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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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렴치학원

나가이 고는 〈마징가Z〉로 로봇 만화에 한 획을 그었다. 나가이 고 이전의 로봇들은 사람이 조종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마징가Z〉는 조종사가 비행정을 타고 로봇 머리속으로 들어가 합체하는 방식을 선보인 뒤 일본 로봇만화는 모두 사람이 로봇으로 들어가 조종하는 방식으로 ...

2010-09-10 김현우
나가이 고는 〈마징가Z〉로 로봇 만화에 한 획을 그었다. 나가이 고 이전의 로봇들은 사람이 조종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마징가Z〉는 조종사가 비행정을 타고 로봇 머리속으로 들어가 합체하는 방식을 선보인 뒤 일본 로봇만화는 모두 사람이 로봇으로 들어가 조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나가이 고는 거대로봇 장르를 완성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나가이 고의 70년대 로봇만화들이 세계적으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지만 그의 방대한 작품과 영역에 비춰 볼 때는 그의 작품 활동 초기의 주요작들 일부일 뿐이다. 나가이 고는 60년대 후반 이후 일본 만화 전성기를 선도한 주역이다. 더욱 돋보이는 점은 올해로 데뷔 40년째를 맞았지만 여전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국내에는 〈마징가Z〉 등 그의 원작 만화가 아닌 텔레비전용 로봇 애니메이션들만 소개되었고 정작 최고 대표작들로 꼽히는 〈파렴치학원〉이나 〈데빌맨〉 〈바이올런스 잭〉 등은 여건상 전혀 알려지지 못했다. 나가이 고는 일본 만화계에서는 독특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로봇은 물론 개그, 전투 미소녀물 등 여러 분야를 주특기로 삼으면서 야오이(일본 특유의 동성애 만화), 하드보일드까지 폭넓은 장르를 넘나드는 팔방미인형 작가다. 또한 대중적으로 최고 인기를 누리는 주류 작가이면서도 사회적 통념과 기성세대의 고루함을 조롱하고, 천편일률적인 대중문화의 공식에 반항하는 길을 걸었다. 나가이 고우의 데뷔작인 개그만화〈파렴치학원〉(1968)은 당시 일본에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고 이후 일본 만화사에서 일대 ‘사건’이 됐다.〈파렴치학원〉은 옷 대신 호랑이 가죽을 걸치고 여학생들의 치마를 들추는 교사, 그리고 비정상적인 교사들과 전면전을 벌이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래서 교육계와 기성세대들로부터 연재를 중단하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반대편에선 이 만화를 지지하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이런 논란 속에서 나가이 고는 변태교사와 학생들의 난동에 맞서 정부가 학교를 공격해 결국 등장인물들이 몽땅 전멸한다는 충격적인 결말로 끝내며 맞받아쳤다. 그의 작품 가운데 최고작으로 평가받는〈데빌맨〉은 도식적인 선악 개념을 벗어나 주인공이 악 그 자체이며 인간이 곧 악마라는 설정으로 이후 여러 만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또 다른 대표작인〈큐티 하니〉의 경우 예쁜 소녀가 주인공으로 나와 전투를 벌이는 전투 미소녀물로, 역시〈세일러 문〉등 많은 비슷한 만화들의 원조 격이 되었다.』 (『...』부분은, 한겨레신문 2007년 7월 6일 자 구본준 기자 기사에서 인용) 나가이 고의 대표작 중 하나인 “파렴치 학원(ハレンチ?園, Shameless School)”은,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된 작품으로, 연재 당시 사회적으로 첨예한 논쟁을 촉발시켰고, 그 충격적인 결말로 독자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소위 말하는 “문제작”이다. 일본 만화사에 획을 그은 몇몇 “문제작” 리스트에 항상 랭크되는 거장의 사회성 짙은 작품인 “파렴치 학원”은, 일본 사회의 어둡고 습한 면을 코믹과 개그 코드를 섞어서 한 단계 비틀어 풍자한 작품으로 나가이 고의 세계관을 명확히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에 소개하는 “파렴치 학원”은, 우리나라에도 정식으로 출간된 “미녀형사 아사미”의 작가 아루가 테루토가 나가이 고의 원작을 2007년도 버전으로 새롭게 각색한 “파렴치 학원”의 리메이크 판이다. 책의 맨 마지막에 저작권 표기를 보면, “HARENCHI GAKUEN -THE COMPANY- by Go Nagai, Teruto Aruga”이라 되어있다. 2007년도 리메이크 판 “파렴치 학원”은, 무대가 학교가 아니라 통신판매기업 ‘주식회사 파렴치학원’이다. 원작을 읽어보질 못해서 원작과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아쉽지만, 2007년도 판은 나에겐 그저 그런 성인만화일뿐, 무언가 딱히 특별한 것이 느껴지질 않았다. 물론 이 만화가 처음 등장한 1968년의 일본에서는 작품 자체의 존재만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될 수 있었겠지만, 현재 한국어판으로 19금 딱지를 붙이고 출간된 2007년도 판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성인만화 중 한 권일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