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츠라츠라 와라지 (비젠 쿠마다家 첨군 교대 이야기)

“비젠 쿠마다 가(家). 영지 31만 5천 석이 넘는 큰 번(藩)이다. 가문(家紋)은 비젠바치(벌) 문양. 전국시대 쿠마다 노부테루 시절. 산속에서 싸우다 열세에 몰렸을 때 말벌 떼가 도와주어 대승을 거두었다. 곰(쿠마)과 벌은 본디 서로 상극이지만, 그 후로 벌 문양...

2012-12-26 김진수
“비젠 쿠마다 가(家). 영지 31만 5천 석이 넘는 큰 번(藩)이다. 가문(家紋)은 비젠바치(벌) 문양. 전국시대 쿠마다 노부테루 시절. 산속에서 싸우다 열세에 몰렸을 때 말벌 떼가 도와주어 대승을 거두었다. 곰(쿠마)과 벌은 본디 서로 상극이지만, 그 후로 벌 문양이 쿠마다 가의 가문이 되었다. 나가쿠테 전투에서 도쿠가와 군과 대치. 노부테루는 장남과 함께 전사. 차남 테루타카를 당주로 세워 쿠마다 가는 붕괴 위기를 면했다. 그 후 도요토미와 도쿠가와는 강화를 맺었으나 테루타카에게 도쿠가와 가는 아버지와 형의 원수. 불안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이에야스는 히데요시를 이용. 도쿠가와의 처녀를 테루타카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하지만 테루타카에게는 이미 정실부인이 있기에 정중히 거절했다. 그래도 거듭거듭 밀어붙인다. 너무나 완강히 밀어붙이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테루타카는 부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고, 이에야스의 딸을 정실로 맞았다. 전 부인과의 사이에 태어난 장남은 어머니를 빼앗긴 분노로 이에야스를 미워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손자 신타로. 처음 이에야스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이에야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 신타로가 바로 쿠마다 오카야마 번(藩) 초대 번주. 에도 초기 3대 명군으로 칭송받는 쿠마다 미츠타카다. 막부가 국학으로 추진하던 주자학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양명학을 사랑하며 인(仁)의 정치를 주장. 영지의 기틀을 닦았다. 그런 미츠타카가 행한 것이 엄격한 검소 검약 정책. 일반 백성과 무사 구분 없이 철저히 통제했다. 미치타카의 검약령은 법제로 남아 대대로 이어져 내려간다. 그러나, 당당히 그 가르침을 어기는 번주 또한 있었다. 얼마 전 에도 참부(參府, 참근교대를 위해 막부로 가는 것)를 위해 길을 떠난 5대 번주. 쿠마다 하루타카가 그런 사람이었다. 시대는 공교롭게도 막부가 검약을 추진하던 개혁기로, 막부의 정책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행동만 골라서 했다.” “Not simple”, “납치사 고요” 등의 대표작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팬들을 끌어 모은 ‘일본만화계의 신성(新星)’ 오노 나츠메의 신작 “츠라츠라 와라지”가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매우 생소한, 에도 막부시절의 다이묘들이 정기적으로 행했다는 “참근 교대”라는 업무를 소재로 매우 독특한 시대극을 만들어 냈다.“츠라츠라 와라지”라는 제목의 뜻은, ‘짚신(와라지)이 줄줄이 떨어져 있는(츠라리츠라리) 모습을 나타내는 말’로 ‘짚신행렬’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 작품의 부제가 “비젠 쿠마다家 참근교대 이야기”인데, “참근교대”란, 일본어로 ‘산킨코타이’이며 도쿠가와 막부 시절, 다이묘가 정기적으로 에도에 올라가 근무하는 것으로 영주의 가족을 인질로 잡아 반란을 막고,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게 하여 경제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2천여 명 이상의 수행원을 거느리는 다이묘도 있어서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츠라츠라 와라지”는 바로 이 “참근교대”를 하러 에도로 떠나는, 비젠 쿠마다家의 당주 쿠마다 하루타카 일행의 여정을 담은 일종의 ‘여행기’이자 당시의 시대상과 인물상이 독특하게 드러나는 ‘사극(史劇)’이다. 일본 역사에 정통한 사람이거나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쉽게 즐길 수 없는 난해한 작품이긴 하지만, 오노 나츠메만의 ‘역사를 읽는 독특한 감수성’과 ‘삶에 관한 따뜻한 통찰력’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일본색(色)’이 워낙 진해서 좀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오노 나츠메의 팬이라면 무척이나 반가울 작품이다. 에도 막부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독특한 로드무비’를 한번쯤 즐겨보시길 권하고 싶다.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