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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전선

“나....이강토요...당신은 불운하게도 나를 적으로 만들었소, 웃을 수 있을 때 마음껏 웃어두시오, 이다음 나와 대면해서도 당신이 웃을 수 있다면, 그건 실성해서 웃는 것일 거요.” 허영만의 1986년 作 “퇴역전선”은, ‘재벌’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기업가들이...

2010-06-16 석재정
“나....이강토요...당신은 불운하게도 나를 적으로 만들었소, 웃을 수 있을 때 마음껏 웃어두시오, 이다음 나와 대면해서도 당신이 웃을 수 있다면, 그건 실성해서 웃는 것일 거요.” 허영만의 1986년 作 “퇴역전선”은, ‘재벌’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기업가들이 이강토를 중심으로 다시 모여 회사를 세우고 왕년의 노하우를 살려 재기에 성공, 자신들을 인생막장으로 내몰았던 ‘재벌’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의 기업극화다. “짧은 한국의 기업사는 개발과 성장의 연대를 거치면서 양적 팽창만 거듭해왔어, 그동안 한국경제의 외형적 확대와 자신감의 충만은 현대의 기업인들, 특히 재벌 그룹 기업가들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는 반면, 방대한 기업 경영과 중소기업을 쓰러트려 자기 회사를 만드는 등의 문어발식 확장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지! 이제는 한국의 재벌 기업들도 깊은 반성을 하고...질적 향상과 구조적 체질 개선에 주력하고 있어, 그 얼룩진 과거를 갖고 있는 재벌 기업 중에서도 선두주자였던 부성그룹...그 그룹 총수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겠어?” “퇴역전선”은 허영만의 작품 중 최초로 드라마로 제작된 작품이다. 1987년에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되어 MBC 미니시리즈로 방영되었으며, 그 유명한 김종학, 송지나 콤비의 첫 작품이다. 드라마는 만화에서 설정만 빌려와 허영만의 원작과는 많이 다른 스토리로 진행되는데, 당시 극본을 집필한 송지나 작가와 연출을 맡은 김종학 감독은 “MBC가이드 1987년 9월호”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마땅한 소설이 눈에 뜨이지 않아 결국 만화를 드라마화하기로 했지요. 각색에 참고로 하기 위해 아이아코카, 록펠러를 위시해서 국내의 재벌 총수들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일단 탐독했어요.” - 송지나 작가 “이 작품에는 대기업의 형성 과정에서 몰락한 중소 기업인들이 꽤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복수극은 아닙니다. 뭐라고 할까요… 기업의 정도라고나 할까요? 진정한 기업가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진정한 사회적 야심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들을 제시하고자 노력했습니다.” - 김종학 감독 실제로 드라마 “퇴역전선”과 만화 “퇴역전선”은 비슷한듯 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만화에서는 말 그대로 “만화적 요소”가 많이 돌출되어 있다면, 드라마는 “만화적 요소”보다는 당시 한국의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더 깊이 다가가려 노력한 흔적들이 보인다. “퇴역전선”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누가 뭐라 해도 ‘엔딩’이다. 우여곡절 끝에 부성그룹권회장에게 복수에 성공한 이강토에게, 이번엔 이강토로 인해 자신들의 설 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모여 복수를 선언한다. 끊임없이 서로 물고 물리는 기업계의 비정한 생리를 정면으로 조명한 이 마지막 장면은, 드라마에서는 더욱 더 비정하고 쓸쓸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허영만의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초기작 “퇴역전선”은 총 6권으로 완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