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다.” 학교폭력, 왕따, 입시 스트레스, 자살, 성폭력...등등 현재 한국의 “학교”를 둘러싼 문제들의 심각함은 사실 도를 넘은지가 한참 되었다. 한 교육전문가가 어느 매체에 기고한 “세대별로 학교의 문제는 쭉 있어왔으나, 근래에 나타나는 학교와 청소년들의 문제는 굉장히 안 좋은 쪽으로 가고 있다. ‘정서’나 ‘감성’ 같은 ‘정신’의 문제가 아닌 ‘부모의 재력이나 지위’, ‘석차 순위’ 같은 ‘물질’적인 요소들이 아이들의 일상에 비중 있게 투영되면서 그것이 삶의 태도로 고착화되어 가도록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평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는 공감하기가 쉽지 않은 주장이었다. 학교를 다닌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 믿고 살아온 삶의 가치 대부분은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만약 위에서 인용한 교육전문가의 말이 ‘정말 현실’이라면, 지금의 아이들이 성인이 된 세상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했기 때문이다. 난 위에 인용한 교육전문가의 말을 “학교와 아이들이 점점 자본주의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라고 받아들였는데,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내가 겪은 고통이나 소외감을 내 자식에게는 정말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저 주장을 인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저 주장이 ‘정말 현실’이라면?, 상상하는 것조차 싫었지만 ‘어떻게든 바꿔야겠지’라고 생각하던 찰라, 서점의 서가에서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것은 순전히 인상적인 제목 탓이었다. 이렇게 우연히 집어든 책의 제목은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였다. “그날은,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서점의 서평에 보면 “학교라는 공간이 가진 밀폐되고 어두운 이미지를 서늘하게 살려내고 있다.”라고 소개되어 있는 이 작품은, 옥상에서 “어떤 학생”이 투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던 학원제의 ‘그 날’로부터 두 달이 흐른 후,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던 날, 여덟 명의 학생이 학교에 갇히는 것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학교에는 여덟 명의 학생 말고는 아무도 없었고, 휴대전화는 터지지 않고, 밖으로 나가려 해도 문이 열리지 않았으며, 더더욱 기괴한 것은 ‘시계(時計)’가 멈춰버린 것이었다. 상식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자신들을 빼곤 모든 것이 멈춰버린 상황’ 앞에서, 여덟 명의 아이들은 갑자기 “학원제 때 자살한 아이가 누구였지?” 라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고민을 하게 된다. 이들이 이 고민에 빠지게 된 이유는 바로, 학교에 갇혀버린 여덟 명 중 한 명이 그 날 자살한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즈키는 ‘난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눈엔 애써 밝게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워낙 힘겨운 일들이 연달아 터지다 보니...학원제 사건 이후 겨우 두 달이 지났다. 클래스메이트의 죽음은 충격이었다...하지만 이렇게 쌓여가는 눈처럼, 시간은 그때의 감정과 정경을 차곡차곡 덮어간다. 그리고 이윽고 평소의 새하얀 일상이 나타난다.” 불가사의한 힘이 작용해 학교에 갇힌 지 얼마 후, 여덟 명의 아이들이 모두 모이자 학교안의 모든 시계는(아이들이 찬 시계도 모두 포함해서) “5시 53분”에 맞춰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이들 사이의 공통점은 모두 ‘학급위원’이라는 것 뿐, 연거푸 일어나는 초현실적인 기괴한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두려움과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불안해진 아이들은 논의를 시작한다.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은 옥상에서 투신자살이 일어난 시각이 “5시 53분”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조금 후 알게 된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투신자살사건이 일어난 후 찍은 사진을 보면 ‘학급위원’은 일곱 명 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신들 중 한 명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고, 아마도 그 날 투신자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그 아이’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 것이다. “저기, 다카노, 수업 종이 울리지 않아.” 이 지면에서 책의 내용을 더 이상 이야기하면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들께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내용 소개는 여기서 멈추겠다. 하나 조언하자면, 이 작품을 즐기는 핵심적인 방법은 “캐릭터”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알려드리고 싶다. 학교에 갇힌 여덟 명의 아이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회상 속에 등장하는 담임선생님 같은 다른 캐릭터에 이 작품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보면 된다. 1권을 다 읽을 때까지도 스토리나 구성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몰입하기가 힘들었는데, 나중에 4권까지 다 읽고 나서 한 번을 더 보니 그제야 전체적인 내용이 이해가 되었다. “아까 그날 얘기 하면서, 좀 이상했어. 겨우, 두 달 전 일인데, 클래스메이트였는데...죽은 그 아이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안 나.”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는, 동명의 원작소설이 있다. 원작소설은 일본에서 제31회 메피스토 상을 받은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츠지무라 미즈키의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이며, 이 소설을 아라카와 나오시가 네 권의 만화로 각색한 것이 여기에 소개하는 작품이다. 만화 버전은 총 4권으로 완결되었고, 한국어판은 학산문화사를 통해 발간되었다. 원작소설은 일본에서는 상, 하 2권으로, 한국어판으로는 3권(출판사는 ‘손안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지 못해서 만화 버전과 뭐가 다른지 말할 수 없지만, 작품명으로 리뷰들을 검색해보니, 대체적으로 ‘원작의 초현실적인 면을 만화로 잘 살렸다’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사실 내가, 이런 종류의 스릴러 장르나 초현실적인 설정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이런 평들에 깊이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나 계속적으로 궁금증을 유발해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찰진 구성’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깔끔하고 심플한 그림도 작품의 ‘차가운 분위기’를 잘 살려 낸 것 같다. 결말 부분에서 미츠루가 다카노에게 말하는 대사가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메시지다. “잊지 않으면 기억해낼 필요도 없잖아.”,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라는 공간에 갇혀 힘들어 하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꼭 읽히고 싶은 작품이었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