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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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의 숲으로

“우리 학교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창고처럼 방치된 구교사가 있는데, 미화위원들이 그 주변을 맡아 청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인기척이 없고 으스스해서 모두 당번을 맡길 꺼리는데, 내가 당번이 된 요 며칠간, 출입금지인 구교사에서 기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2010-08-07 석재정
“우리 학교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창고처럼 방치된 구교사가 있는데, 미화위원들이 그 주변을 맡아 청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인기척이 없고 으스스해서 모두 당번을 맡길 꺼리는데, 내가 당번이 된 요 며칠간, 출입금지인 구교사에서 기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일본 작가 미도리카와 유키의 단편집 “반딧불이의 숲으로”가 한국어판으로 출시되었다. “나츠메 우인장”이란 작품으로 애잔한 느낌의 독특한 퇴마만화를 선보이며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 작가의 첫 단편집이어서 무척 기대가 된다. “시마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게 잔뜩 있는데, 적어도 시마가 이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나와 함께 있어 줄 수 없을까?” “반딧불이의 숲으로”는 사계절을 상징하는 네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단편 “꽃노래가 흐른다”부터 “반딧불이의 숲으로”, “나뭇잎 빙글빙글”, “하루하루, 깊이” 로 이루어진 이 작품집은 미도리카와 유키가 “나츠메 우인장”에서 선보인 애잔한 느낌의 감수성이 더욱 진하게 묻어나는, 잘 만들어진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인간의 몸에 닿으면 사라져 버려” 첫 번째 단편 “꽃노래가 흐른다”는, 손을 다쳐 더 이상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기타를 칠 수 없게 된 남학생에게, 우연히 반해버린 어느 여학생의 가슴앓이를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자신이 사랑했던 소중한 것을 잃고 싸움과 반항으로 허무한 시간을 보내는 남학생 후지무라와 그런 그를 보면서 서서히 자신의 마음을 빼앗겨 버린 여학생 시마의 애틋한 연애이야기가 이 단편의 줄거리다. 후지무라가 다친 손으로 어색한 음색을 내며 기타를 치면서 시마에게 고백하는 마지막 장면이 읽는 이에게 포근함을 전해준다. “절대로 날 만지지마” 두 번째 단편 “반딧불이의 숲으로”는 작품집의 제목으로 올라있을 만큼,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수작이다. 인간의 몸에 닿으면 소멸해버리는 남자 요괴와 어린 시절 우연히 그에게 도움을 받은 소녀가 매년 여름을 그와 함께 보내면서 서서히 사랑을 쌓아나가는, 이 쓸쓸한 판타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뭉클할 정도로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나츠메 우인장”의 작가답게 요괴와 인간의 사랑이야기를 애잔하고 감미롭게 표현하면서 천천히 감정을 쌓아나가다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독자의 가슴에 먹먹한 여운을 남기는 결말을 선택함으로써 읽는 이를 잠시 침묵하게 만든다. 세 번째 단편 “나뭇잎 빙글빙글”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해 온 남학생에게 진심을 전달하지 못하고 ‘닌자’ 흉내를 내면서 그의 주위를 맴도는 활달한 여학생의 이야기이며, 네 번째 단편 “하루하루, 깊이”는 부모의 이혼으로 헤어졌던 친오빠와 고등학생이 되어서 다시 만나게 된 여동생이 그를 오빠가 아닌 남자로 바라보게 되는 조금은 위험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