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평소 도심에서 보기 드문 대설이 내리던 날이었다. ‘후지노키’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달랑 한 칸짜리 예스러운 건물에 난 이자카야(居酒屋)로, 전부터 한 번 가보고 싶은 가게였다.... 이런 날은 찾는 손님 하나 없이 쥐죽은 듯 고요한 가게 안에서 완고하게 생긴 주인 혼자 화로 옆에 앉아 술을 데우고 있겠지. 그런데 내가 그 정적을 깨고 ‘데와노유키’ 술을 따끈하게 데워달라고 주문하는 거야. 그러자 주인장은 나를 쳐다보며 한 순간 눈빛을 번뜩이더니...마침 그때 격자문이 열리면서 근처에 볼일을 보러 나갔던 묘령의 외동딸이 돌아와서는 그러다 내가 있는 걸 깨닫고 인사를 건네며 싱긋 웃는 거지. 뭐 그런 분위기...?” 어른들이 즐기기 편한 에세이 만화 한 권을 소개한다. ‘술’이라는 소재로 ‘일상의 풍류’를 논하는 라즈웰 호소키의 “술 한잔 인생 한입”이다. 현재(2012.12) 한국어판으로는 5권까지 번역되어 나와 있는데, ‘이와마 소다츠’라는 영업담당 샐러리맨의 ‘술자리 기행기’라고 하면 간단한 소개가 될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이와마 소다츠’는 퇴근 후 마시는 가벼운 맥주 한 잔,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안주, 술자리의 행복한 분위기, 술맛을 돋아주는 사계절의 풍경 등을 좋아하는, ‘소박한 애주가’이다. 이 책의 구성은 주인공인 이와마 소다츠의 ‘술자리를 사랑하는 일상’에 관해 매 화마다 4~6페이지 분량으로 짧게 소개하는 형태로 되어있으며, 어떤 특정한 안주나 술을 소개하거나 독자들에게 유명한 가게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어떤 날, 어떤 기분으로, 어떤 이와 함께 술을 마셨을 때 느끼게 되는 그 ‘기분’과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형식이다. 내용이나 형식 자체가 나이가 어린 독자들은 주제도, 소재도 공감하기 힘든 책으로, ‘퇴근 후의 맛 좋은 술 한 잔’이라거나 ‘좋은 사람들과의 기분 좋은 술자리’를 경험해본 어른들에게만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매년 이맘때가 오면 난 홀로 여행을 떠난다. 열차는 반드시 각역정차, 출발과 동시에 맥주 한 캔 따서 멀어지는 도심 풍경을 바라보며 일단 건배, 맥주는 한 캔으로 끝, 즉시 사케로 넘어간다 이거야. 하지만 ""긴조슈"" 같이 비싼 술은 NO, 철도여행길엔 역시 싸구려 원컵이 제일이란 말씀, 안주는 먼저 ‘마른안주’부터, 마른 오징어는 라이터로 살짝 지져주면 맛이 또 끝내주지. 감씨 과자 같은 것도 살짝 그을리면 그 간장 향기가 그냥...그 와중에 아무리 실내가 혼잡해져도 결코 페이스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다 마신 컵은 창틀에다 깔끔하게 세워두고 바다가 슬슬 보일 때쯤 가만히 도시락을 오픈, 도시락은 꼭 ‘마쿠노우치 도시락’으로,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안주라 이거야, 하나씩 하나씩 깨작깨작 될 수 있는 대로 오랫동안 즐길 것, 정차가 길 땐 열차 밖에 잠깐 나와 얼린 귤이나 먹는 것도 괜찮지, 맞아. 그리고 술과 안주 보충도 잊으면 안 된단 말씀! 혹시 누가 말을 걸면 웃으며 답한다. 현지 사람들이랑 교류도 하고 볼 일이다. 단 이쪽에서 먼저 말을 걸 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웬 주정뱅이가 치근대는 꼴이거든, 솔직히, 십중팔구는 싫어할 게 뻔할 뻔자. 자. 슬슬 여행도 막바지에 다다랐으니, 지참한 음식물은 종점까지 전부 먹어치운다. 떠나는 새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법, 빈 캔, 빈 봉지는 전부 차내 쓰레기통에 버린 뒤 잠자코 도착하길 기다린다.” 『저자인 라즈웰 호소키는 본명 쿠보타 쿄이치, 1956년 야마가타현 요네자와시 출신이며, 와세다 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대학 재학 중 만화연구회에서 만화를 그리는 선배의 모습에 감명 받아 만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1983년 마작 만화로 데뷔, 대단한 재즈 매니아로서, 재즈 지식을 바탕으로 음악 관련 만화도 다수 발표하였다. 하지만 나중에 잡지 연재한 「술 한잔 인생 한입(원제 酒のほそ道)」으로서 더 알려져 있는 작가이다. 팬 네임의 유래는, 유명한 트럼본 연주자 라즈웰 러드, 대학졸업 후 아르바이트 했던 출판사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호소키 선배로부터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책 표지의 소개글에서 인용 “이와마 스페셜 꽁치 시식법, 먼저 따끈따끈한 꽁치에 스다치(일본 초귤)또는 레몬즙을 반쯤 뿌린다. 다음으로 무를 갈아 간장을 뿌리고 젓가락으로 떠서 꽁치 위에 얹은 다음, 등부터 먹는다! 맥주를 곁들이며 한쪽 등을 다 먹어치울 때쯤 되면 따끈한 사케가 나온다. 그럼 이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다. 내장을 입에 쏙 집어넣고 곧바로 사케를 마신다! 그 맛을 음미하며 계속 잔을 기울이다가 술병이 반쯤 비면 이제 남은 반쪽에 달려들 차례. 아까 반 남겨둔 스다치 즙을 다시 뿌리고 등뼈 뒤쪽 살을 발라내서 껍질과 뱃기름을 얹고 마지막으로 내장에 문지른 다음 먹는다! 먹는다! 먹는다! 남은 껍질이나 잔가시, 내장, 등지느러미 같은 부위는 가지런히 모아놓고 맥주랑 사케 역시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비우면 끝. ‘계산요’, ‘맥주랑 사케 각각 한 병에 꽁치 소금구이, 다 해서 1,950엔입니다.’ 후~ 이게 바로 서민의 행복이란 말씀” 이 책을 통해 매 화 소개되는 ‘소다츠의 술자리 기행’은 사실 ‘일본의 사정과 풍경’에 편중되어 있어서 읽는 내내 한국의 애주가들은 공감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요즘 한국에도 일본식 주점인 ‘이자카야’가 워낙에 많이 생겨서 이런 만화가 의외로 먹힐 것 같다는 생각도 한편으로 들었다. 이 책을 통해 소개되는 소다츠의 ‘술과 함께 하는 일상의 풍류’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치킨과 맥주, 파전에 막걸리 같은 ‘국민 대표 메뉴’와 서민적인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작품은 2012년 테즈카 오사무 문화상에서 단편상 부문을 수상한 작품으로, 작가인 라즈웰 호소키는, 『술꾼이 벌컥벌컥 들이키기만 하는 만화, 라는 소린 칭찬이다. 그 맛있어 보이는 목넘김을 보노라면 한잔 걸치고 싶어지는 독자들도 분명 많을 게다. 데뷔 당시에는 마작 만화를 그렸는데 "마작에 관심이 없는 게 들킨 건지, 인기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식도락 이야기를 넣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술 한잔]으로 이어졌다. "좌우지간 술탐이 심하다.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타입." 그런 주인공에 독자들은 자신을 투영하게 되고 호감을 보였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자 가까이 있는 친구의 모습입니다" 술꾼만이 아니라 집에서의 반주와 생선도 빈번히 등장한다. "직접 만든 안주가 딱 맞아 술이 더 맛있어지면 정말 즐겁습니다."』라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술 한 잔 인생 한 입”(원제 : 酒のほそ道, 사케노호소미치)은 94년부터 ""주간만화 고라쿠""(일본문화사)에서 15년 넘게 주간 연재 중이며, 최근에 나온 한국어판 5권엔 ‘서울 기행’ 편도 등장한다. 술을 좋아하던 술자리를 좋아하던 간에, 자신이 스스로 ‘애주가’라 생각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시길 권한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