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81다이버 (81 DIVER)

“장기 대국으로 먹고 사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당연히 장기 프로, ‘프로 기사’, 또 하나는 내기 장기를 생업으로 삼는, 통칭...‘진검사’(眞劍師)!!” 승부의 세계에는 언제나 드라마가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길고 긴 승부라고 말하는 이...

2010-06-04 김진수
“장기 대국으로 먹고 사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당연히 장기 프로, ‘프로 기사’, 또 하나는 내기 장기를 생업으로 삼는, 통칭...‘진검사’(眞劍師)!!” 승부의 세계에는 언제나 드라마가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길고 긴 승부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런 철학적인 이야기 말고 순수하게 ‘승부’만으로 본다면 야구, 축구 권투 같은 스포츠 일체, 바둑, 장기, 체스, 카드 같은 두뇌대결, 맛의 우위를 겨루는 요리대결 같은 것이 있을 것이고 현대 사회에서는 없어졌지만 무사들의 진검대결이라든가, 서부영화에서 나오는 총잡이들의 대결 등도 승부의 세계에 해당될 것이다. 이러한 승부의 세계는, 만화나 소설의 주된 소재로서 활용되어져 왔다. 생명을 걸든, 돈을 걸든, 아니면 자기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걸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떤 것을 걸고 상대와의 승부에 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박진감이 넘치고, 흥미진진하며, 긴장감이 도도하게 흐르는,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드라마와 같다. “내 이름은 스가타, 프로 장기 기사 양성기관인 장려회에서 프로를 꿈꾸다, 그 일보 직전에 프로 기사의 꿈이 깨졌다. 하지만 동네 아마추어에 비하면 신처럼 강하다. 지금은 그냥 이 내기 장기로 하루 벌이를 하고 있다. 프로 기사를 꿈꾸던 자의 비참한 말로가 나다.” 여기 소개하는 만화 “81다이버”는 ‘내기 장기’로 먹고 사는 ‘진검사’라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두는 장기와는 많이 다른 일본의 장기는 규칙이나 운용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만화의 재미를 100% 이해하기엔 다소 부족한 감이 있었으나, 장기를 모르는 독자라도 만화 자체의 재미를 느끼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잘 배려해 만들어진 ‘웰 메이드 승부만화’라 할 수 있다. 이 만화의 소재로 다루어진 ‘진검사’라는 직업은 일본에 실제로 존재하는 직업이라고 한다. 이들은 내기 장기를 통해 생계를 해결하는 일종의 프로 도박사로, 이 만화에 등장하는 몇몇 진검사들처럼 야쿠자를 등에 업고서 큰 액수의 판돈을 걸고 시합하는 진검사도 있으며, 오직 ‘승부’에만 몰두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드라마틱한 진검사들도 있다고 한다. 만화의 제목인 “81다이버”는, 81칸의 장기판을 무대로 장기 자체의 국면에 다이브(dive)하듯 초인적인 집중력을 선보이며 승리를 이끌어내는 주인공 스가타의 닉네임이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진검사들은 각자의 기풍에 따라 독특한 별명을 갖고 있는데, 여자 주인공인 소요는 “아키하바라의 응수사”, 내기 장기 스승인 진노는 “안목의 진노, 니코가미”등으로 불린다. 그 외에도 “인형사 키리노”, “만화가 몬지야마”, “괴물 스미노” 등등 성격과 기풍, 외모도 천차만별인 수많은 진검사들이 등장해 만화의 재미와 완성도를 높인다. “내 대신, 오늘 밤에 ‘진검’을 둬 줘야겠어.” “81다이버”의 장점은 잘 짜여진 스토리에 있다. ‘내기 장기’라는 소재 자체도 매우 훌륭하지만, 장기 이외에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기 장기’를 둘 수밖에 없는 사람들, 즉 각각의 진검사들의 다양한 존재이유가 이 만화의 핵심이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주인공인 스가타가 수많은 승부를 통해 진정한 진검사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다루는 이 만화에서, 스가타가 승부를 통해 맞닥뜨리는 상대 진검사들의 인생, 즉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사연이 하나 둘씩 늘어가면서 이야기 자체에 탄탄한 살이 붙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승부사들의 인생이 충돌하며 서로 간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매개체가 바로 장기다. 81칸의 세계에서 전력으로 부딪히는 두 사람의 존재가 이 만화의 긴장감과 스토리를 유지하는 가장 큰 비법이자 장점이다. “81다이버”에서 진검사들이 승부에 거는 것은 단순히 돈이 아니다. 어떤 이는 팔이나 손 같은 신체의 일부를 걸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예 목숨을 거는 일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직업 자체를 걸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자존심이나 자신이 현재 가장 바라는 것을 걸기도 한다. 주인공인 스가타가 진검사들의 세계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승부의 난이도와 내기조건은 점점 어려워진다. 마치 각 관문의 보스들을 물리치고 최종보스를 향해 달려가는 게임캐릭터처럼 스가타의 승부는 ‘어떤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그러나 6권쯤에 도달했을 때 이 만화는 질적인 변신을 시도한다. 스가타가 단순히 어떤 ‘계기’를 통해 진검사의 세계에 빠져들고, 진검사로서의 ‘스승’을 만나 단련되어 가고, 진검사로서의 품격을 정하는 세 번의 대결이 끝날 때 쯤, 작가는 “귀장회”라는 거대한 진검사 조직을 등장시키며 만화 자체의 이야기 구조를 질적으로 바꾸어 버린다. 작품의 초반부에서 스가타의 변신을 통해 진검사들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다루면서 독자들을 작품에 빠져들게 했다면, 작품의 중반부에 들어서면서부터 스가타 주위에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이 모이게 되고 그 동지들이 공공의 적이라 할 수 있는 ‘귀장회’라는 조직에 도전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방향이 바뀐다. 그리고 이 변화는 아주 성공적으로 작품의 재미와 흥미를 높이는 계기가 된다. “나는 지금 신이 누구인지 찾고 있다. 장기를 두다보면 어쩌다...신의 영역에 들어갈 때가 있지, 신을 만나면 이렇게 말해줄 거야...작작 좀 해, 망할 놈아!!” 이런 류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재미를 선사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작품이라 할 만큼 “81 다이버”는 아주 잘 만들어진 ‘승부’ 만화다. 주인공인 스가타의 실력이 필사의 승부를 통해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고 다양하게 등장하는 진검사들 각각의 개성도 흥미진진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6권 이후에 작품의 전면에 등장하는 진검사 조직 ‘귀장회’와 스가타 동지들의 대결은 만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장르의 잇점을 잘 살려 아주 재미있게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는 남자 주인공인 스가타보다 여자 주인공인 “아키하바라의 응수사” 나카시즈 소요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81다이버” 한국어판은 학산문화사를 통해 현재 13권까지 나와 있다. 일본에서는 동명의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후지TV를 통해 2008년 5월 3일부터 2008년 7월 19일까지 총 11화로 방영되었다. 드라마 외에도 닌텐도를 통해 게임으로도 발매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