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라스토치카
“오늘은 경황이 없어서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미안하지만....잘 왔어, 아리마 가문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때는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めいじじだい : 메이지 유신 이후의 메이지 천황의 통치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메이지 천황의 즉위는 메이...
2011-12-14
유호연
“오늘은 경황이 없어서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미안하지만....잘 왔어, 아리마 가문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때는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めいじじだい : 메이지 유신 이후의 메이지 천황의 통치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메이지 천황의 즉위는 메이지 유신 전의 1867년 2월). 1868년 1월 3일 왕정복고의 대호령에 의해 메이지 정부가 수립된 후 1912년 7월 30일 메이지 천황이 죽을 때까지 44년간이다. 일본제국의 전반에 해당되는 시기이며, 1868년부터 1912년까지의 시기는 메이지 유신부터 신해혁명 종결까지의 시간이다), 일본의 모든 것이 바뀌어가던 혼란스러운 혁명기의 시간, 화족(華族, 1869년 일본 왕실에서 중세의 봉건영주제도를 없애고 그 대신 귀족작위를 하사하면서 창설한 귀족 계급을 총칭하는 말. 화족 계급은 1869년 메이지 유신의 서구화 계획의 일환으로 창설되었다. 중세의 다이묘[大名:봉건영주]와 구게[公家:궁중귀족]는 이 화족 계급으로 일원화되었고 그동안 누려오던 특정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박탈당했다. 1884년 화족은 다시 유럽 귀족을 모델로 하여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으로 재편성되었다. 공무를 탁월하게 수행한 사람들도 화족의 일원으로 편입되었다. 1889년 이후 이 계급은 중의원의 멤버가 되었다. 화족은 1947년에 제정된 일본 헌법에 의해 폐지되었다. )인 아리마 자작 가문에 닛포리(당시 도쿄에 점재해있던 빈민굴 중 하나) 출신의 하녀가 새로 들어온다. 방직공장에 다니던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죽고 가족이라곤 어린 남동생밖에 남지 않은 이 어린 소녀 츠무라 하나는 생계를 위해 자작가문으로 들어가 숙식을 해결하는 식모 같은 하녀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아리마 미츠유키 님, 아리마 자작 가문의 차기 당주, 목적이 있으면 주변을 신경쓰지 않는 분, 나 같은 고용인에게도 부드럽게 웃어주는 분, 어떤 게 진짜지? 대체 어떤 분이실까...”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젊은 나이에 자작 작위를 계승하며 아리마 가문의 당주가 된 미츠유키는 원래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인 감수성 예민한 소년이었으나 자신이 짊어져야 할 것의 무게를 부모의 엄한 교육으로 일찌감치 깨달아 꿈을 버리고 현실에 완벽히 적응한 조숙한 청년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에게는 아주 차갑고 냉정한 처세술과 슬프도록 우울한 느낌의 우수어린 얼굴이 공존하는 사람이었다. “예의가 아닌 일에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사죄를 해야 마땅해, 그리고 그건 네 말대로 아버지 물건이지만...어떻게 쓸 건지는 내가 정할 일이고, 하나, 왜 그렇게 화를 내지?” 태어날 때부터 모든 조건이 완벽히 다른 여자와 남자가 ‘하녀와 당주’라는 관계로 만나게 되면서 둘 사이에서는 묘한 감정이 싹트게 된다. 어떤 때는 애잔한 슬픔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서로의 ‘갭’에 당황해 하면서 둘은 연인 같은 관계로 점차 발전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런 만남에는 당연히 장애가 따르는 법, 오랜 시간에 걸쳐 내려온 두터운 사회시스템의 벽 앞에서 이 젊은 연인들은 상처를 입고, 절망하며, 서로를 피하게 되는 아픈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 “어떻게...어떻게 그렇게 놓아버릴 수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자리에서 바로 미소를 지을 만한, 추억이 있는 물건을 쉽게 던져버릴 수 있을 만한, 그런 감정이 미츠유키 님 마음에는 있는 걸까.....” 작가인 미요시 후루마치는 한국 독자에게는 아주 생소한 이름이며, 실제로도 이 작품 외에는 한국어판으로 번역되어 출간된 것이 없다. 여기에 소개하는 이 생소한 일본 작가의 “동경 라스토치카”는 2권으로 이야기가 완결되는,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귀족과 하녀의 슬프고도 짧은 사랑이야기이다. “조금 전에 만난 스기타니 백작 말이야, 3평짜리 방이 2개 있는 집에서 다섯 가족이 살고 있다고 하더군, 금전적으로 어려워서 우리 집에서 돈을 빌린 적도 있다던데... 스기타니 백작은 회관에 올 때만 저렇게 풀 먹인 셔츠를 입고, 담배를 한 대 피운 뒤 홀로 집에 가지, 그렇게까지 해서 지켜야 할 것이란 게 대체 무엇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힘이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뼈대만 있고 살이 없는’ 느낌의 무언가 허전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일병합’이라는 아프고 치욕적인 사건 때문에 누구나 언짢아 할 일본의 메이지 시대는 일본인들에게도 아주 중요하고 가혹한 시대였다. ‘메이지 유신’이라는 일본 근대 사회의 토대가 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일본 사회는 급속도로 빠른 사회혁명을 거쳤고, 그 결과 여기저기서 많은 부작용이 일어났으며, 결국 제국열강들과의 경쟁을 통해 자국민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까지 고통의 도가니 속에 빠지게 하는 제국주의로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메이지 시대가 끝나고 짧은 다이쇼 시대를 거쳐 쇼와 시대로 접어드는 시간 동안 일본은 세계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참혹한 사건과 상처를 전쟁을 통해 스스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인 이러한 시대배경을 뒤로 깔아놓고, 이 작품에서는 이런 ‘변화의 시대’에 너무나 사회적인 ‘격’이 다른 남녀가 드라마틱하게 만나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 것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인데, 무릇 이런 ‘변화의 시대’에는 예상치 못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개인의 의지’가 무시되는 상황이 마구 발생하곤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시기를 다루는 드라마나 이야기를 만들 때 ‘변화의 시대’라는 표현보다는 ‘격동의 시대’라는 표현을 쓰곤 하나보다.) 아무튼 이런 ‘시대의 도움’을 받는 이야기에는 주인공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몇 가지 난관이 있다. 비극의 감동정도를 정하기도 하는 이러한 난관들의 난이도에 따라 이야기의 ‘살’이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이 작품의 기승전결은 이렇다. “남녀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만남”?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발생”? “여주인공 어머니 죽음의 원인과 남자 주인공 주위 사람들의 반대, 사회적인 시선 등등 난관에 봉착” ? “서로의 마음이 통했다는 과정에 접어들자마자 여자 주인공에게 불치병 발병” ? “결국 여주인공은 죽고 남은 남자 주인공의 아련한 회상과 함께 무언가 아쉬운 마무리” 이것이 두 권의 분량으로 완성된 이 작품의 골자다. 이 작품과 아주 유사한 설정을 갖고 있으나 시대배경을 19세기의 영국으로 한 “엠마”같은 작품의 경우, 너무나 훌륭한 작품의 ‘살’들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독자들의 감정을 마구 흔들어 대는 반면, 이 작품은 마치 성의 없이 만들어진 ‘광복절 특집 드라마’같은 느낌이다. 이런 ‘뼈대’만 있는 빈약한 스토리에 흔하디 흔한 설정으로는 매년 ‘폭풍감동’의 역사드라마에 단련되어 있는 한국독자들에게 다가가기 매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