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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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의 새벽

“영웅이 없는 사회는 신화가 없어진다. 신화가 없는 시대는 희망이 없는 시대다. 희망이 없는 암흑의 시대에서 우리들은 잃어버린 영웅을 찾아 빼앗긴 신화를 찾아야 한다.” -작가의 말 中에서 한국의 대표 만화가 이현세의 명작 중 하나인 “카론의 새벽”은, 일제시대...

2010-08-24 석재정
“영웅이 없는 사회는 신화가 없어진다. 신화가 없는 시대는 희망이 없는 시대다. 희망이 없는 암흑의 시대에서 우리들은 잃어버린 영웅을 찾아 빼앗긴 신화를 찾아야 한다.” -작가의 말 中에서 한국의 대표 만화가 이현세의 명작 중 하나인 “카론의 새벽”은, 일제시대 친일파들의 조직인 ‘극진회’가 한국 현대사의 어두움 속에서 다시금 부활, 현재까지도 악(惡)의 뿌리로 활동하고 있다는 설정 하에, 그들의 무시무시한 힘에 의연히 맞서는 ‘현대판 무사(武士)’들의 활약을 다룬 액션극화다. 작품의 주인공인 오혜성과 그의 형 오영웅은 둘 다 경찰로, 오영웅은 경찰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현장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운 엘리트고, 오혜성은 대학생 시절 자신의 애인이 눈앞에서 강간당해 죽는 참극을 경험한 후 대학을 중퇴, 경찰에 투신한 의기 넘치는 청년이다. “카론의 새벽”은, 고아원에서 같이 자란 우애 깊은 형제가 ‘경찰과 테러리스트’로 맞서게 되는 비극적 운명을 차분히 풀어나가면서도, 대한민국의 밤을 지배하는 거대 조직 “Z”를 파헤치는 형제의 활약상을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로 구성해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이현세 작품의 ‘핵심정서’라 할 수 있는, 주인공 오혜성의 ‘비극성’은 이 작품에서도 처연히 빛을 발한다. 작품 초반에 오혜성이 겪게 되는 사건들은 일반인의 수십 배에 달하는 고통과 슬픔이며, 그가 법의 무력함과 사회정의에 실망하고, 악(惡)에 대해 끝없는 증오를 갖게 되는 필연적 이유가 비장하게 그려진다. 중반에는 오혜성에게 시련을 극복하기위한 ‘특별한 인연’이 만들어지고, 그의 활약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작품 결말에 이르면 그는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악당들의 음모에 의해 비장한 최후를 맞게 되는데, 이런 식의 씁쓸한 결말은 이현세 특유의 ‘중독될 수밖에 없는 비극의 정서’를 생성해낸다. “카론의 새벽”은, 이현세가 작품을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한 대표작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현세는 “카론의 새벽”을 통해 점점 고도화되고 치밀해지는 ‘범죄’의 양상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법을 조롱하며 권력에 빌붙어 약자를 짓밟는 조직범죄에 당당히 맞서는, ‘의로운 영웅’을 창조해 낸다. 교도소에 들어간 오혜성이 기연을 얻어 ‘합기유술’을 배우고, 그를 통해 ‘무사’로 거듭나는 과정은 현대판 무협지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지만, ‘극진회’라는 현실성 있는 악역을 오혜성의 반대편에 배치함으로써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구조적 모순에 정면으로 메스를 가한다. 또한 작품에 깊이를 더해주는 요소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형제의 비극적 운명’이다. 드라마의 큰 축을 이루는 오혜성과 오영웅의 이야기는, 이현세가 극의 흐름 속에 적절히 배치한 다른 캐릭터들과 절묘하게 어울리면서 작품의 서사적 구조를 탄탄하게 만든다. 원작자는 작화가인 이현세와 함께 “아마겟돈”, “남벌”을 만들어낸 야설록이며, 1995년 이 작품을 원작으로 최민수, 이경영 주연의 “테러리스트”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평단의 좋은 평가와 더불어 흥행에도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