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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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남자

2009년 1월, 일본 만화 “꽃보다 남자”의 드라마 한국버전이 전파를 타고 전국의 소녀들의 가슴을 강타할 때만 해도, ‘지후 선배’로 상징되는 “꽃미남” 열풍은 대단했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마초적인 느낌의 남자는 더 이상 시대의 트랜드가 아닌 것처럼, ‘지후 선배’...

2010-05-06 유호연
2009년 1월, 일본 만화 “꽃보다 남자”의 드라마 한국버전이 전파를 타고 전국의 소녀들의 가슴을 강타할 때만 해도, ‘지후 선배’로 상징되는 “꽃미남” 열풍은 대단했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마초적인 느낌의 남자는 더 이상 시대의 트랜드가 아닌 것처럼, ‘지후 선배’를 닮은 섬세하고 가녀린 느낌의 미소년들이 브라운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름이 되자 팬들에게 일명 ‘짐승돌’로 불리는, 거칠고 터프한 느낌의 남성그룹 2PM이 가녀린 “꽃미남”들을 밀어내고 최고의 트랜드로 급부상하였다. 운동으로 다져진 강인한 느낌의 팔뚝과 선명한 식스팩의 복근을 자랑하며, 거친 목소리의 노래와 과격한 안무를 선보이면서 전국의 여성들을 ‘짐승’의 매력에 빠지게 했다. 물론, 2PM이 ‘떳다’고 해서, 섬세한 매력의 꽃미남들이 왕좌의 자리에서 쉽게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샤이니”나 “지후 선배”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결국 2009년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TV 속의 세계는 ‘짐승남’파와 ‘꽃미남’파의 두 세력으로 나뉘었다. 업계에서는 옷을 입고 있으면 섬세하고 가녀린 느낌의 우수에 찬 꽃미남이지만, 옷을 벗으면 ‘짐승’의 거친 느낌이 나는 양면성을 갖춘 남자, 그런 야누스적인 느낌의 남자가 앞으로의 트랜드가 될 것이며, 여성 팬의 마음을 제대로 공략하려면 두 가지의 매력을 모두 갖춘 캐릭터여야 한다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도 등장했다. ‘소녀시대’, ‘카라’, ‘브라운아이드걸스’에 빠져있는 평범했던 남자인 나는,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2PM의 리더 박재범의 출국 사건을 지켜보면서, ‘인기 있는 남성상’의 확실한 ‘분열’을 내 눈으로 처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남자의 조건은 무엇인가? 외모? 재능? 몸매? 능력?...설마 인간성?” 그러나 쉽게 답이 나오진 않았다. 내가 했던 질문은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정해진 답이 없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추성훈’, ‘옥택연’, ‘비’가 좋아? 아니면 ‘강동원’, ‘조인성’, ‘김현중’이 좋아? 라고, 여성들에게 묻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질문은 없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의 판타지를 채워주는 ‘볼꺼리’로서의 남성은, ‘사랑’의 영역이 아닌, ‘취미’의 문제로, ‘취향’의 선택에 관한 엔터테인먼트일 뿐이다. 그럼 남성에 관한 여성들의 진정한 판타지는 무엇인가? 그 고전적인 질문의 답은 “들장미 소녀 캔디”에 이미 존재해왔다. 테리우스냐, 안소니냐, 앨버트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만화에서는 결국 앨버트가 캔디와 맺어지지만, 과연 현실에서는 어떨까? 그 질문에 대한 수많은 갈래의 해답들을, 순정만화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오랜 시간동안 끊임없이 추구해왔고, 그 결과물로서 수도 없이 많은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들이 창조되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천계영의 신작 “예쁜 남자” 역시, 그러한 고전적인 질문에 대해 천계영이 ‘새롭게 도달한 해답’이며, 작품의 남자 주인공인 독고마테는 천계영이 선택한 ‘새로운 판타지’의 상징이다. “돈 많은 게 예쁜 거다.” (주)아이엠닷컴의 서비스를 통해 유료로 연재되는 신작 “예쁜 남자”는, 천계영의 첫 인터넷 연재작이다. “언플러그드 보이”, “오디션”, “하이힐을 신은 소녀” 등의 힛트작을 연달아 만들어낸 천계영이 ‘인터넷 연재’에 도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챙겨보아야 할 작품일 것이다. “독고마테, 29세, 돈과 출세를 위해 성공한 여자들만 유혹하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남자” 천계영의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캐릭터’에 있다. 팬시적인 느낌이 강한 세련된 그림체에 개성 넘치는 주인공들을 매치시킨 그녀의 작품은, 수많은 여성 독자들을 판타지의 세계에 빠져들게 했고, 그러한 재능이 최고의 빛을 발한 “오디션”같은 작품은, 순정만화 팬들에게 오랜 시간동안 뜨겁게 사랑받으며 하나의 트랜드를 만들어낸 명작으로 칭송되어진다. “여자들이 사랑하는 순정만화 주인공들에겐 울퉁불퉁한 근육 따윈 없어, 오히려 매끈한 살결, 다부지면서도 호리호리한 체격, 키는 기본이 187, 재벌 2세이면서도 왠지 슬픈 영혼...” 이번에 올컬러로 야심차게 시작한 인터넷 연재작 “예쁜 남자”는, “꽃미남 전성시대”라는 요즘의 세태를 작품에 그대로 반영한 설정에, “멋진 왕자님과 평범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라는 전통적인 순정만화 흥행공식을 결합한, 재미있는 작품이다. “어차피 오빠는 너무 과분한 존재, 잊자, 잊고 다시 시작하자.” 작품 소개란에 보면, “돈과 출세를 위해 성공한 여자들만 유혹하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나쁜)남자, 그가 만날 10명의 여자들 중 제 1녀는 ‘돈 많은 여자’, 그가 앞으로 사랑하게 될 상대는 과연 무엇을 가진 여자들일까?” 라고 이 작품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한 명의 남자 주인공이 열 명의 ‘가진 여자’들을 만나면서 ‘무언가’를 얻게 되는 설정이란 것인데, 1권을 읽어본 결과, 이 작품의 장르를 굳이 구분하자면, “로맨틱 코미디”다. 그렇다면 “예쁜 남자”라는 작품은, 독자에게 어렵고 심각한 정서를 전달하는 작품이라기 보단, 독자가 쉽고 재밌게 깔깔거릴 수 있는 편안한 길을 선택한 작품인 것 같다. 독자들은 너무나도 대비되는 남녀 주인공을 지켜보면서, 1화부터 작품의 방향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 아예 ‘김보통’이다^^) 남자 주인공인 독고마테는 옛날 말로 하면 ‘제비’고, 요즘 말로 하면 ‘호스트’다. 1권 말미에 ‘거대 유통 기업 회장의 서자(庶子)’라는 새로운 설정이 나오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돈이 있는 동안에는 정말로 예뻐 보입니다, 그러니 돈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라는 독백을 통해 그의 지향성과 성격을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천계영은, 자신이 독자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를 트랜디한 감성으로 무장한 만화적 재미 속에 철저히 숨겨온 작가다. “예쁜 남자” 역시 그런 작품이 되길 바란다. 1권만으로도 ‘재미’는 충분히 입증한 셈이고, 다음 권부터는 본격적인 ‘의미’가 담긴 작품이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