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더 바우트
“자신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아직 잘 모르는데 되고 싶은 게 뭔지 알게 뭐람.”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이름의 만화가 와타나베 페코는, 1977년 생으로 2004년에 “투명소녀”라는 작품으로 데뷔했으며, 일본에서는 ‘일상의 이야기를 훌륭하게 그려내는 작가...
2012-10-15
김현우
“자신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아직 잘 모르는데 되고 싶은 게 뭔지 알게 뭐람.”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이름의 만화가 와타나베 페코는, 1977년 생으로 2004년에 “투명소녀”라는 작품으로 데뷔했으며, 일본에서는 ‘일상의 이야기를 훌륭하게 그려내는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소개하는 이 작가의 3권짜리 작품 “라운더바우트”는 여중생의 일상을 담담하면서도 기발한 시선으로 다룬, 꽤나 잘 만들어진 만화라고 할 수 있다. “있지, 난 진심으로 전국의 여자 어른들한테 물어보고 싶어. 중학교 때 ‘창작무용’을 했던 경험은 당신의 인생에 뭔가 도움이 되나요?” “라운더바우트”를 읽으면서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는 어땠었지?’ 하는, 이제는 희미하다 못해 가물가물하기까지 한, 아련한 느낌이 물씬 나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다. 지금의 키가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 갑자기 훌쩍 커버린 키여서 그 해 여름엔 성장통으로 무릎이 많이 아팠던 기억도 나고, 그 전까지는 아무 느낌도 없었던 옆집 누나를 보고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해서 많이 놀랐던 기억도 있고, 아버지 담배를 몰래 훔쳐서 담벼락 구석에 숨어 쿨럭거리며 피워보던 기억도 난다. 누구에게나 추억은 있다. 그 추억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기억 속에 쌓아가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라운더바우트”가 나에게 전해준 첫 번째 느낌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간 잊고 있었던 나의 중학 시절’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는 어디론가 떨어지는 폭탄처럼 보이기도 했다. 폭탄이 떨어져서 ‘표류교실’처럼 안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으면.” “라운더바우트”를 읽다가 두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그 시절을 함께 보내며 울고, 웃고, 떠들어댔던 나의 오랜 친구들이었다. 그 당시엔 왜 그렇게 그런 시시하고 유치한 것들이 중요하고 재미있었는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일이지만, 그 풋풋한 기억을 함께 나눈 친구들이 지금도 여전히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 중 하나라는 것은 현재의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라운더바우트”는 주인공인 마코토의 일상을 중심으로 놓고, 그 주변 아이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스타일로 다루고 있어서 아주 다양하고 독특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주위의 친구들에게 사소한 일로 소외감을 느끼고 왠지 마코토와 어색해져버리는 에이코, 오랫동안 등교거부를 하고 있는 불안하고 예민한 정서의 소유자 타마키, 마코토를 좋아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주위에서 맴돌기만 하는 쿠로야나기 등등 아직은 모든 것이 불안하고 어설프기만 한 중학생들의 일상이 담담하면서도 독특하게 다뤄진다. 보기 편한 그림과 문학적인 감수성이 느껴지는 대사만으로도 이 작품을 읽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