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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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시의 무녀

“3년 전부터 이 신바시 주변에서 성추행 소송과 치한 사건 발생 건수가 갑자기 그 이전보다 무려 20배나 폭증했어...! 이 증가율은 너무 비상식적이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 원인이 바로 네가 본 마물이야. 녀석들은 마음의 빈틈을 파고들지...문득 긴장을 푼...

2013-01-15 김진수
“3년 전부터 이 신바시 주변에서 성추행 소송과 치한 사건 발생 건수가 갑자기 그 이전보다 무려 20배나 폭증했어...! 이 증가율은 너무 비상식적이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 원인이 바로 네가 본 마물이야. 녀석들은 마음의 빈틈을 파고들지...문득 긴장을 푼 순간, 무심코 달콤한 유혹에 마음을 빼앗긴 찰나에 녀석들이 파고드는 거야. 그로 인해 어떤 사람은 치한 행위를 하고, 어떤 사람은 성추행을 저지르고, 어떤 사람은 더 큰 범죄를 일으켜.” 사람이 살다보면 가끔 ‘마(魔)가 씌었다’라고 남들의 구설수에 오를 때가 있다. 전혀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을 한다거나, 남에게 큰 폐를 끼친다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일 때가 있다. 그러나 ‘사소한 실수였겠지, 살다보면 그럴 때도 있는 거지’하며 주위 사람들이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런 일들은 ‘실수’나 ‘오해’의 범위를 넘어서 사회적인 이슈가 될 정도로 큰 사건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까지 문제가 커져버리면 결국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는 인생 자체가 망가져 버린다. 다시 재기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이런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운이 없었다.’라고 넘기기도 하고, 어떤 이는 종교를 가져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무당이나 점성술사를 찾아가 굿판을 벌이기도 한다.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지만, 자신의 지식이나 세상의 지혜로도 밝혀낼 수 없는 원인에 대해서는 ‘마(魔)’라던가, ‘악마’라던가, ‘귀신’이라던가 하는 불가사의하고 불가해한 존재들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런 불가사의한 존재들은 실재하는 것일까?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는 설명할 수 없는 것과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나뉘어져 있다.’라고 명쾌하게 답을 내렸지만, 복잡한 세상살이를 헤쳐 나가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런 철학자들처럼 이런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긋기가 쉽지 않다. ‘상상력의 총아’라고 불리는 만화장르에서 이런 불가사의한 존재나 현상들을 작품의 소재로 많이 삼는 이유가 아마도 그래서 일 것이다. “치한이나 성추행 사건은 설령 무고하다 할지라도 피고의 인생에 어두운 영향을 끼친다네. 나는 그런대로 운이 좋았어. 어찌어찌 합의를 보고 한직으로 쫓겨나는 선에서 끝났으니까. 한순간이야. 정말 한순간 방심한 탓에 마물에 흘려서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 걸 잃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세. 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 현대 과학으로는 마물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우리 회장님은 그 불합리함을 인식하셨네. 그래서 우리가 있는 거지. 우리는 마물의 피해로부터 주로 우리 회사의 인재를 지키기 위해 모인 부서야. 대대로 이어져 온 신관 가문 출신으로 마물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가진 미야마 이치코를 중심으로...말이지. 슈에이 상사 총무 2과. 통친, 퇴마과에 온 것을 환영하네.” 여기에 소개하는 “신바시의 무녀”는, 바로 이런 ‘마물(魔物)’을 소재로 삼아 그것을 퇴치하는 ‘무녀(巫女)’와 그의 조수인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화다. 현재(2012.12) 한국어판으로 3권까지 나와 있는데, 작품 소개에 앞서 명확하게 밝히자면, 성인 남자를 대상으로 한 ‘다소 야한 만화’이며, 여성들이 보기엔 설정 자체가 무척이나 기분 나쁠 수 있는 만화라는 것을 미리 밝힌다. “좋았어, 무당 후보생, 이 무녀 언니가 조금 눈에 거슬려서 말이지. 벌써 우리 동료들이 몇이나 당해버렸거든, 하지만, 순결만 빼앗으면 영적인 힘을 거의 잃고 마니까, 걱정 끝이지.” “신바시의 무녀”의 기본 설정은 이렇다. 슈에이 상사 총무 2과는 평상시에는 잡일(회사 청소, 심부름, 배달 등등)만 하는, 지하 2층 구석에 있는 통칭 ‘한직’이다. 이 부서의 구성원은 하루 종일 신문만 읽고 담배나 피워대는 과장 1명, 아름답고 섹시한 여사원 1명, 갓 배속된 남자 신입사원 1명이 전부다. 회사 내에서도 이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만큼 평상시엔 전혀 눈에 띠질 않는 부서다. 그러나 사내에서 성추행 사건이나 치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회사 직원들이 회사 밖에서 불미스러운 사건(거의 다가 성적인 문제들이지만)에 연루되었을 때 이들의 존재가 비로소 빛을 발한다. 그들, 특히 여사원인 미야마 이치코는 슈에이 상사가 있는 신바시 지역을 관할하는 ‘무녀(巫女)’로 사원들에게 들러붙어 성폭력 및 성추행 사건을 일으키는 ‘마물’을 퇴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래서 총무 2과는 속칭 ‘퇴마과’라고도 불린다. 무녀인 미야마 이치코 외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은 신입사원 코모다 사다오다. 삼류대학 출신에 특별한 특기도 없이 슈에이 상사라는 대기업에 어울리지 않는 스펙을 가진 이 남자가 이 회사에 합격하고 총무 2과로 배속된 이유는 딱 하나, 그가 아직 여자와의 성경험이 없는 ‘동정남(童貞男)’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설정이지만, 이 만화의 핵심적인 뼈대가 되는 설정이기도 한데, 주인공인 미야마 이치코가 강력한 마물을 만나 상대하기 힘들어 할 때, 동정남 코모다 사다오가 가세하면 영력의 파워가 엄청나게 강대해진다는 것이 이 작품의 ‘사건해결구조’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건 업무 명령인데...코모다 사다오, 자네는 동정을 잃는 즉시 해고일세.” “신바시의 무녀”에서 핵심적인 키워드로 작용하는 단어는 ‘순결’이다. 여자 주인공인 미야마 이치코는 순결을 잃으면 무녀로서 영력을 상실하고 평범한 여자가 되어 버린다. 남자 주인공인 코모다 사다오는 순결을 잃으면 회사에서 해고된다.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작품의 긴장도를 높이고 재미를 전달하는 핵심인 것이다. 문제는 여자 주인공인 미야마 이치코를 비롯해 속속들이 등장하는 수많은 여자들(다른 지역을 관장하는 무녀들이나 사건에 관련되는 여사원들)이 하나같이 모두 섹시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육감적인 몸매나 아찔할 정도의 복장은 기본이고 ‘마물을 퇴치하는 과정’에서 그녀들의 속살, 속옷, 민망한 포즈 등은 수시로 등장한다. 한마디로 ‘마물’과 ‘무녀’를 소재로 해서 성인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가볍고 즐거운 눈요기를 매회 제공해주는 만화인 것이다. 이 작품의 재미는 아무리 아찔한 순간이 와도 어떻게든 ‘순결’을 사수해야 하는 코모다 사다오와 미야마 이치코를 보는 지점에 있다. 말도 안 되는 세계관에, 말도 안 되는 스토리지만 그냥 한 번쯤 킬링타임용으로 읽어보시면 괜찮을 것 같다.(꼭 남자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