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옆에 수유나무가 있다. 매년 수유의 계절이 되면 열매의 무게로 가지가 휘어질 정도다. 하지만 이 열매로 잼을 만드는 것은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했었다. 난 계속 이 수유나무를 무시했었다. 설익은 열매는 떫고 시큼하고, 작은 열매는 씨가 크고 먹기 힘들다. 떫은맛이 없어진 잘 익은 과일은 물렁하니 단맛만 난다. 주변에는 그밖에도 맛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다량의 열매가 땅바닥에 떨어져서 그대로 썩어가기도 한다. 거추장스럽게까지 생각되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 (五十嵐大介) 1969년 사이타마 현에서 태어났다. 타마미술대학교 회화과 졸업. 1933년, 고단샤의 만화월간지 “애프터눈”에 투고한 단편 「하야시가 들리는 날」, 「여전히 겨울」로 사계대상을 수상하면서 만화가로 데뷔했다. 「하야시가 들리는 날」을 제1화로 삼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을 연재하고, 종료 후 토호쿠의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자급자족 생활을 하며 지내게 된다. 2002년 “애프터눈”에 「리틀 포레스트」를, 쇼가쿠간의 만화월간지 “IKKI”에 「마녀」 시리즈를 그리며 활동을 재개한다. 『리틀 포레스트』는 토호쿠에서 지낸 작가 자신의 실제 체험이 여실히 나타난 작품이며, 작중의 요리도 대부분 실재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으로 데즈카 오사무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코모리는 토호쿠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상점 같은 건 없어서 간단한 물건을 사려면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 중심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곳에는 농협의 작은 슈퍼나 상점이 몇 채, 가는 길은 대부분 내리막길이라서 자전거로 30분 정도 걸리고, 돌아오는 길은 어느 정도 걸릴지...겨울에는 눈 때문에 걸어가야 합니다. 천천히 도보로 가면 1시간 반 정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웃 마을의 대형 슈퍼로 가는 모양입니다. 내가 거기에 가려면 한나절이 걸립니다.” [영혼], [마녀], [해수의 아이]로 압도적인 화풍을 선보인 천재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농촌전원생활을 담은 만화 [리틀 포레스트]는, 수채화를 닮은 아름다운 그림 속에 자연과 사람들에 대한 담담하고 섬세한 작가의 시선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매 회 독립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는 옴니버스 형식이 이 작품의 특징인데, 픽션같기도 하고 다큐멘터리같기도 한 매우 독특한 이야기 구조다. 도시에 살던 주인공이 귀향했고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는 약간의 설정은 있지만, 실제의 주인공은 매 회 등장하는 코모리의 자연과 농사, 요리라 해도 무방하다. 그동안 비일상적이고 환상적인 작품 컨셉으로 주목받았던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작품 중 유일하게 사실적인 작품이지만, 이가라시 다이스케 특유의 작화로 표현된,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 숲 속의 동물, 곤충들과 공생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또 다른 의미로 환상적이라 하겠다. “밭에 당근과 샐러리, 생강과 허브 류가 가지런히 자라날 즈음, 우리 집에서는 매년 우스터 소스를 만들었다. 당근, 생강, 고추, 샐러리 잎을 잘게 썬다. 스테인리스 냄비에 물, 다시 국물, 통후추, 미림에 절인 푸른 산호열매, 클로브, 월계수 잎, 그리고 세이지, 타임, 잘게 자른 야채를 넣고 중불에서 졸인다. 반 정도 국물이 졸아 들었을 때, 간장, 식초, 미림, 굵은 설탕을 넣고 1시간 정도 푹 끓인다. 중간에 맛을 보고 남아 있는 잼을 넣거나 향신료를 조금 넣는다. 무명천으로 걸러서 병에 담으면 완성, 이게 바로 우리 집 「우스터 소스」” [리틀 포레스트]는 새로운 형식의 요리 만화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매 회마다 요리법이 자세하게 소개된다. 이 작품 자체가 작가의 실제 농촌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자연에서 얻은 신선한 재료들로 매 회마다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천재적인 작화력’이라 평가받고 있는 이가라시의 그림을 통해 세밀하게 묘사된 요리법은, 초보자도 따라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고, 간간히 개인적인 사연이 얽혀있는 요리에 대한 작가의 담담한 소개는 읽는 이의 입맛을 은근히 자극한다. “말은 믿을 수 없지만 내 몸이 느낀 것이라면 믿을 수 있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일품인 이 작품에서 저자는 자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일본 동북 지방의 산골 마을에 직접 살아본 듯한 대리체험을 맛보게 한다. [리틀 포레스트]의 배경이자 또 다른 주연인 자연은 도시인이 품고 있는 자연에 대한 모습, 즉 휴식처인 셸터나 레크리에이션의 장소가 아니다. 저자는 자연은 그저 좋다고 강조하는 것도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땅을 깨우고 뿌리를 뽑고,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 수확한 작물을 감사하게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나가며 자연이 품고 있는 자그마한 환상 같은 지점을 짚어준다. 집 앞의 수로에 핀 크레송으로 만들어 먹는 아침, 동물들과 경쟁하며 주워 모은 밤 조림, 눈 속에 묻힌 머위를 따서 재워둔 머위된장 등 하나하나의 에피소드에는 실재로 토호쿠 지방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한 저자의 실제 체험이 진하게 녹아있다. 그래서 건조하게 풀어나가는 작물을 키우는 모습, 요리를 해나가는 과정 등 이치코의 생활이 어떤 드라마 보다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터파크 제공 책 소개 글 중에서 발췌 “추위도 소중한 조미료 중의 하나다.” 요즘 한국에서도, 마트에서 유기농 채소가 훨씬 비싸지만 더 잘 팔리고, 복잡한 도시 생활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가 귀농을 하는 젊은 사람들도 늘고 있고, 환경과 생활의 밀접함을 강조하며 ‘자연’에 관한 문제를 이슈들로 다루는 언론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자연을 대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은, ‘사유’가 아니라 ‘실천’에 있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시골에서 자란 나 같은 사람은, ‘친환경 유기농 재배’니 ‘노지재배’니 하는 ‘농사법’이 얼마나 어렵고 귀찮은 일인지 안다. 농약이나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순수하게 인간의 노동력만으로 자연에 맞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귀농”이나 “전원생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어떤 낭만적인 생각이나 행동의 계기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낭만적인 생각보다는 실제적인 힘을 기르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자연은 인간에게 자상하지만은 않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