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인생
“저 강아지는 네가 돌보지 않을 뿐이지 누가 뭐래도 네 거야, 저 애들은 강아지에게 밥을 주겠지만 너는 생명을 구했잖아.” 아홉 살, 그저 세상이 넓고 푸르게만 보이다가, 세상엔 어느 정도의 차가움과 부조리도 존재하는 곳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하는 나이, ...
2010-06-29
유호연
“저 강아지는 네가 돌보지 않을 뿐이지 누가 뭐래도 네 거야, 저 애들은 강아지에게 밥을 주겠지만 너는 생명을 구했잖아.” 아홉 살, 그저 세상이 넓고 푸르게만 보이다가, 세상엔 어느 정도의 차가움과 부조리도 존재하는 곳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하는 나이, 부모님의 품을 떠나 처음으로 학교라는 사회생활을 경험해 보는 나이,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을 어느 정도 구분해 가는 나이, 꿈과 현실이 서서히 뒤섞여 가는 나이....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다. 세월이 흘러 누구나 어른이 되면 그저 아름다웠던 기억으로만 추억하게 되는 그 시절은, 사실 아홉 살의 당사자에게는 굉장히 차갑고 두려운 시기다. 자신의 뜻대로만 되는 일은 없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는 나이이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면 남들과 싸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나이이기도 하며, 사회라는 것의 법칙을 또래 애들과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혼자서 당당히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 그 때 처음으로 배우게 되는 나이다. 그런데 왜,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면 힘들었던 그 시절이 아름다웠다고 추억하는 걸까?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힘들어서? 어른이 되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짊어지게 되어서? 상상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감수성이 없어져서?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지만, 난 아직도 왜 그런 건지 그 해답을 발견하지 못했다. “할머니도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 거야.” 여기에 소개하는 이희재의 “아홉 살 인생”은, 소설가 위기철의 장편소설 “아홉 살 인생”을 만화로 각색한 것으로 1993년~94년에 월간 소년중앙에 연재하였던 것을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한 것이다. 1960년대 우리나라 산동네의 풍경을 이희재 특유의 사실적이며 정감어린 시선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은, 모두 다 어려운 사람들뿐이지만 서로 보듬고, 부대끼면서 살아가고 있는 산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인공인 아홉 살 여민이의 시선으로 담담하고 잔잔하게 그려낸 수작(秀作)이다. 부모님 없이 누나와 단둘이서 살아가는 배고픈 아이 기종이, 20년도 넘게 아들을 기다리다 외롭게 죽어가는 토굴 할매, 부잣집 딸에 새침데기며 특유의 내숭으로 여민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소녀 장미, 골목대장 검은 제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짝사랑에만 괴로워하고 있는 청년 ‘골방 철학자’, 무허가 주택을 지어놓고 달마다 나타나서 주민들을 괴롭히는 뚱딴지 영감,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한쪽 팔을 잃고 고물상을 하는 외팔이 하상사 등등 인간냄새 물씬 풍기는 등장인물들이 작품 곳곳에 등장해, 어려웠던 그 시절 우리네 이웃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표출해 낸다. 원작소설인 위기철의 소설 “아홉 살 인생”은, 이희재의 손에 의해 동명의 만화로 탄생되었고 2004년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