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화가 주베의 기묘한 이야기
“벼룩과 쥐의 피해를 막고 지켜주는 데와지방 고양이 사당의 정기가 담긴 전천후 고양이 그림이니까요.” 요즘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청소년들에게도 인기 있다는 일본만화 “나츠메 우인장”을 읽으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순정만화, 그 중에서도 특히 환타지 만화가 ...
2010-08-12
석재정
“벼룩과 쥐의 피해를 막고 지켜주는 데와지방 고양이 사당의 정기가 담긴 전천후 고양이 그림이니까요.” 요즘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청소년들에게도 인기 있다는 일본만화 “나츠메 우인장”을 읽으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순정만화, 그 중에서도 특히 환타지 만화가 ‘감수성’이 많이 바뀌고 있구나 하는 점이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여성 작가들이 그리는 환타지 만화들은 일본이건 한국이건 스케일이 크고, 서사적이며, 거대한 운명에 휘말린 주인공들의 인생여로를 묵직하게 담아내는 스타일들이 많았다. 이런 류의 만화들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캔디”나 “베르사이유의 장미”같은 70년대 만화까지 굳이 그 원인을 찾지 않더라도, 어쨌든 그 시대에는 그런 묵직하고 서정적인 이야기가 먹혔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오면서 여성작가들의 감수성이 많이 바뀐 것 같다. 거대하고 묵직한 이야기보다는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많아졌고, 서사에 집중하기보다는 스타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주인공들도 운명에 맞서는 스타일보다는 환경에 순응하며 튀지 않고 살아가는 스타일들이 더 인기가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시대가 변한 건가? 아니면 시장을 구성하는 독자들의 취향이 바뀐 것일까? 참으로 궁금하지만 난 학자가 아니므로 이런 일은 다른 전문가 분이 밝혀주길 바라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쨌든 요즘의 취향은 이런 류의 ‘소소한 감수성’이 대세란 사실이다. “가족이 없어졌는데 앞이 보이게 됐다고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고양이 화가 주베의 기묘한 이야기” 역시 “나츠메 우인장”처럼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감수성을 베이스로 깔고 잔잔한 환타지를 보여주는 ‘일상 속의 순정 환타지’다. 작품 배경이 에도 시대라는 것만 빼고는 ‘요즘의 대세’를 잘 따라가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우연하게도 “나츠메 우인장”의 주인공 곁에 고양이 요괴가 붙어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렇다) 작품 자체의 설정은 간단하다. ‘이 것 저 것 다 잘 그리는데 사람만 잘 못 그리는’ 화가 주베는 거리 곳곳을 돌며 쥐 퇴치용 고양이 그림을 그려주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그의 곁에는 항상 퉁퉁하게 살이 찐 고양이 요괴 니타가 따라다니며 그림의 마지막에 숨결을 불어넣어 눈동자를 넣어주면서 그림에 ‘영혼을 입힌다.’ 즉 고양이 화가 주베가 기본을 그리면 고양이 요괴 니타가 화룡점정을 한다는 얘기다. 이 둘은 사이가 좋은 듯 나쁜 듯 알 수 없는 기묘한 동업자 관계로 요괴인 니타는 말도 하고 신통력도 곧잘 부린다. 이 작품은 주베와 니타가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명의 사람들과 그들과 인연을 맺은 고양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소소한 환타지로 마무리한다. 가령 눈이 멀게 된 주인을 위해 자신의 한 쪽 눈을 주고 사라져버린 고양이라거나 자신의 주인이 짝사랑하는 여자와 주인을 맺어주기 위해 신통력을 부리는 고양이도 등장한다. 현재 한국어판은 2권까지 나와 있는데 이런 류를 좋아하시는 독자라면 추천한다. 심심한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