, 오타쿠, PC방 난민, 집단 괴롭힘 등)을 ‘하나의 사건과 그 재판’안에 압축시켜 보여 주고, 사건을 판결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리얼한 이면을 드러냄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진정한 사회적 관계와 인성(人性)의 근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단 두 권으로 묶여있는 짧은 작품이지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작가의 사회적인 메시지와 이야기가 주는 감동의 울림은, 읽는 이에게 강력한 파장을 부를 것이라 확신한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도 아주 인상 깊었던 작품이었다. 강력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