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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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벌 개정판 (南伐)

“마루쿠(MALUKU). 일명 몰루카 제도로 불리는 이곳이 바로 문제의 17공구입니다. 이곳은 그 동안 대한민구의 석유개발공사와 인도네시아 국영석유가 합작하여 시추해 오던 유공(油孔)으로써 약 10만 평방 킬로 지역에 방대한 석유가 묻혀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것...

2010-08-19 석재정
“마루쿠(MALUKU). 일명 몰루카 제도로 불리는 이곳이 바로 문제의 17공구입니다. 이곳은 그 동안 대한민구의 석유개발공사와 인도네시아 국영석유가 합작하여 시추해 오던 유공(油孔)으로써 약 10만 평방 킬로 지역에 방대한 석유가 묻혀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 일본이 사용하는 양으로 환산한다면, 대략 50년 이상을 쓸 수 있는 양이 될 정도입니다. 문제는 그 동안 우리 일본이 이 유전의 채굴권을 얻기 위해 일급 인도네시아 고급 정부 관리와 계속 접촉을 해 왔습니다만 최근 이 관리가 수뢰사건으로 실각함에 따라 채굴권 계약이 전면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두 가지 뿐입니다. 전면 재발된 중동전으로 인한 석유 위기를 앉아서 당하느냐, 아니면 직접 나서서 석유를 가져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 만화계에서 이현세와 야설록의 이름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들이 긴 세월동안 발표해 온 주옥같은 작품들과 그 작품들이 문화계 전반으로 파급시킨 산업적 영향력이 그만큼 지대하기 때문이다. 이현세는 “공포의 외인구단” 하나 만으로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만화가이며, 야설록(본명 최재봉)은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비롯, 수 십 편의 흥행작을 집필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협소설가이다. 이들 두 분야의 정상이 만나 한국 만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걸작을 하나 발표하게 되는데, 1993년 7월부터 1994년 11월까지 일간스포츠에 연재되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남벌”이다. “350년 전 똑같은 근심 속에 북벌(北伐)을 결심하셨을 효종대왕의 뜻을 기리어...남벌(南伐)로 해 주시오.” 야설록이 스토리를 쓰고 이현세가 작화를 맡은 “남벌(南伐)”은, 작품이 내포한 여러 가지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과도한 민족주의, 남성 중심적인 시각, 여성비하 표현 문제 등등)들 때문에 한 때 ‘이 작품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지만, 이런 민감한 사안을 차치하고서 순수하게 ‘작품’만으로 평가해본다면, “남벌(南伐)”은 한국 만화계에 두 가지의 큰 흐름을 제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나는 만화라는 장르가 문화산업 전반적인 영역에서 새롭게 조명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허구의 세계에 창작 기반을 두고 있던 만화라는 장르를 현실세계로 끌어들여 작품화시킨 것, 즉 팩션(Faction) 장르를 대중에게 알린 시발점이 되는 작품이라 하겠다.(물론 그 전부터 이런 식의 상상력은 다른 작가나 다른 작품들에도 많이 있어왔지만, 신문매체를 통해 만화에 별 관심 없었던 일반인들에게도 ‘극화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은 이것이 효시가 아닐까 한다) 쉽게 말하면, 어두운 만화방 구석에서 주로 소비되던 만화라는 장르를 밝은 세상으로 끌어올린 대표작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가상전쟁을 소재로 한 이 뜨겁고 치열한 만화는 주인공인 오혜성을 재일교포 2세로 설정함으로써 그 극적인 재미를 극대화시켰고,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먹힌다는 설정, ‘가족애’와 ‘민족주의’를 아주 적절히 결합시킨 수작이다. 다크북 출판사를 통해 총 여섯 권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으며, 이현세 작가가 예전에 부족했다 생각했던 부분을 추가로 새로 그린 수많은 페이지가 곳곳에 보충되어 있어 “진정한 개정판”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영화사 도앤모 픽쳐스는 지난해 7월 이 작품의 판권계약을 체결하고 200억 규모의 블록버스터로 영화제작에 돌입한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