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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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의 사나이

“돈이라는 건 사람의 피와 땀을 먹으면 먹을수록 가치가 있지.” “파랑새를 찾아서”, “기업사냥꾼 미사키”, “돈이 울고 있다”, “행복한 시간” 등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일본작가 쿠니토모 야스유키의 작품 “100억의 사나이”는, 생각 없이 선 보증...

2010-07-24 석재정
“돈이라는 건 사람의 피와 땀을 먹으면 먹을수록 가치가 있지.” “파랑새를 찾아서”, “기업사냥꾼 미사키”, “돈이 울고 있다”, “행복한 시간” 등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일본작가 쿠니토모 야스유키의 작품 “100억의 사나이”는, 생각 없이 선 보증으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100억 원의 빚을 지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알겠나? 이거만은 기억해 둬, 무슨 짓을 해도 나한테서 도망갈 수는 없다. 평생 걸려 돈을 갚게 할테니...” 쿠니모토 야스유키는 우리나라 식대로 표현하면 “성인만화가”다. 그의 작품은 표현수위도 매우 높고(야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이야기 자체도 사회적인 문제들이나 직장생활에 관한 스토리이며, 극의 반전도 지극히 ‘성인스럽다’. “내 인생...100억에 사주십쇼!” 이 작가의 장점이자 단점은, 스토리 구조가 너무 ‘뻔하다’는데 있다. 이 작가의 만화 중에 아주 독특하거나 아주 센세이셔널한 작품은 없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며, 이 평범한 주인공들이 갑작스러운 사건이나 인연을 만나 인생에 큰 변화를 겪는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행복한 시간”은 가족도 회사도 아무 문제없던 샐러리맨이 불륜에 빠져들며 모든 것을 잃어가는 이야기이고, “기업 사냥꾼 미사키”도 어느 날 갑자기 정리해고의 위험에 노출된 샐러리맨이 여러 가지 인연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다. “돈이 울고 있다”는 은행에 다니던 은행원이 거품경제의 여파로 자회사인 소비자 금융으로 떠밀려 가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작가의 작품은 ‘흡입력’이 있다. 아주 특별하거나 신선한 이야기도 아닌데, 어느 정도 세상을 겪어 본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겠군’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책장을 넘기고 있는 것이다. 요소요소에 배치한 야한 장면도 한 몫 하겠지만, 단순히 그런 요인만으로 이 작가의 작품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돈이란 건 여러 가지 힘이 있지, 때, 장소, 타이밍...모든 요소가 돈에게 힘을 부여하지, 살아있는 돈을 다룬다는 건 그런 것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것이고, 만화에서 “자연스럽다”는 것은 “흥행공식”을 잘 따르고 있다는 말도 된다. “샐러리맨”들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라는 “시마 과장”은 이런 류의 만화들에게 기본적인 흥행공식을 몇 가지 잡아주었는데, 사실적인 묘사, 적절한 인연이나 사건 배치, 도를 넘어서지 않는 자연스러운 해결법, 야한 장면을 삽입하는 타이밍을 맞출 것 등등 정도일 것이다. 어쩌면 ‘너무 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쿠니모토 야스유키는 이런 성인만화의 흥행공식을 완벽히 마스터한 달인일지도 모른다. 그의 이야기에는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존재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