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눈은 아름답고 도톰한 입술은 누구나 한 번쯤 입을 맞춰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며 그녀가 목욕을 하고 나오는 아침은 내게는 신(神)의 축복이다. 그녀의 몸은 참으로 탐스럽다. 물론 그녀는 혼자 살고 있다. 가끔 밤늦은 시간에 여럿의 남자들이 와서는 자고 가거나 새벽녘에 돌아간다. 그러나 내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녀의 혼숙보다도 한 달에 보름 정도나 외박을 하는 것이다. 그런 날의 아침에는 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욕탕 문을 열고 응접실을 걸어 나오는 그녀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재수가 좋은 날이 될 모양이다. 그녀는 타월로 몸을 감싸지 않고 욕실을 나왔다. 그녀는 낡은 지프로 언제나처럼 아침을 나선다. 이제 내게는 긴 고독의 시간이 남아있다.” 이현세의 1989년 作 “블루엔젤”은, 한국만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터프한 여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간스포츠에서 연재될 당시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강력계 형사로 활약하는 하지란 경위가 한국사회 곳곳에서 암약하는 각종 범죄자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이 주된 내용인 이 작품은, “19세 미만 구독불가” 딱지가 붙을 만큼 표현 수위가 높고, 잔인하다. 소재도 소재지만, 범죄자와 형사의 대결을 단순한 액션활극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숙한 문제, 즉 범죄가 발생되는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친 ‘어른들을 위한 만화’인 것이다. “나는 이 타락한 도시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았어요, 그러나 볼수록 선과 악을 구분하긴 힘들었죠, 누구...자신 있게 내게 선과 악을 얘기해 줄 수 있나요?” 이현세는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손상익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여성들은 역사적으로 보아 철저한 남성중심사회의 구조 속에서 절망감을 속으로만 삭이고 살아온 불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중략)....제가 ‘블루 엔젤’을 창작한 까닭이랄까 여성형사를 등장시킨 이유는 어떻게 보면 실험에 가까운 시도를 해본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실험의 가설은 ‘여성 쪽에서 보는 남성사회의 묘사’에 다름 아니지요. 그래서 ‘블루엔젤’을 창작해 가는 과정에서도 여성들의 반응이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블루 엔젤”이라는 제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푸른 천사’란 남성들의 물리적인 힘에 억눌리고 찌들린 그리하여 성(性)적 좌절감을 맛보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세태를 ‘위기’로 단정하고 그 위기를 불식시키는 여자형사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봐야지요, 어쩌면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희망사항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성의 위기’를 극복하는 상징으로서 작가가 창조해낸 ‘푸른 천사’ 하지란의 캐릭터는 작품 전반에 걸쳐 너무 섹시한 매력만이 부각되었다며, 오히려 ‘여성의 상품화’라는 비판을 이현세에게 듣게 했다. “중학교 중퇴, 18세 소년원에 입소, 털이 전문, 28세 절도 전과 1범, 30세 한 달 동안 35건의 강도, 절도 행각, 하루에 세 집을 턴 날도 있음, 모 술집 호스테스와 호텔에서 잠을 자다가 검거됨, 대통령 취임 특사로 2년 후 출옥, 두 달 후 은행을 털다가 동거중인 애인의 다락방에서 검거, 애인의 증언에서 새디스트적인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됨, 이때부터 대다수의 초기 정신 분열에서 보이는 동키호테 식의 과대망상이 보임, 자기의 대담성에 대한 자랑스러운 표현, 이것은 열등감에서 벗어나려는 자기 증명으로 생각됨, 탈옥 한 달 후... 전번에 실패한 은행을 다시 털어서 대담성을 보임, 피해액 5,000만원, 잇따라 직원 봉급 수송차량을 습격하여 탈취한 2억을 빈민촌에 뿌리고 달아남, 이때는 광폭성도 보여 최초의 인명 피해자가 생김, 정신 이상자의 전형적인 피해 의식과 적대 의지가 강하게 돌출됨, 9월 15일 14세 여중생을 겁간하려던 고교생 2명을 살해하고 그는 잠적했다.” “블루 엔젤”은,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시작된 이현세의 ‘전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이현세의 대표작들을 연차순으로 꼽으라면, “국경의 갈가마귀”(1982), “공포의 외인구단”(1983), “까치의 양지”(1984), “지옥의 링”(1985), “활”, “제왕”(1986), “떠돌이 까치”,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1987),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두목”(1988), “아마게돈”, “블루엔젤”, “카론의 새벽”(1989), “남벌”(1993), “천국의 신화”(1997) 등을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특히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정면으로 파고들어,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에 맞서, 온 몸을 던져 투쟁하는 주인공들의 비극을 다룬, 사회성 짙은 성인 극화를 꼽으라면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두목”, “블루엔젤”, “카론의 새벽”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현세가 “블루엔젤”에서 보여준 옴니버스 형식의 성인극화는 그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주인공인 하지란의 시선으로 다양한 범죄자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그들의 내면을 파헤치면서, 왜 이 사회에서 ‘범죄’가 없어지지 않는지를 독자에게 시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강득수...그래...당신과 내가 다른 모습으로 서 있었던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어, 당신의 천사는 당신 앞에서 죽어갔고 나의 천사는 나를 지켜주고 자기가 죽었다. 그것은 단지 운명이었을 뿐이었어, 당신의 천사가 당신 앞에서 죽어갔을 때, 당신의 영혼은 아귀가 되었고, 나의 천사가 나를 지켜주고 갔을 때 나는 총을 들었다. 당신과 나...둘 다 증오의 대상은 같은 것이었고 둘 다 분노의 총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타락한 이 도시를 향해 당신이 아귀처럼 토해낸 그 영혼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블루 엔젤”은 총 여덟 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제 1권에는 “남자의 가을”, “타키트”, “지옥의 주 아보푹”,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들”이, 제 2권에는 “푼수만세”, “아귀의 노래”, “인간냄새”가 제 3권에는 “정의의 사도”가 수록되어 있다. “블루엔젤”의 소재는 매우 다양하다. 여덟 편의 에피소드는 주인공인 하지란만 같을 뿐, 각기 다른 양상의 범죄가 존재한다. 이 중에는 스토킹, 납치강간, 살인, 절도, 조직 폭력, 교차살인 등 수위가 높은 강력 범죄도 있지만, 불륜을 의심하여 친구남편의 뒤를 미행했다가 푸근한 진실을 알아내는 “타키트”같은 에피소드라던가, 청소년 선도 일을 하고 있는 어느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의 미담을 소개하는 “푼수만세”같은 에피소드도 있다. “블루 엔젤”은 이현세의 작품 세계를 알고 싶다면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할 대표작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