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페달
“자전거로 갈 거예요, 왜냐하면 아키바에 돈 안 들이고 갈 수 있으니까.” 한국의 독자로서 일본만화의 힘을 여지없이 느낄 때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 가지이상의 상이한 소재들을, 탁월하게 결합시켜 매우 그럴듯하고 독특한 설정을 만들어낼 때다. ‘어떻게 이...
2010-04-22
유호연
“자전거로 갈 거예요, 왜냐하면 아키바에 돈 안 들이고 갈 수 있으니까.” 한국의 독자로서 일본만화의 힘을 여지없이 느낄 때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 가지이상의 상이한 소재들을, 탁월하게 결합시켜 매우 그럴듯하고 독특한 설정을 만들어낼 때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지?’라고 할 정도로 돋보이는 이러한 탁월한 결합은, 소년 만화의 힛트작들에서 종종 눈에 띤다. 가령 왕따에 빵 심부름이 학교생활의 대부분인 주인공이 어린 시절부터 폭력과 협박을 피하면서 자연스럽게 단련된 도망가기 기술을 미식축구에 접목시키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더라는 “아이실드 21”이라던가, 어린 시절부터 술 도매상을 하는 집에서 자라나 자연스럽게 술 상자를 나르면서 탁월한 악력을 길러온 소심한 주인공이 유도부에 들어가 전국대회 금메달을 딴다는 “학원 라이벌전”같은 작품들은, 모두 다 ‘스포츠’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약골 주인공들을 내세워 성공한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들의 특징은 주인공에게 자연스럽게 그런 재능이 단련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들이 자신의 성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스포츠’에 입문하게 되는 계기를 ‘천재적 재능’을 지닌 라이벌을 등장시켜 만들어내며, 결론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지닌 천재를 압도하는 건 ‘우정과 용기’를 무기삼아 끊임없이 ‘노력’한 우리의 약골 주인공이라는, 소년 스포츠만화의 ‘정석적이고 도식적인 결론’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런 ‘도식화된 이야기 구조’가 일단 만화로 만들어 내면, 아주 ‘재미있다’는 것이 대부분 독자들의 반응이자 실제로 상당한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힛트작이 된다는 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키바에는 매주 거르지 않고 다녀!” 여기에 소개하는 “겁쟁이 페달”은 자전거를 소재로 한 스포츠 만화다. 위에서 언급한 아주 전형적인 소년 만화의 공식을 이 작품은 따라가고 있는데, 일단 우리의 주인공인 오노다 사카미치는 스포츠와는 아주 거리가 먼(심지어 운동부를 혐오한다) 만화와 게임, 애니메이션에 심취하다 못해 아예 인생이 매몰되어버린 열정적인 오타쿠다. 오노다의 유일한 낙은 새로운 아이템들을 구하기 위해 매주 한번씩 ‘오타쿠들의 성지’ 아카하바라에 가는 것이며, 고교생활에서 바라는 점은 오직 하나, 인원수가 부족해 폐지되어버린 ‘애니연구회’를 부활시켜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과 써클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오타쿠 주인공에게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차비를 아끼기 위해’ 타고 다닌 자전거다. 오노다는 ‘장난감 뽑기’할 돈을 아끼기 위해 매주 한 번씩 아키하바라까지 왕복 90km의 거리를 자전거로 다녀왔다. 또한 그의 집은 말도 안 되는 경사로 이루어진 언덕길 위에 위치해있어 어린 시절부터 ‘아줌마 자전거’로 자연스럽게 단련된 페달실력은 이미 왠만한 사이클부 학생들보다 훨씬 나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신의 이러한 재능과 실력을 전혀 모른 채 그저 오타쿠로 살아가고 있었고 그런 오노다에게 사이클의 ‘천재’ 슌스케가 자연스럽게 ‘계기’를 만들어주면서 오타쿠 오노다의 ‘사이클부’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현재(2010.04) 겁쟁이 페달은 2권까지 나와 있다. 아주 잘 만들어진 ‘재미있는’ 스포츠 만화이고, 아주 정석적인 도식을 따라가기 때문에 매우 ‘안전한’ 소년 만화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