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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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리 하우스에 어서오세요!

“시끄러운 거리에서 다소 벗어난 숲 속에, 그곳이 있습니다. 신록이 눈부신 이 계절, 호텔 ‘퀸 앨리스’에도 따스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동화 같은 공간 속에서 귀여운 여자 주인공이 멋진 남자 주인공과 함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을 풀어나가며 사랑을 쌓아간다’는 ...

2011-05-25 석재정
“시끄러운 거리에서 다소 벗어난 숲 속에, 그곳이 있습니다. 신록이 눈부신 이 계절, 호텔 ‘퀸 앨리스’에도 따스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동화 같은 공간 속에서 귀여운 여자 주인공이 멋진 남자 주인공과 함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을 풀어나가며 사랑을 쌓아간다’는 일본 순정만화의 전형적인 구성법은 이젠 단순한 표현 기법이나 연출 방식을 벗어나서 아예 하나의 ‘장르’ 또는 ‘코드’로 불려도 아무런 손색이 없을 것 같다. 90년대를 풍미한, 웅장하고 열정적인 순정만화의 서사적 기법은 이젠 한물간 촌스런 스타일이라고 말이라도 하는 듯, 2000년대에 들어 등장하기 시작한 순정만화들은 소소하고, 담담한 일상 속에 숨어있는, 작은 설렘을 발견하는 에피소드들로 이야기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이렇듯 명확한 표현 스타일이나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의 커다란 변화가 독자들의 성향이 바뀌었기 때문에 상업적인 의도에 맞추어 작품들이 변화한 것인지, 아니면 요즘 순정 작가들의 감수성이나 감성 자체가 이전 세대의 작가들과는 매우 달라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순정만화는 일본산이든 한국산이든 예전과는 매우 다른 모습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장마가 오기 전, 정원의 장미가 활짝 피어, 호텔 ‘퀸 엘리스’를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90년대 순정만화 스타일의 가장 큰 특징은 이야기의 ‘비극적 구조’다. 주인공의 기구하고 슬픈 운명, 거대한 시간의 수레바퀴에 휘말린 채 엇갈려 가는 주인공들의 사랑,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할 수 밖에 없는 등장인물들의 복잡다단한 상황들 등등, 보는 이의 폐부 깊숙한 곳을 강렬하게 찔러오는 시속 100마일의 직구 같은 스타일인 것이다. 2000년대 순정만화 스타일은 인물을 둘러싼 외적 상황보다는 내면의 심리 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에피소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많다. 그 또는 그녀를 둘러싼 인물, 사회, 일상의 풍경들 속에서 무언가 아주 작고 소소한 설렘, 평범함 속의 작은 일탈 같은 느낌을 던져주는, 언뜻 보기엔 직구처럼 보이지만 느릿하게 변화하는 체인지업 같은 스타일인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컨트리하우스에 어서 오세요!”는 2000년대를 주름잡는,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스타일의 전형성을 한 몸 가득 품고 있는, 예쁘장한 팬시 느낌이 물씬 나는 일본산 순정만화다. 다이쇼 시대에 지어진 듯한 유럽풍의 고풍스러운 호텔 ‘퀸 엘리스’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을 에피소드의 주된 내용으로 채우고 있으며, 여자 주인공인 신참 메이드 하나이로가 관찰자이자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이 작품의 남자주인공인 ‘왕자님’ 역은 호텔의 컨시어지를 맡고 있는 집사장 미나미다. 훤칠한 키와 세련된 외모에 지적인 느낌의 안경, 거기다가 ‘최고의 홍차’와 접대기술을 갖고 있으며 국제적인 인맥까지 갖고 있는, 어느모로 보나 완벽한 왕자님이다. 이 작품의 스타일은 매 회 ‘퀸 엘리스’에 새로운 손님이 방문하고 이 손님의 사연에 맞추어 ‘접대’해가면서 남녀주인공의 애정이 소소하게 쌓여나가는 방식이다. 스산한 가을 날, 급격한 감정의 소비보다는 잔잔하고 소프트한 감성의 충만감을 느껴보고 싶은 독자들께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