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의 행상인
“이제 곧...죽겠지, 나는...꿈...인가? 새카만 마차가 다가오는 게 보인다....맞아...죽음의 신이 나를 데리러 온 게 분명해...죽음의 신은 정말 아름답구나...하고 나는 생각했다...” “단구”라는 작품으로 한국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렸던 만화가 박중기가 ...
2012-11-13
유호연
“이제 곧...죽겠지, 나는...꿈...인가? 새카만 마차가 다가오는 게 보인다....맞아...죽음의 신이 나를 데리러 온 게 분명해...죽음의 신은 정말 아름답구나...하고 나는 생각했다...” “단구”라는 작품으로 한국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렸던 만화가 박중기가 일본잡지사로 무대를 옮겨 내놓은 두 번째 작품 “이빨의 행상인”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박중기가 스쿼어에닉스에서 발간하는 ‘영 간간’에 연재하며 스토리를 “미스터 부”의 전상영이 써서 첫 번째 작품으로 내놓았던 “격류혈”은 총 3권으로 완결되었고(한국어판으로도 3권 모두 출간되어 완결 되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이빨의 행상인”은 스토리를 일본작가 나나츠키 쿄이치가 썼고(원작은 이 작가가 쓴 소설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어둠의 이지스”를 집필한 작가라고 한다), 작화가인 박중기는 필명을 “Night Owl”로 바꿨지만, 연재하는 잡지는 여전히 스퀘어에닉스의 ‘영 간간’이다. 현재(2012.10.01) 한국어판으로는 대원씨아이를 통해 3권까지 출간되어있다. “그럼 통성명도 다 마쳤으니 장사 이야기나 해볼까. 나는 상인이야, 물이랑 약을 제공하고 네 목숨을 구해준 대가를 받아야겠다. 이 황야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거든...이런 땅은 인간의 영역과 다른 ‘법’이 지배하지...다 죽어가는 사람의 목숨은 그걸 건진 자의 소유물이 된다 이거야...그러니까 네 목숨은 이제 내 거란 말이지...! 네가 그 대가를 지불할 때까지...!” 만화가는 ‘연재를 진행할수록 그림이 진화한다.’고 하더니 이 작품을 보니 정말 그 말이 실감이 난다. “단구”때와는 너무나 많이 달라진 그림체여서 1권을 볼 때만 하더라도 이 작가가 박중기인줄 꿈에도 몰랐다. “격류혈”때까지만 하더라도 누군지 짐작은 할만 했었는데 “이빨의 행상인”에서는 작품의 내용 자체가 ‘다크 판타지’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작화 자체가 엄청나게 ‘진화했다.’ 엄청난 밀도와 화려한 연출력을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보여주는, ‘작가의 공력’이 묵직하게 독자를 압박하는, 수많은 장면들이 지면을 꽉 채우고 있어 보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예전 “단구”때는 솔직히(그림도 뛰어나고 액션장면도 무척 좋았지만), 스토리적인 얼개가 헐겁기도 했고 너무 ‘과도하게 보여 주는’ 바람에 읽기에 많이 지쳤었는데, 이번 작품은 스토리나 연출에 맞추어 작화도 매우 잘 짜여진, 완급조절이 잘 되어 있고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빼버린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원칙을 잘 지켜내고 있어 아주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묻겠다! 원하는 것은 눈앞에 있다. 그 대가는 어떻게 지불하겠나?” “이빨의 행상인”은, ‘구(舊)문명’이라 불리는 ‘현재의 우리가 사는 세계’가 멸망한 후 새롭게 나타난 신세계를 무대로 한다. 이 세계에서는 반인반수의 괴물이라든가 악령 같은 이계(異界)의 존재가 넘쳐나고 인간들은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또 다시 ‘살아남으려’ 새로운 문명을 구축하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인 소년 소나가 미스터리에 둘러싸인 여자 ‘무기행상인’ 가라미에게 구출된 후 둘이 같이 세계를 누비며 ‘무기거래’ 여행을 하는 과정을 스토리의 축으로 잡고 있는 ‘로드 판타지’다. 화려한 액션장면을 비롯해 볼거리가 넘쳐나고, 특이한 소재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다음 권을 궁금하게 만드는 스토리다. 무척 기대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