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히 먼 차가운 하늘에서 태어나 그저 사락사락 내려와 쌓이고 녹아버릴 수밖에 없는 눈에, 날개가 없었다면 날 일도 없었겠지. 상처받을 일도 없었겠지.” “최종병기 그녀”의 작가 다카하시 신의 신작 “유키?츠바사”가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현재(2012.11) 1권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딱 한 권만으로도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아우라를 내뿜고 있어서 팬으로서 기대가 무척 크다. 이 작품의 컨셉은 한 마디로 말한다면 “초능력 소년과 말을 잃은 소녀의 러브 스토리”다. 컨셉만으로도 심히 기대가 되지 않는가. 문학적인 감수성이 넘쳐흐르는 대사와 독백, 드라마틱한 감동과 흥미진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스토리, 감각적인 연출과 아름다운 작화 등 다카하시 신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신작 “유키?츠바사”를 소개한다. “만약에...정말로 초능력이란 게 있다면 소중하게 생각하는 단 하나의 사람이라도 지킬 수 있을까?” 주인공인 유키가 눈 내리는 거리 한가운데에서 섹소폰을 들고 서있는, 수채화 풍으로 아름답게 그려진 책의 표지를 넘기면, 다카하시 신 특유의 감각적인 독백이 첫 장을 메우고 있다. “날개가 없었다면 날 일도 없었겠지. 상처받을 일도 없었겠지.”라는 음울한 느낌의 독백이 끝나면, “초능력이란 게 있다면 소중하게 생각하는 단 하나의 사람이라도 지킬 수 있을까?”라는, 이 작품의 모든 것을 압축하고 있는 독백이 이어진다. 첫 장의 느낌만으로는 왠지 “최종병기 그녀”처럼 아름답고 슬픈 러브스토리가 아닐까 심히 걱정된다. 다카하시 신이 창조해내는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는 읽는 이의 폐부를 관통하는 ‘가슴저림’이 있기에, ‘아마도 눈물을 흘리게 될 거야’라는 예상을 하고, 자신의 감정이 너무 흔들리지 않도록 어느 정도 마음의 대비를 한 후에 읽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불안한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난 바보라서 아무 것도 모르겠다. 학교도 공부도...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도...물론 TV나 뉴스 같은 데에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도...언제나 그래, 요즘 늘 이렇게 괴롭힘당하는 시간에 들려오는 이 노래의 제목도 몰라서....난...그냥 멋대로 이렇게...부르고 있다. 만신창이의 노래-” 그 다음 장을 넘기면 남자 주인공인 츠바사가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집단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이 작품의 부제가 “Esper meets girl @ northern small town”인 것으로 보아, 초능력자(Esper)로 설정된 인물이 여자 주인공인 유키가 아니라 남자 주인공인 츠바사일 텐데, 그는 왜 이렇게 첫 장면부터 잔인하게 얻어터지고 있을까? “그런 나의 생활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이 온천 마을과 함께...바보 같은 나 자신도 사라져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그런 것이었다...그날...그 ‘노래’가 들려올 때까지는-” 이 장면 이후에 나오는 것은 ‘눈 내리는 학교 옥상에서 섹소폰을 불고 있는 유키’가 그려진 책의 속표지다. 1권의 부제는 “1ST SONG 「둘만의」” 인데, 다음 장에서부터 츠바사의 독백을 통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북쪽 지역의 작은 온천마을”이 소개되고, 여자 주인공 유키와 남자 주인공 츠바사의 인상적인 첫 만남이 펼쳐진다. “-처음이었다. 들릴 턱이 없는 여자의 목소리를...‘들어’버린 것은” 유키와 츠바사의 첫 만남은 유키의 마음 속 독백이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던 츠바사의 머릿속에 “들려버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츠바사에게 ‘들려버린’ 유키의 생각은 예쁜 여학생이 하는 생각치고는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츠바사는 순간 무척이나 당황한다. 유키에게 얘기를 걸고 있는 남학생을 앞에 두고 유키가 생각한 것은 이렇다. “놀고 있네, 이 썩어빠진 자식! 자기도 나한테 실컷 야한 짓 해놓고서! 어차피 네 목적도 섹스잖아!!” “-그 교복...분명 얼마 전에 산동네에서 전학 왔다고 소문난 그 여고생...아마도 말을 못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하지만 분명히 목소리가 들렸어.” 유키의 생각이 마치 노래처럼, 츠바사의 머릿속에 들려온 것은 이 작품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인데, 낮에는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는 왕따, 밤에는 거리에서 잘나가는 일진들과 어울리는 특이한 남자 주인공 츠바사는 자신의 이름(‘츠바사’는 ‘날개(翼)’라는 뜻이다)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초능력자 중학생’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렇게 복잡하고 특이하게 설정된 주인공은 쉽게 보기 힘든데, 사실 그 ‘초능력’이란 것이 워낙에 쓸모없고 보잘 것 없는 초능력이기 때문에 츠바사의 일상생활은 더더욱 평범하기 힘든 것이다. 츠바사의 초능력은 일종의 ‘염동력’이다. 그러나 그 힘이 너무도 미약해서 츠바사의 표현에 의하면 “손으로 직접 하는 것이 훨씬 빠를 정도로 쓸모없는, ‘초’능력이 아닌 ‘소’능력”으로 ‘방안에서 손을 안 쓰고 만화를 읽으면서 주스를 마신다거나 자기 전에 누워서 생각만으로 TV나 형광등을 끌 수 있는 정도’의 미약한 염동력이다. “못난 나의 몇 안 되는 쉼터인 오락실, 무엇보다...게임에는 초능력이 안 통한다는 게 기쁘다. 난 이 조그맣고 다 스러져가는 마을 한 귀퉁이에서...이 작은 세계에서...조용히 사라지려고 했다. 누구 하나 날 필요로 하는 사람 없이...그냥 살아가려고 했다.” 항상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헤드폰으로 귀를 막은 채로, 마치 대인기피증 환자처럼 살아가는 츠바사의 유일한 즐거움은 동네 오락실에서 즐겨 하는 격투게임이다. 거의 매일 기록을 갱신할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츠바사는,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나던 그날 역시, 일진들이 아지트로 쓰고 있는 오락실 2층 바로 밑 게임장에서 초등학생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격투게임의 신기록을 갱신하는 중이었다. 바로 그때, 츠바사와 어울리는 동네 일진 형들이 예쁘장하게 생긴 어떤 여학생을 ‘무척이나 불순한 의도’로 아지트로 끌고 가던 그 순간, 또 다시 츠바사의 머릿속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도와줘!” 깜작 놀란 츠바사는 끌려가던 그 여학생을 돌아본다. 눈에 익은 교복과 낭랑한 목소리, 그 여학생은 아침에도 츠바사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리게 한’ 바로 그 예쁜 누나였다. 너무도 위급하고 두려운 느낌의 목소리였기에 순간적으로 놀라 게임조작에 실수를 범해버린 츠바사, 그런데 갑자기 게임화면이 사라지면서 하얗게 변해버린 모니터에 커다란 글자들이 나타난다. “으아아악 싫어, 구해줘, 싫어, 구해줘, 아아악, 무서워” 모니터에 다급하게 쓰여 지는 여학생의 마음 속 절규는 츠바사의 눈에만 보여 지고 있었고, 츠바사는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위층으로 뛰어 올라간다. 그곳에서는 일진 형들 여럿이 그녀의 사지를 붙잡고 결박한 채 강간을 하려하고 있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는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버둥거릴 뿐, 마음속에서만 절규하듯 ‘도와줘’, ‘구해줘’를 반복해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절규는 츠바사의 머릿속에만 들렸다. ‘이대로 둬선 안 돼!’라고 츠바사가 절박하게 생각한 순간, 갑자기 그녀의 몸이 누군가 조종하듯 힘차게 움직인다. 그녀의 바로 앞에 있던 남자의 머리를 다리로 내려찍고, 놀란 그들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결박에서 풀려난 그녀는 츠바사의 장기인 격투게임의 캐릭터처럼 화려한 격투기술을 선보이며 자신을 강간하려던 동네일진들을 한순간에 때려눕힌다. 츠바사가 생각하는 대로, 마치 츠바사가 조종하는 게임 캐릭터처럼, 츠바사가 떠올린 게임 기술을 그대로 재현해내며 건장한 체구의 남자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린 것이다. 츠바사의 초능력이 처음으로, 초능력답게 제대로 발휘된 순간이자, 유키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의 순간이기도 했다. “눈앞의 예쁜 여자애한테서...골 때리는 협박장이 날아왔다...! 맞다! 이 애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했지? 난...이 작은 세계에서...조용히 사라지려고 했다. 누구 하나 날 필요로 하는 사람 없이...살아가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너- 둘만의 비밀이야...알았지?」 -분명히 내 귀에는 들렸다. 들릴 턱이 없는 여자의 목소리가...그 낭랑한 목소리가...마치 ‘노래’처럼-” 작가 후기에 보면 이렇게 쓰여 있다. “약 5년 전부터 그리기 시작한 작품으로 처음 펜 터치를 한 것도 몇 년 전입니다. 이렇게 독자 여러분께 책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네요. ‘초능력과 소위 말하는 장애의 차이점은?’ 그런 사소한 생각에서부터 이 이야기는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한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제목도 몇 번이나 바뀌었죠. ‘봄의 노래, 겨울의 에스퍼’, ‘오늘, 이 작은 힘으로 당신이’, ‘너를 읽는다.’ 그리고 정해지기 직전에는 ‘너의 노래’였습니다. 어쨌든 ‘초능력’과 ‘노래’라는 두리뭉실한 소재를 연결해서 스토리가 완성되기도 했고....편집부의 의견도 있어서 최종적으로 생각한 제목이 ‘유키?츠바사’입니다. 연애와는 거리가 먼 중학생과 여선배, 두 사람의 만남을 작은 단어로 만들어 제목을 정했습니다. 아득히 먼 차가운 하늘에서 태어나 그저 사락사락 내려와 쌓이고 녹아버릴 수밖에 없는 눈(유키)에 날개(츠바사)가 없었다면 날 일도 없었겠지, 상처받을 일도 없었겠지. 조그맣게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눈 오는 거리에서 만난 조그만 두 사람, 분명 이것도 작은 사랑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다카하시 신의 팬들 -특히 10대 팬들-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예감되는 감각적인 러브 스토리 “유키?츠바사”의 한국어판 2권은 2013년 2월에 발간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