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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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토커

“성모의 개가 아니라 ‘사도’다! 성 백합 학원 학생회 집행부, 성모의 사도다!” 내 기억으로는, 한국에서도 ‘엑소시스트(exorcist)’ 장르가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가, 이우혁 작가가 쓴 “퇴마록(退魔錄)”이라는, pc통신에 연재되던 소설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

2013-01-23 김진수
“성모의 개가 아니라 ‘사도’다! 성 백합 학원 학생회 집행부, 성모의 사도다!” 내 기억으로는, 한국에서도 ‘엑소시스트(exorcist)’ 장르가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가, 이우혁 작가가 쓴 “퇴마록(退魔錄)”이라는, pc통신에 연재되던 소설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책으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1990년대 후반쯤인 것 같다. 「아직 국내에 판타지 문학이 크게 소개되기 이전인 1994년부터 PC통신을 통한 연재의 시금석이 된 이 작품은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싸우는 퇴마사들의 활동을 다룬 내용으로, 2001년까지 총 8년간 ‘국내편’, ‘세계편’, ‘혼세편’, ‘말세편’, 네 시리즈 19권의 구성으로 출간되었다. 다양한 종교와 퇴마술을 사용하여 퇴마 활동을 펼치는 주인공들의 모습과,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퍼져있는 다양한 토속신앙과 괴담들을 실감나게 소개하여 큰 사랑을 받았다. 마귀의 존재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교회를 떠나 퇴마사가 된 박 신부, 기공훈련을 하며 귀신들린 단검을 부리게 된 청년 현암, 해동밀교의 가르침을 받고 어린 나이에 강력한 신들의 힘을 빌려 쓰게 된 소년 준수, 밀교의 신 애염명왕의 화신인 승희 등. 이들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존재들과 싸워야하는 숙명을 지닌 주인공들이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동료가 된 이들은 무고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해치는 귀신부터 한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사악한 주술을 사용하는 흑마법사와 적그리스도를 부활시켜 세계의 종말을 가져오려는 음모까지, 전 세계를 넘나들며 인간 세계를 해치려는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싸운다.」 -네이버 지식백과 ‘퇴마록’에서 인용 갑작스럽게 나온 지 근 20여년이 넘은 옛날 소설을 인용까지 하며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려는 만화 한 편 때문인데, “홀리 토커”라는 제목을 가진 이 일본 만화는 위에서 언급한 “퇴마록”과 같은, “엑소시스트”들의 이야기를 담은 아주 ‘전형적인’ 퇴마 장르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악마가 존재한다. 그들은 욕망을 좇는 인간과 사물에 붙어 그 영혼을 갉아먹는다. 교만, 질투, 폭식, 색욕, 나태, 탐욕, 분노...그 ‘마음의 욕망’에 사로잡혀 인간은 악마를 불러낸다. 그리고 세상은 혼돈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 악마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된 존재, 그것이 ‘불마사(?魔師)-엑소시스트’라 불리는 자들이다.” “홀리 토커”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장르의 특성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아주 ‘전형적인’ 작품이다. ‘전형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부정적일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장르의 특성을 잘 살린,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올 수 있다.(개인적으로는 이런 전형적인 작품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너무 빤하기 때문에 스토리가 쉽게 예상이 되고 의외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반전의 묘미를 느끼기 힘들기 때문이다) 위에서 소개한 ‘한국 퇴마물의 효시’라 불리는 ‘퇴마록’처럼, 어느 장르에서건 ‘효시(嚆矢)’ 소리를 듣는 작품은 ‘장르의 뼈대’를 단단하게 구축한 작품들인 경우가 많다. ‘엑소시스트’ 장르에서는 각자의 특기를 지닌 퇴마사들이 역할을 분담해 임무를 수행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합쳐 악마 또는 귀신의 존재를 격퇴한다는 암묵적인 ‘룰(rule)’이 존재하는데, 한국에서는 ‘퇴마록’이 그 ‘룰’을 충실하게 구현해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은 최초의 소설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이런 퇴마 장르의 기본적인 ‘룰’은 등장인물이나 스토리가 조금씩 다를 뿐 어느 작품에서나 비슷하게 구현된다는 것이 이 장르 작품들의 단점인데, 여기에 소개하는 “홀리 토커”도 마찬가지다. 작품의 무대가 청소년들이 주로 등장하는 ‘학교’로 바뀌고, 주인공들이 ‘학생회 집행부’ 소속이라는 것만 빼면 앞서 소개한 ‘퇴마록’과 작품의 뼈대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런 장르를 많이 접해보신 분에게는 ‘너무 뻔하다’는 느낌일 것이다.(등장인물의 대비도를 그려보면 ‘퇴마록’과 ‘홀리 토커’는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 “카메라는 회수했나? 이번 빙의 대상은 도촬범이 아니야. 악마가 깃든 건, 바로 그 ‘카메라’다. 그러니 ‘성배’가 나설 수밖에, 물론 네 동생이 가엾긴 해, ‘성모 강림의 증거’인 ‘성흔’을 갖고 태어난 소녀, 타카야마 모에기, 그녀에게 흐르는 ‘성모의 피’야 말로, 우리 인류가 악마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희망의 힘, 그녀의 피를 얻은 ‘성배’는 신의 힘을 갖게 되고, 악마를 마계로 돌려보내지, 그녀의 피가 없다면 악마를 봉인하는 ‘성배’는 만들어질 수 없어. 과연 성모님이지 않아? 한 사람의 희생으로 세계의 질서를 지킬 수 있다니 말이야.” 물론 “홀리 토커”가 재미가 너무 없거나 읽기 힘들 정도로 못 만든 작품은 절대 아니다. 작품의 구조가 너무 ‘전형적’이라는 것뿐이지 오히려 ‘엑소시스트 만화’로서는 아주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화도 역동적이고 세련되며, 캐릭터들의 배치도 아주 잘 되어 있다. 무거운 소재임을 감안해 자주 남발되는 개그 코드가 좀 거슬리긴 하지만, 스토리도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 거대한 것으로 나아가는 기승전결의 구조를 잘 갖추고 있다. 이 작품에서 특이했던 점은 엑소시스트를 ‘불마사(?魔師)’라고 번역해놓은 것인데, ‘불(?)’자는 뜻을 풀이하면 ‘푸닥거리하다. 부정을 없애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다. ‘불마사’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성이 이 작품의 특징을 확실하게 규정지어주고 있는데, 액션활극과 퇴마장르가 합쳐진 ‘스펙터클한 엑소시스트 만화’라고 보면 될 것이다. 주인공인 렌가는 ‘성모’ 타카야마 모에기의 오빠로 ‘무용퇴’라 불리는 일본도를 무기 삼아 악마를 격퇴하는 엑소시스트이며 그에게는 ‘카구라’라는 피리로 악마를 제압하는 스오우와 ‘성배’의 힘을 끌어내 사도를 소환하는 노시메라는 동료가 있는데, 이들 셋은 이 작품에서 주로 ‘액션활극’ 부분을 맡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스토리의 핵심을 쥐고 있는 ‘성모’라 불리는 소녀 타카야마 모에기로, 전대 성모였던 어머니의 뒤를 이어 성흔을 지니고 태어나 성모가 된 그녀는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피를 빼내 악마를 제압할 수 있는 그릇인 ‘성배’를 만들어내는 역할이다. 그리고 렌가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주인공 아마쿠사 치토세는 ‘루르드의 사자’라 불리는 견습 신부로, 평상시에는 전투력이 전혀 없지만 유사시에는 자신의 육체에 공존하고 있는 ‘엄청나게 강한 악마’와 영혼이 뒤바뀌는데, 검은 날개를 단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와 함께 ‘무적의 존재’로 변신하는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결국 이 만화의 핵심 설정은 ‘성모의 피와 몸’을 노리고 끝없이 출현하는 악마들과 싸워나가는, 엑소시스트들과 그 동료들의 이야기라고 보면 될 것이다. 현재(2012.12) 한국어판으로 6권까지 나와 있다. 한번쯤 읽어보기엔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