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하루카의 도자기

“어느 날 갑자기 앞으로의 인생이 보일 때가 있지 않나요? 나한테 TV 드라마 같은 감동적인 일은 일어날 수도 없고 그저 특별히 꿈도 없었고, 뭔가를 열심히 해본 기억도 없기 때문에 이런 게 아닌데...같은 말을 할 생각도 없지만...코야마 하루카 25세...대학을 나...

2012-11-02 유호연
“어느 날 갑자기 앞으로의 인생이 보일 때가 있지 않나요? 나한테 TV 드라마 같은 감동적인 일은 일어날 수도 없고 그저 특별히 꿈도 없었고, 뭔가를 열심히 해본 기억도 없기 때문에 이런 게 아닌데...같은 말을 할 생각도 없지만...코야마 하루카 25세...대학을 나와서 취직한 지 벌써 3년, 그것이 나와 비젠 도자기의 만남이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만큼 축복받은 인생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 말 앞에 ‘생계에 곤란을 겪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으면 더욱 더 완벽하겠지만,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란 곧 ‘꿈’이고,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수십억의 인간들 중에서 한줌도 안 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희귀한 경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은 커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하곤 하는데 사실 자신이 하고 싶어 하고, 즐거움과 보람까지 느낄 수 있는 그런 일을 발견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임을 우린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하루카의 도자기”는 바로 이런 ‘꿈’이라 부를 수 있는, 운명 같은 ‘천직(天職)’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걸어 나가기 시작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회사를 그만두고 각오했다고?! 쉽게 일을 그만둬버리는 놈이 10년씩이나 되는 수업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 사람 많아. 인간관계에 지쳤다든지, 기를 쓰고 일만 하는 일상에서 공허를 느낀다든지, 흙이라도 주물럭거리며 살아가면 풍요로운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둥, 그런 자아 찾기 놀이는 혼자 하라고. 얌전하게 회사로 돌아가서 체험교실이나 다니면 충분하잖아.” “하루카의 도자기”는 주인공인 하루카가 회사원 생활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하고 막막해 하던 무렵, 선배와 쇼핑 중에 우연히 들른 ‘현대 비젠 도자기전’에서 자신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운명의 ‘비젠 도자기’ 한 점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와카타케 오사무라는 작가가 출품한 커다랗고 무뚝뚝한 느낌의 접시 한 점이 하루카에게 자신의 남은 인생을 모두 이런 그릇을 만드는데 걸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하고, 회사를 그만 둔 채 오카야마 현 남동부의 비젠시 임베로 떠나게 만든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정보도 없이 그저 오직 ‘와카타케 오사무의 제자로 들어가 열심히 수행하여 나만의 비젠 도자기를 만들겠다.’라는 결심 하나만 갖고 움직인 하루카에게 세상은 그리 녹녹치 않다. 그래서 작품의 초반부에는 하루카가 오사무를 만나 제자로 입문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래, 처음 그 접시를 봤을 때...너무나 꾸밈이 없어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분명 정말 한순간일지도 모르지만 누가 뭐라 해도 그런 기분은 거짓말이 아니야. 그 큰 접시를 만든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하고...” 이 작품은 “비젠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일상을 소소하고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정보’와 ‘드라마’를 동시에 얻을 수 있게 배려해 놓은 만화다. 흥미진진하거나 스펙터클한 맛은 전혀 없는, 다소 심심할 수 있는 만화지만, ‘도자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주 즐겁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2012.09) 한국어판으로는 2권까지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