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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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검사 모로하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난 의사가 됐다. 구할 수 없는 목숨도 있는 건 알아...하지만...목숨을 구하길 게을리 한 의사는 절대 용서할 수 없어!” “감사역 노자키”, “법의 정원” 등, 사회의 밑바닥에 깔린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으로 메스를 들이댄 작...

2010-06-12 유호연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난 의사가 됐다. 구할 수 없는 목숨도 있는 건 알아...하지만...목숨을 구하길 게을리 한 의사는 절대 용서할 수 없어!” “감사역 노자키”, “법의 정원” 등, 사회의 밑바닥에 깔린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으로 메스를 들이댄 작품들을 발표함으로써 자신만의 굳건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일본 작가 Shigeru Noda의 신작 “Dr. 검사 모로하시”가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감사역 노자키”에서는, 국가 경제의 핵심인 은행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일본의 버블이 어떻게 붕괴되어 온 국민을 고통의 나락 속으로 빠지게 했는가를 심도 깊은 드라마로 다루었으며, “법의 정원”에서는 민감한 사건을 둘러싼 검찰과 변호사, 판사들의 대결을 긴장감 있게 다루어 이 사회에서 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작품을 통해 증명하였다. 이 작가의 특징은 서민의 시선으로 주류 시스템, 즉 기득권을 바라본다는데 있으며 그의 주인공은 힘이 있거나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항상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근한 느낌의 아저씨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알고도 당해야만 하는 서민들의 억울한 마음을 대변할 수 있으며, 탐욕만을 쫓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향해 그 어떤 이해득실도 없이 냉정하게 비판하는 일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내놓은 신작 “Dr. 검사 모로하시”는 촉망받던 젊은 의사가 부조리한 병원 내의 시스템에 부딪혀 의료사고를 경험한 후 검사로 변신, 의료사고 전문 검사로 병원과 의학계를 둘러싼 치부들에 맞서 검은 부조리를 제거해간다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다.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선택한 길은 의료현장이 아니었습니다. 의료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의료가 도덕성을 잃었을 때 자정작용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도덕성을 잃은 의료는, 백의를 입은 갱과 마찬가지가 됩니다.....이번엔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대변자로서...검찰이 지닌 ‘권력’을 행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의사 모로하시로서도 당신에게 이길 겁니다!” “Dr. 검사 모로하시”를 읽고 있으면 일본과 우리나라가 정말 유사한 점이 많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식민지 시대의 영향인지도 모르지만, 일본의 의료계나 한국의 의료계나 크게 다르지 않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의료 현장에서, 아무런 정보도 없이, 환자들은 그저 의사들에게 목숨을 내맡길 수밖에 없고, 생명을 담보로 한 그 무서운 시스템 앞에서 일개 서민이라는 위치 또는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재는 그저 굴복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의료사고가 빈번히 일어나지만 환자 쪽에서 승소한 경우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희소한 경우이고, 아무리 제도를 보완해도 의사들 같은 전문지식이나 임상 경험이 없는 법관이 누구의 잘못인지 가려낸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비록 만화에서의 설정이지만, 주인공인 모로하시가 배속되게 되는 ‘의료 특별 수사부’같은 기구가 우리나라 검찰에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란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생명’에 관한 문제인데, 같은 인간으로서 ‘의사들의 도덕성’에만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