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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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미식가

“이 책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늘상 접하는 음식이 가져다주는 맛의 이미지에 관한 이야기다.” - 작가의 말 “그들도 사랑을 한다.”, “너의 시선 끝에 내가 있다.”, “루어” 등의 작품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가적 색깔을 확연히 드러냄으로써 확고...

2010-09-11 김진수
“이 책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늘상 접하는 음식이 가져다주는 맛의 이미지에 관한 이야기다.” - 작가의 말 “그들도 사랑을 한다.”, “너의 시선 끝에 내가 있다.”, “루어” 등의 작품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가적 색깔을 확연히 드러냄으로써 확고한 팬 층을 보유하고 있는 작가 서문다미가 자신의 동생인 서문다실과 함께 ‘음식이 가져다주는 이미지’를 주제로 단편집을 출간하였다. 제목은 “행복한 미식가”로 초콜릿, 빵, 위스키, 커피 등 각각의 다양한 소재들로 이루어진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인, 지옥의 불길에 그슬린 악마의 궁둥이만큼 시커먼 초콜릿을 제발 보내주시오.” - 음란물 유포죄로 감옥에 갇힌 사드 백작이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 中에서 “맛의 이미지”라고 하는 것은, 하나로 정의 내리기 힘든 여러 가지의 감성이다. 어떤 이에게는 슬픈 추억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행복한 순간이 될 수도 있으며, 어떤 이에게는 상상의 나래를 펴는 단초(端初)가 될 수도 있다. 서문다미와 서문다실은 “행복한 미식가”에서 “음식이 가져다주는 맛의 이미지”를 ‘상상의 단초’로 활용하여, 재미있고 날카로운 매력을 뿜어내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구상하였다. 매 단편이 끝날 때마다 소개되는, 소재가 된 음식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나 유용한 상식 같은 것은, 독자에겐 행복한 덤이다. “초콜릿, 아즈텍문명을 정복한 스페인을 통해 유럽 전체를 정복한 귀족적 음료, 그 진한 향과 씁쓸한 맛은 독을 숨기기 적합하여 정적을 제거하는 ‘우아한 암살’에 널리 이용되었다.” 단편집 “행복한 미식가”는, “사탄의 궁둥짝”, “마지막 한 방울을 위하여”, “무서운 빵”, “슬란의 달라”, “행복한 미식가”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단편 “사탄의 궁둥짝”은 초콜릿을 사랑하는 바람둥이 귀족 사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엽기살인과 코미디가 뒤섞인 독특한 작품이다. 두 번째 단편 “마지막 한 방울을 위하여”는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지방으로 밀주(密酒)실태를 적발하러 떠난 잉글랜드 세금 징수관의 여정을 재미있게 구성한 단편이다. 이 단편은 ‘위스키’에 관한 에피소드로 ‘위스키’가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그에 얽힌 잉글랜드-스코틀랜드 간의 사회적 갈등을 짤막하게나마 만화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세 번째 단편 “무서운 빵”은 10세기 무렵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약탈민족 바이킹에게 납치당한 견습 수사가 겪게 되는 이야기로, ‘빵’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절대신 ‘오딘’을 섬겼던 바이킹족이 기독교에 의해 길들여져 가던 과도기의 이야기로, 바이킹의 투르가일 족장과 견습 수사 조슬렌의 ‘야오이’ 분위기가 풍기는 잔잔한 작품이다. 네 번째 단편 “슬란의 달라”는 ‘커피’를 소재로 한 이야기로, 이슬람 세계의 정복자 ‘술탄’과 그에게 공물로 바쳐진 비잔틴 제국의 공주 ‘이레네’의 안타까운 사랑을, ‘단편의 미학’으로 절제하여 담금질한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다섯 번째 단편 “행복한 미식가”는 앞의 네 편과는 다르게 ‘식인(食人)’을 소재로 한 이야기다. 중세시대 ‘십자군 원정’을 무대로 한 이 단편은, 어느 요리사 견습생이 약탈과 전투가 반복되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극도의 공복감을 제어하지 못하고 식욕(食慾)에 정복당해 시체를 먹는 충격적 결말로 끝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