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문예평론가 에토 준이 자살했다. 오오에 켄자부로, 이시하라 신타로와 나란히 ‘일본의 3대 지성’이라 불리며 인도주의 하에 있는 지구보다 더 무거운 생명의 존엄성을 호소하던 그가, 아내를 먼저 보낸 실의와 병고가 겹쳐서 자살했어. 지성 따위는 고통 앞에서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거야.” 삶과 죽음에 관한 테마는, 인류가 사고(思考)를 시작하면서부터 탐구해온 영원한 고민거리일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나 철학의 근원은, 바로 이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서 부터 출발한 행위임에 다름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유일하게 평등한 진리가 하나 있다면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고, 자신에게 언젠가는 닥쳐올 ‘죽음’이라는 미지의 종결 형태에 관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도대체 ‘죽음’이란 무엇일까? 종교에서 얘기하듯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 아니면, 끊임없이 움직이던 하나의 ‘생명체’가 어느 순간 갑자기 정지한 후 다시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자연계의 생물학적인 현상? 그것도 아니면, 아무도 그 실체를 과학적으로 밝혀내지 못한 거대한 불가사의? 물론 이 문제에 있어 정답은 없지만, 여러 각도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는 분명히 있는 문제다. 여기에 소개하는 일본만화 “데스 스위퍼”는, 실제로 존재하는 ‘유품정리회사’를 소재로 삼아 인간에게 있어 ‘죽음’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심도 있게 다룬, 매우 철학적인 작품이다. “그건 악몽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거기에 누워있는 것은 더 이상 형이 아니라 심한 악취를 풍기는 부패된 큰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유서는 없고, 전에 내가 두고 간 돈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손도 대지 않고 놓여있었다. 버려져있던 편의점 도시락의 유통기한은 약 3주일 전, 아마 그걸 마지막으로 형은 일체의 곡기를 끊은 것이리라.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경찰이 부검을 위해 형의 시신을 가져가고 그 자리에는 구더기와 부패한 살점이 붙은 이불과 유류품만 남아있었다.” 편모슬하에서 자라난 형제, 어릴 적부터 머리가 좋아 어머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의대에 들어갔던 형이 어느 날 갑자기 대학을 중퇴하고 ‘은둔형 외톨이’로 전락한다. 1년 넘게 자취방 안에서 나오지 않으며 ‘어떤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던 형은, ‘스스로 곡기(穀氣)를 끊어 버리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살한다. 엄마의 부탁으로 생활비를 갖다 주러 들렀다가 본의 아니게 형이 살아있던 마지막 모습을 보았던 동생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심각한 대화 몇 마디를 형과 나누었던 것이 전부였기에, 죽은 지 오래되어 끔찍한 모습으로 부패되어버린 형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그에 따른 정신적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이 마룻바닥...아래까지 부패액이 스며들었군요. 이렇게 되면 이 냄새는 아무리 밀고 닦아도 빠지지 않습니다. 통째로 가는 수밖에 없겠어요.... 가르쳐 드리죠. 생물이 죽어 부패되면 어떻게 되는지, 근육 등의 단백질이 분해돼 물이 됩니다. 즉, 액체가 되는 거죠....생물들에게 유일하게 평등한 건 죽음이에요. 그 목걸이...아마 그 목걸이가 당신 목숨보다 더 오래 남을 걸요? 훨씬 오래....이게 진실입니다....” 형이 살던 빌라의 집주인을 비롯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황망하고 정신없는 몇 시간을 보내고, 시신의 부검을 위해 경찰이 ‘끔찍하게 변해버린 형의 시체’를 가지고 나간 후부터 현장에 남아있던 동생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곤란한 문제’에 직면한다. 구더기가 들끓고 부패의 악취가 가득한 형이 살던 자취방 안, 바로 몇 시간 전까지 며칠인지도 모를 한 사람의 ‘죽음’이 방치되어 있었던 끔찍한 현장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것인가? 바로 그 때 장의사에서 의뢰를 받고 왔다는 새하얀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나타나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현장을 살펴보더니, 견적을 내고, 청소를 하고, 소독을 하며 ‘죽음의 실체’를 지우는 작업을 시작한다. “부패하는 시체. 생전에는 장내에 머물러 있던 박테리아가 죽음과 더불어 전신에 흩어지며 폭주한다. 그리고 며칠 후, 격한 악취를 풍기는 부패가스, 거품이 되어 녹아내리는 내장, 마치 생전의 ‘업(業)’이 모습을 드러내며 정화되길 기다리듯이, 하지만 지금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무너지기 전에 소각되는 클린(clean)한 시체들, 뭔가가 은폐되고 있다.” “데스 스위퍼”는, 형의 자살을 계기로 유품정리회사 “스위퍼스”에 들어간 한 청년의 눈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죽음의 형태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살, 고독사(孤獨死), 살인, 병사(病死) 등등 다양한 죽음의 모습들과 ‘사후(死後)의 형태’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 이후 청소, 소독, 불용품 회수, 유품 정리 및 공양, 현장 리모델링 등 ‘한 사람의 죽음을 클리닝’하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에서 다뤄지고 있는 ‘죽음’에는 그저 ‘사실적인 형태’만 있을 뿐 그 어떤 사연도, 동정도, 감상도 끼어들지 않는데, “스위퍼스”의 직원들이 말하듯, ‘누구나 꺼리지만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인 ‘누군가의 죽음을 정리하는 일’은 매우 고되고 꺼려지는 일들뿐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죽음의 흔적을 지우는 일’로 돈을 버는 이 회사의 업무를 리얼하게 소개하면서 ‘죽음’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한편, 아이러니컬하게도 “왜 사람은 삶이 힘들어도 살아가야만 하는가?”를 자연스럽게 역설하는 효과를 독자에게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남아있는 건, ‘과거에 살아있었던 것’의 잔해야.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단지 피상적인 얄팍한 부조리에 정의감을 내걸어봤자 그건 TV 와이드쇼를 보며 동정심을 품는 것과 별 다를 게 없는 짓이야...부조리한 일, 끔찍한 일, 구제할 길 없는 일, 자신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 어쩌면, ‘희망이 없다’는 게 유일한 희망일지도 몰라...나도 잘 몰라. 하지만, 그래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돼.” ‘죽음’을 다룬 매우 유니크한 만화 “데스 스위퍼”는 5권으로 완결되었고,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스토리가 다소 산만해지는 느낌도 들지만 전체적으로는 괜찮았고, 한번쯤 읽어보면 좋은 경험을 선사할만한 작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