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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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개의 침

“너는 혼자가 아니야” 어느 날 갑자기 이세계(異世界)에서 날아온 신비한 존재는, 언제나 스토리 산업 전체의 주된 소재 중 하나였다. 만화 장르에서 이 계통 최고의 명작이라 할 수 있는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寄生獸)”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스티븐 스필...

2010-10-15 김진수
“너는 혼자가 아니야” 어느 날 갑자기 이세계(異世界)에서 날아온 신비한 존재는, 언제나 스토리 산업 전체의 주된 소재 중 하나였다. 만화 장르에서 이 계통 최고의 명작이라 할 수 있는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寄生獸)”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에서도, 플레이 스테이션에서 돌아가는 게임 안에서도, 미지의 존재를 추적하는 드라마에서도, 세계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소설에서도, 이 신비한 존재와의 조우는 언제나 이야기의 중심에 있어왔다. “너는 한 번 죽었어,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렸어, 미안하게 됐다.” 여기에 소개하는 “70억 개의 침(針)”은, 바로 이런 이세계(異世界)에서 날아온 신비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 1권밖에 나오질 않아서 (2009.11.07 현재) 이 작품이 “기생수”나 “가이버”정도의 명작의 반열에 오를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1권만으로도 어느 정도 괜찮은, 꽤 잘 만들어진 작품이란 건 확실하다. 사실 이런 류의 작품은 대부분, 설정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설정보다는 캐릭터와 연출, 스토리에 더 비중을 둔 듯한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주인공인 히카루는 어떤 상처를 지니고 도시로 쫓겨 온 섬 출신의 소녀인데, 고모네 집에 얹혀살며 주위의 아무와도 교감하려 하지 않는 굉장히 음울한 소녀이다. 자신 스스로 주위에 쳐둔 강력한 결계처럼, 하루 종일 커더란 헤드폰을 끼고 음악만을 듣고 있으며, 주위의 누구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반기지 않고 자신이 다가가지도 않는다. 그러던 히카루에게 수학여행 중에 기이하고도 신비한 사건이 일어나고, 우주 저편에서 날아온 신비한 존재와 공생하게 된 히카루는 그 어떤 거대한 목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위와 소통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나 그 와중에 히카루는 또래 아이들과의 우정, 교감, 감정 같은 작고 소중한 느낌들을 공유하게 되고,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한다. 이 작품이 “기생수”와 다른 지점은 여기에서부터 발생한다. 초기의 설정이 “기생수”의 표절이라 할 만큼 아주 흡사하지만, “기생수”와 분명히 다른 길을 걸어가려 한다는 작가의 의지가 여기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1권에서까진 아직 “기생수”의 거대하고도 깊은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너는 혼자서는 살아있을 수 없어.” 요즘 만화뿐만 아니라,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 느껴지는 인물상이,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외부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스스로 외톨이’들이 무척이나 많아졌는데(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것 같다) 그건 요즘의 시대상과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인물상이나 시대상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것이냐, 사회적으로 유익한 것이냐 하는 문제일 것인데, 아직 그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이나 해결책을 제시한 학자나 정치가는 없다. 점점 단절되어만 가는 현대인의 소외감을 치유해야할 병이라고 규정하기엔 그들도 너무나 두려운 것일 게다. “70억 개의 침(針)”은 주인공인 히카루를 통해 요즘의 단절된 사회상을 표현하면서도 그 해결책을 제시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1세기형 “기생수”라 할까?^^ 어서 빨리 2권을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