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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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작의 활

“그대가 바칠 자인가? 그대의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청룡, 백호, 주작, 현무... 2007년도 한류스타 ‘욘사마’의 브라운관 귀환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일본까지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등장한 아주 익숙한 이름이다. 원래 이 ...

2010-10-08 김현우
“그대가 바칠 자인가? 그대의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청룡, 백호, 주작, 현무... 2007년도 한류스타 ‘욘사마’의 브라운관 귀환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일본까지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등장한 아주 익숙한 이름이다. 원래 이 4개의 신(神)들은,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의 동서남북 4방위를 지켰던 신비스런 동물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풍수지리에서 주로 쓰이는, 아주 오래된 동양철학의 상징 같은 신수(神獸)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에서도 이 네 마리의 신수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일종의 주술이었고, 우리가 흔히 접하는 판타지 만화나 소설 속에서도 자주 등장해 동북아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명칭들이다. (오죽하면 ‘좌청룡 우백호’라는 속담까지 있을까?) “청룡의 창이다. 그리고 네가 받은 신기가 바로 주작의 활” 여기에 소개하는 “주작의 활”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방위 신수를 소재로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와 화려한 비주얼을 선보이며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아주 잘 만들어진 판타지 만화다. 총 12권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1권부터 전혀 허술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플롯이 짜여져 있어 마지막 권을 덮을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무척이나 재미있는 만화다. (이게 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것이 매우 놀라울 정도다) “신기를 받으려면,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신에게 바치는 게 규칙이다.” “주작의 활”의 장점은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게 짜여진 설정이다. 작화나 연출, 스토리도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지만,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작품의 설정이라 할 수 있다. “주작의 활”에 등장하는 4명의 신기를 받은 주인공들은, 각자에게 소중한 것 하나씩을 신에게 바친 후에야 신기를 사용할 수 있고, 그들의 능력을 쓸 수 있게 된다. 청룡의 신기를 받은 에조는 자신의 감각 중 일부를, 주작의 신기를 받은 요스케는 자신의 미래로 상징되는 수명을, 현무의 신기를 받은 이로리는 어머니의 생명을, 백호의 신기를 받은 켄지는 친구의 생명을 바친 후에야 신기의 능력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하나 뛰어난 점이라면, 이 4개의 신기가 주인공의 능력이나 상태의 변화에 따라, 또는 상황의 긴박함에 따라서, 또는 바치는 것을 늘려 또 다른 거래를 시도할 때, 한층 더 진일보한 능력을 보여주며 더욱 강력한 무기로 변화하는 설정이다. 이러한 변화무쌍하고 폭넓은 설정의 깊이는 작품의 스토리를 풍부하게 해주어 읽는 이로 하여금 극적인 재미나 감동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또한 이 4개의 신기는 각자의 역할이 다르다. 청룡은 창, 주작은 활, 현무는 방패, 백호는 발톱으로 불리는데 이 4가지의 무기가 하나의 연계플레이로 작동할 때 최고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치밀한 설정들을 스토리에 따라 제약하거나 그 능력을 제한하고 무시무시한 열 마리의 권족들과 차례차례 싸움을 붙여나가는 이 작품은, 마치 한 때 애니메이션계의 혁신으로 불렸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독자에게 긴박감을 전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모든 것이 해방된 신기의 능력자들과 권족의 우두머리와의 최후 결전은 말 그대로 스펙타클의 정점이자 드라마의 클라이막스로 독자들을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