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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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몸

“여자들은 대개 앞 다투어 웃는 얼굴을 보여, 카메라를 들이대면 특히 더, 웃는 녀석이 제일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조금은 특이한 느낌의 옴니버스 단편집을 찾았다. 제목은 “상냥한 몸”, 야스나가 치스미라는 일본 작가의 ‘몸’을 테마로 한 단편집인데, 매우...

2010-05-01 석재정
“여자들은 대개 앞 다투어 웃는 얼굴을 보여, 카메라를 들이대면 특히 더, 웃는 녀석이 제일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조금은 특이한 느낌의 옴니버스 단편집을 찾았다. 제목은 “상냥한 몸”, 야스나가 치스미라는 일본 작가의 ‘몸’을 테마로 한 단편집인데, 매우 독특한 느낌의 표지 일러스트와 아주 잘 어울리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 구입해보았다. “진짜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 시선을 기록하고 싶어하거든, 그거 모르지?” 이 작품집은 매우 특이한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 회마다 다른 인물들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전 회에 등장했던 인물이나 조연들이 다음 번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연출방식이다. 모든 에피소드의 소재는 ‘몸’이다. 손이나 발, 목, 눈, 머리카락, 이마 같은 신체의 일부분이나 땀이나 미소, 체취 같은 신체와는 조금 다른 부분도 이야기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사랑으로 서로 통하면 웃는 얼굴 같은 확인은 필요 없을 거야, 미국인이 늘 생글거리는 이유지, 하긴 무리겠지만” 소재도 특이하고, 등장인물들이 계속적으로 엮여나가는 구성방식도 아주 참신한데, 왠지 모르게 이야기가 매우 어렵다. 이 작가의 감수성이 특이한 건지 아니면 내가 이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판단이 잘 서질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쉽고 직설적으로 이해되는 수월한 작품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 이모가 좋아.” 현재 한국어판으로는 2권까지 출시되어 있는 이 작품은, 1권은 8개의 에피소드, 2권은 9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1권에는 전, 후로 나뉜 에피소드가 두 개, 2권에는 전, 중, 후로 나뉜 에피소드가 한 개 있으니, 정확히 말하면 두 권의 책에 13명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 왜 그래?” 몇몇 에피소드들은 작가가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 정확히 이해가진 않았지만, 1권에서는 ‘코지마 사키’ 편과 ‘코지마 세츠코’ 편, ‘이와타 모토히코’ 편이 꽤 인상 깊었다. 특히 ‘코지마 세츠코’ 편과 ‘이와타 모토히코’ 편은 20여 년의 시간이 서로 엮여진, 인과관계 깊은 이야기로 단편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된 수작(秀作)이었다. 2권에서는 ‘카도사와 에이치’ 편과 ‘이노우에 아즈미’ 편이 괜찮았다. 이 에피소드들도 1권에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들과 마찬가지로, 고교 동창생들의 현재와 과거가 교묘하게 엮여진 단편인데, 아무래도 이 작가는 이런 식으로 교차 편집되는 스타일의 이야기에 꽤나 깊은 재능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