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 맨션
“지상 35,000미터 상공에 떠 있는 원형 구조물 속, 지구를 따라 도는 상, 중, 하층 3개로 구분된 거대한 링 시스템 맨션, 우리들은 그 거대한 맨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구 전체가 자연보호 구역이 되어, 내려가는 것 자체가 허가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화...
2010-09-28
김현우
“지상 35,000미터 상공에 떠 있는 원형 구조물 속, 지구를 따라 도는 상, 중, 하층 3개로 구분된 거대한 링 시스템 맨션, 우리들은 그 거대한 맨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구 전체가 자연보호 구역이 되어, 내려가는 것 자체가 허가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화를 통해 아주 간혹, 단순한 재미로 그치는 것이 아닌, 사람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행복한 상상력”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종류의 상상력은 책을 읽는 내내 심신(心身)을 릴렉스하게 만들어주면서, 나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한 사유(思惟)를 하게 해주거나,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게 해주는, 섬세하면서도 이타(利他)적인 힘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포근한 상상력’을 가진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삶에 지쳐가는 우리에게 아주 소중하고 행복하며 중요한 순간이 되는 것이다. “일이라는 건 ‘창문을 닦는 것’, 지상에서 35,000미터 떨어진 링 시스템의 외벽 창을 닦는 일, 바깥 환경에 맞춰 작업을 하기 때문에 고액의 기자재를 사용한다. 그래서 의뢰도 상층의 고소득자에게서만 들어온다. 하지만 극히 드물게 하층부에서의 의뢰가 있었다.” 이와오카 히사에의 “토성맨션”은 오랜만에 접해본 “행복하고 포근한 상상력”이었다. 세미콜론에서 내놓은 한국어판이 현재 2권까지 출간되어 있는데, 작가 소개 글에 보니 “토성맨션”은 2006년 4월부터 월간 “KIKI”에 연재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현재 4권까지 출시되어 있는 작품이라 한다. 1976년생이면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 넷인데, 나이에 비해 무척이나 성숙한 느낌의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기본적으로 따뜻한 감수성을 가진 작가 인듯하다. “아래쪽은 창문에 먼지가 쌓여서 밖이 안 보여요, 그래서 빛도 전혀 들어오지 않아요, 인공 빛이 아닌 진짜 태양 빛을 받으면서 식을 올리고 싶어요, 이상한 부탁 아니잖아요, 줄곧...꿈이었어요, 돈도 모아왔어요, 부탁드립니다.” “토성맨션”의 세계는 단순히 설정만 놓고 보자면, 무척이나 어두운 묵시록(?示錄)적인 설정이다. 지구환경이 극도로 안 좋아져서 모든 인류는 대기권 밖의 링 구조물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지구 전체가 자연보호 구역이 되어 내려가는 것 자체가 허가되지 않고 가끔씩 시찰단이라 불리는 선발된 인간들만이 내려가고 있다. 지상 35,000미터 상공에 지어진 이 거대한 원형 구조물은 지구의 자전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회전하고 있으며 지구의 몸통을 따라 하나로 이어진 거대한 반지 모양이다. 그래서 지구는 우주에서 보면 마치 인공적인 띠를 가진 토성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인류는 그 부와 지위에 따라 상층과 하층으로 나뉘어 살고 있으며 중층부는 공공시설이다. 주인공인 미쓰는 이 거대한 구조물의 외벽에 해당하는 ‘창문’을 닦는 일을 하는 소년으로, 이 만화의 이야기는 미쓰의 ‘일’에 관련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설정 자체는 아주 음울하고 갑갑하지만, 작가는 이 신세계의 시스템이나, 인간 사이의 불평등 같은, 사회 구조에 관한 문제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층민이든 상층민이든 간에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햇빛’이며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어루만져주는 ‘포근한 온기’라는 것을, 미쓰의 ‘일’을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뜻하고 포근한 상상력을 원하는 분께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