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키네씨의 사랑
“세상은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키네 케이치로(30)를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죄 많은 무지함’과 ‘서글픈 완벽함’, 그런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 유감스러운 남자의 자초지종을 지켜보시라.” 매우 독특한 느낌의 러브스토리를 하나 소개할까 ...
2013-01-03
유호연
“세상은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키네 케이치로(30)를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죄 많은 무지함’과 ‘서글픈 완벽함’, 그런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 유감스러운 남자의 자초지종을 지켜보시라.” 매우 독특한 느낌의 러브스토리를 하나 소개할까 하는데, 작품의 제목은 “세키네씨의 사랑”이다. 작가는 카와치 하루카, 한국어판으로는 현재(2012.11) 삼양출판사를 통해 3권까지 나와 있으며, 2011년 일본에서 “이 만화가 대단하다!” 여성 만화 부문 2위를 차지한 작품이자 “제 3회 anan 만화대상”에서 대상을 차지한 작품이기도 하다. 1981년생으로 “일본만화계의 앙팡테리블”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 카와치 하루카의 출세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멋진 외모와 모델 같은 체격, 높은 지성과 뛰어난 업무능력을 갖춘, ‘외양적으로는 완벽한 엘리트’ 세키네 케이치로의 무덤덤하고 공허한 일상에 “뜨개질”이라는 색다른 소재를 결합시켜 독특한 느낌의 러브스토리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취미라...취미 따위 아무거나 상관없겠지. 어라? 난 참 재미없는 놈이구나. 집중력이 없는 건가? 뭔가에 열중한 기억이 없다. 생각해보면, 학생시절에 했던 스포츠도 그저 했던 것뿐, 그래, 그런 느낌이다. 여자들은 멋대로 다가와서는 반드시 나를 떠나갔다. 주장으로, 반장으로, 회장으로, 연인으로, 임명되면 그대로 수행했을 뿐, 그야말로 수동적인 인생.... 인간으로서 뭔가 중요한 나사가 빠져 있는 느낌이다.” 주인공인 세키네 케이치로(30)는 좋은 직장, 멋진 외모, 탁월한 업무능력, 무난한 인간관계 등등 어디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남자’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타인에게 비춰질 뿐인, 겉으로 드러나 있는 세키네의 외양일 뿐이다. ‘약간은 차가워보여서 어딘가 말붙이기 좀 힘든, 신경질적인 엘리트 같아 보이는’ 그의 전반적인 인상은 차치하고서라도, 세키네의 결정적인 문제는 “도무지 세상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좋아하는 취미도 없다. ‘일 이외에 일상 속에서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었던 건지도 잘 모르겠다. 참으로 무덤덤하고 공허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친구의 부탁으로 자리를 채워주러 마지못해 나간 미팅 자리에서 여자들의 질문 공세를 받다가 우연히 깨닫게 된 세키네의 이 심각한 고민은, 어린 시절부터 서른이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봐도 ‘뭔가에 열중한 기억이 없다’라는 슬픈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인간으로서 뭔가 중요한 나사가 빠져있는 느낌이다”라는 극단적인 생각에 도달한 세키네는, ‘변신’을 꾀하게 되고, ‘취미’라는 것을 가져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변신의 첫 시작으로 선택한 취미가 ‘뜨개질’이다. ‘뜨개질’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의미는 없다. 그저 ‘처음으로는 무엇이 좋을까’를 고민하며 서점을 기웃거리다 눈에 들어온 수예에 관한 책 때문이었다. 그러나 ‘뜨개질’이라는, 어딘가 세키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 깜찍한 취미생활은 무미건조했던 그의 삶에 아주 색다른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한다. “자꾸 그렇게 회피하려고만 하면 저 진짜 참견쟁이가 돼버릴 거예요. 왜 눈물이 나는지 제대로 생각해보라고 했잖아요. 조마조마하게 만들지 말라구요. 계속 좋아했잖아요? 선배인 카즈네씨를. 그게 세키네씨의 사랑이잖아요.” “세키네씨의 사랑” 1권에서는, 주인공인 세키네의 캐릭터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한 몇 가지 회상 에피소드들과 세키네가 ‘뜨개질’을 시작하게 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들, 그리고 세키네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몇 안 되는 친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들이 일정한 시간적인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하게 뒤섞여 있다. 특별한 기준을 세워두지 않고 작가가 배치한 순서대로 읽어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꾸 ‘헛웃음’이 나오게 되는데, 그것이 이야기가 재미있어서인지, 아니면 상황이 웃겨서 인지를 잘 모르겠다. 그만큼 독특한 만화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아무튼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작품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에게도, 관심사 한두 가지쯤은...있어요.” “제 3회 anan 만화대상”에서 이 작품이 대상을 차지하면서 작가의 인터뷰를 같이 게재하였는데, 주인공인 세키네와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재미있다. 인터뷰에서 작가인 카와치 하루카는 “주인공 세키네를 ‘안됐는데~’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있습니다. ‘머뭇머뭇 하고 안절부절 하는 상황을 보고 그리는 것’을 정말 좋아해서 나도 모르게 제자리걸음을 걷게 만드네요.”하고 이 작품을 창작하면서 느끼는 재미있는 점들을 밝혔다. 이 작품의 매력은, 여주인공인 사라의 표현에 의하면 ‘마성의 지골로’라고까지 표현되는, ‘월등한 능력과 아름다운 외모, 완벽한 매너’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경쟁력 있는 남자 세키네가 평범하고 직설적인 여자 사라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일정했던 삶의 패턴과 탄탄했던 평상심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세심하고 코믹하게 보여주는 데에 있다. 사라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려고 몇 달을 고심하며 구실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나, 별 관심도 없던 서커스 공연이나 야구 경기 관람 같은 이벤트에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도도하고 완벽한 모습의 남자 세키네가 당황하고, 무너지고, 부끄러워하는 ‘빈틈’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세키네의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꽃을 건네는 것만으로 역류성 식도염 같은 증상이 되다니...몸이 남아나질 않겠어.” 현재 한국어판으로 3권까지 나와 있는 “세키네씨의 사랑”은 한마디로 말해서 “읽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아주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들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나 스펙터클한 사건 따위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사라와의 관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가는 세키네의 상태를 세밀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읽는 이에게 미묘한 긴장감과 잔재미를 선사한다. 무언가 색다른 느낌의 러브스토리를 원하시는 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추천할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