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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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만연애

“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라고 말하지만- 그런 갑자기도 없이 그냥 지나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나.” 남녀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랑은, 때론 로맨틱하게, 때론 퇴폐적으로 여러 작품 속에서 그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또 다른 형태 ...

2010-06-26 석재정
“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라고 말하지만- 그런 갑자기도 없이 그냥 지나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나.” 남녀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랑은, 때론 로맨틱하게, 때론 퇴폐적으로 여러 작품 속에서 그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또 다른 형태 중 하나’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우리나라 소설 중에 이런 형태의 사랑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문열의 “레테의 연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의 형태가 어떻든 간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랑’에 대한 불편한 선입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남자의 나이가 많던, 여자의 나이가 많던 간에 이런 형태의 사랑은, ‘사랑은 비슷한 또래들끼리 하는 것이 좋다’는 주류의 사고에 밀려 언제나 이질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요즘 사회적으로도 연상연하 커플이 유행하고, 얼마 전 대한민국의 남성들에게 ‘여신(女神)’으로 추앙받던 여배우 이영애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재미교포와 결혼하여 많은 화제를 뿌렸다. 어떤 때에는 ‘능력’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범죄’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랑의 형태를 해석하는 잣대는 정말 다양하다. “쿠로세 카즈미(29) 여자도 없이 어느덧 훌쩍 29년, 어느덧 훌쩍 29년이라....”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미만연애(未滿戀愛)”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 보면, 대한민국에서는 ‘범죄’ 또는 ‘원조 교제’라고 불리며 감옥에 갈지도 모를, 위험한 형태의 사랑이다.^^ 주인공인 쿠로세 카즈미는 미소녀 게임이나 에로 게임 등을 개발하는 조그만 게임회사의 프로그래머다. 나이는 29살, 회사동료 누구나 인정하는 이 업계의 베테랑이자, 이 세상에 나온 미소녀 게임은 모두 통달했다고 할 만큼 이 분야의 전문가(?)다. (오타쿠란 얘기다^^) 매일 매일을 의미 없이 무료하게 회사 컴퓨터 앞에서 보내던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상큼하다 못해 ‘위험한’ 만남이 찾아온다. 저녁을 먹으려 혼자 들어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쿠로세를 자신과 소개팅하기로 한 남학생으로 착각한, 귀여운 여중생이 다짜고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것이다. 귀엽고 순수한 여학생 오자와 토모에는, 중학교 1학년, 우리나라 나이로 하면 13살이다. 무려 16살 이상의 나이 차를 뛰어 넘어, 29살의 쿠로세는 갑작스럽고 싱그러운 형태의 감정에 자신의 가슴이 마구 뛰는 것을 느낀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쿠로세는 위험한 선택인줄 알면서도 토모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그때까지 무채색으로만 보이던 무료한 하루가 토모에를 만나고 부터는 환하고 싱그러운 색깔로 바뀌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착각한 사람이 친절한 분이라서!” “미만연애(未滿戀愛)”에서, 무언가 어둡고 음습하며 야한 이야기들을 기대했다면, 일찌감치 그런 되먹지 못한 기대를 접는 것이 좋다. 이 작품은 “원조교제”라거나 “금단의 사랑”같은 퇴폐적이고 비도덕적인 이야기를 선보이는 만화가 아니다. 사는 것 자체가 무료하고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하던 무미건조한 남자가, ‘상큼하고 싱그럽고 귀여운’ 소녀를 만나서 서서히 변화해가는 모습을 담은, 가벼운 코미디 물이다. 표지가 무척이나 깜찍하고 예뻐서 샀는데, 내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일본 만화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도처에 살아 있다고 할까? “내 머리를 보고도 징그럽다고 말하지 않는 소녀... 천사 강림!” “미만연애(未滿戀愛)”는 아직 1권밖에 나오지 않아서 자세한 평을 쓰기가 좀 그렇지만, 앞으로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기대되는 작품이다.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삼십대가 되면,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쉽게 감동받지 않고, 세상의 부조리함을 봐도 ‘저건 내 일이 아니야’라고 외면하기 일쑤다. 삶에 있어 아무런 재미도, 의미도, 감동도 없다는 것, 그것만큼 심각한 우울증은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남자 직장인들이 이런 이유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매 에피소드마다 ‘설렘’을 준다. 특히나 공감 갔던 부분은, 토모에에게 귤을 주기 위해 교문 앞에 서있던 쿠로세가 누군가의 신고로 파출소로 끌려가 혼자서 생각하는 부분이다. 자신의 행동이 순수한 아이에게 겁을 주었으면 어쩌나, 자신의 처지와 직업 때문에 순수한 마음을 오해 받으면 어쩌나, 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왠지 모르게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무미건조한 남자 쿠로세에게 토모에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거대한 변화”다. ‘그 소녀를 한번만 더 만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는, 무료하던 쿠로세의 일상에 서서히 변화를 가져 오기 시작한다. 그 소녀가 주는 상큼함과 싱그러움은 아무런 감동도 없던 쿠로세의 삶에 ‘기대’와 ‘설렘’을 심어준다. 토모에를 만나고부터 쿠로세는, 그때까진 아무런 관심도 없던 자신에게 갑작스럽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깔끔하게 면도하고, 깨끗하게 샤워를 하는 아주 자잘한 변화부터 자신의 직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까지, 그야말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긍정’의 힘으로 이어져 쿠로세를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 삶에 활기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음에 또...괜찮다면 또 만나주지 않을래?” “미만연애(未滿戀愛)”의 다음 권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개인적인 소망은 작품의 순수한 의도가 변질되지 않고 쭉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나이가 많은 남자와 미성년자 여중생 사이에서는, 아무런 공감대도 없이 음습하고 더러운 욕구만이 존재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어둡겠는가, 부디 그런 어두운 이야기나 위험한 이야기로 빠지지 않고 지금의 이 좋은 페이스를 계속 이어나가서, 살아가면서 어느샌가 잃어버린 ‘순수함’과 ‘긍정의 힘’을, 삼십대 아저씨들에게 되살아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