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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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2,3

“꼬리칸은 어때요? 아직도 사람이 많나요? 짐승 칸에 수천 명을 몰아넣었다는데 사실이에요? 수천 명이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어간다던데....” 프랑스의 그래픽노블 작가 장 마르크 로셰트와 시나리오 작가 자크 로브는 1984년 “설국열차:탈주자”를 발표한다. 모든 것...

2010-05-23 석재정
“꼬리칸은 어때요? 아직도 사람이 많나요? 짐승 칸에 수천 명을 몰아넣었다는데 사실이에요? 수천 명이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어간다던데....” 프랑스의 그래픽노블 작가 장 마르크 로셰트와 시나리오 작가 자크 로브는 1984년 “설국열차:탈주자”를 발표한다. 모든 것이 멸망해버린 지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우고 끝없이 달리는 1001량 열차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심도 깊게 조명하고 인간들 스스로 만들어낸 추악한 사회시스템을 비판했다. 역사를 통해 진리를 배우지 못하고, 끊임없이 과오를 되풀이하며 반성할 줄 모르는, 인류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담은 이 책은, 그래픽노블의 명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1999년 장 마르크 로셰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자크 로브(1932~1990)대신 뱅자맹 르그랑과 다시 짝을 이뤄 후속편 격인 “설국열차 : 선발대”를 발표하고 2000년에는 “설국열차 : 횡단”을 세상에 선보였다. 여기에 소개하는 한국어판은 1,2,3편이 통합된 한 권짜리 책으로 현실문화에서 2009년 8월 발간했다. “1001량의 설원열차, 문명의 마지막 흔적, 열차는 지구 최후의 생존자들을 품에 안고 달린다. 하얀 죽음으로 영원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설국열차”에서는 ‘평등’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부자나 성직자, 정치가, 군인 등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탈 수 있는 “황금칸”과 보통 사람들이 타는 “2등칸”, 빈민들이 짐승보다 못한 환경에서 격리 수용되어 있는 “꼬리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황금칸”에 탄 소수의 사람들은 기름진 식사와 쾌적한 환경 속에서 매일 매일을 쾌락만을 탐닉하며 살아가고 있고, “2등칸”의 서민들은 식사를 배급받으며 여러 무리로 패를 갈라 나름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야만의 습격”사건 이후로 완전히 격리된 “꼬리칸”의 빈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시체를 뜯어먹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지옥 같은 곳에서 매일 매일을 증오에 길들여지며 살아간다. 기차가 멈추면 모두 죽는다는 절박함 속에서 ‘영원히 달릴 수 있는 엔진’은 곧 그 세계의 신(神)이자 생명의 근원이며, 자체 순환시스템으로 식용 쥐를 양식하고 채소를 재배하는 식량 칸에는 군인들이 중무장을 하고 경비를 서고 있다. 고기를 합성해서 끊임없이 생산하는 ‘마마’ 시스템은 관계자 외에는 들어갈 수 없으며, 암토끼를 가진 유일한 인간 라비노프는 ‘생식’을 독점해서 토끼 양식 시스템을 갖추어 놓고 시장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지배자가 되기도 한다. 모든 칸은 신분에 따라 철저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칸막이로 분리된 이 세상은 부자도 천민도 어쩔 수 없다. 유일한 지평선은 열차칸의 벽!” “설국열차”는 모든 문명이 사라져버린 영하 90도의 극한 상황 속에서 열차라는 특수한 조건으로 축소된 인류의 모습을 통해, 현실 속에 만연해 있는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 자본주의라는 경제시스템의 추악함, 민주주의라는 정치시스템의 맹점들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느낌의 이 책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황금칸”과 “꼬리칸”의 극단적인 차이는, 더 이상 만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설국열차”의 풍경은 2009년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의 이 불안정하고 기괴한 불균형 상태가 아무런 개선 없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야만의 습격”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고, 모두가 서서히 질식해가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한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다. “이 개 같은 놈아, 멈춰라! 멈춰!” 끝으로 이 작품에 대한 간략한 정보 하나, “플란더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로 유명한 영화감독 봉준호가 차기 프로젝트로 이 작품을 영화화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봉준호의 독특한 시선으로 각색될 이 예민한 그래픽노블이 어떤 영상으로 만들어질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