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네가 정하고 말고 할 문제인 줄 알아?! 너, 아무거나 막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고 겁대가리까지 없어진 거냐?! 남들 평생 한 번 올까 말까한 감기기간이 두 번이나 왔으면서...참나...바보니깐 한 번 더 말해주지. 감기기간의 시작은 네가 만들고 폐기했던 것들이 그들 마음대로 돌아오면서부터야, 그것들은 네 의지가 아닌 그들 마음대로 행동하고 마음대로 생각하는, 그야말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엄청난 위험물이 되어 돌아오는 거지, 그걸 감기기간의 균이라고 해.... 방심하지 마, 균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올지 몰라, 네 생물형상화 능력은 더더욱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날뛰는 시기라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폭탄이나 마찬가지야, 만약 네 균들이 악한 마음을 먹거나 도망이라도 간다면 골치 아파지지, 법칙을 아는 녀석이라면...시간을 벌면 벌수록 유리한 걸 알 테니깐 말야, 잊지 마. 방심하는 순간 법칙은 시작된다.” “히싱”, “야야” 등의 작품으로 독특한 자기 세계를 쌓아왔던 순정작가 강은영이 소년만화잡지로 연재매체를 옮겨 변신을 시도했다. 그림체도 확 바뀌고, 스토리와 연출방식도 남자 독자들의 취향을 고려해서 액티브하게 구성했다. 서울문화사에서 발행하는 만화잡지 “점프”에 연재하고 있는 강은영의 신작 “클러우”를 소개한다. “나의 첫 번째 감기기간의 기억은 하나, 피냄새...그리고 비릿한 공포...” 순정만화 작가가 소년만화잡지에 연재를 한다는 건, 상당히 큰 모험이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림체, 소녀들이 좋아하는 그림과 소년들이 좋아하는 그림은 확연히 다르다, 아예 장르가 다르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만화가에게 ‘그림’이란 자신의 정체성과 같은 것이어서 변화를 주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클러우”를 보면서 놀랐다. ‘강은영’이란 작가 이름이 동명이인줄 알았다. 그런데 “히싱”의 강은영이었던 것이다. 1권 초반에 표지부터 컬러페이지, 흑백원고들을 보고 있으면, 일본만화 “데스노트”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그림체가 눈에 들어온다. 캐릭터들의 표정에서 어딘가 ‘순정틱한’ 느낌도 조금 남아 있지만, 정말 이게 “히싱”의 그 작가가 그린 것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다. “히싱”이 총 6권으로 완결된 지 4년이 흘렀다. (2005년 8월) “클러우” 1권이 나오기까지 (2009년 2월) 그 4년 동안 작가는 ‘변화’를 시도했나 보다. 작가의 말에도 근황이나 결심이 써있지 않아서 어떤 계기로 소년 만화 잡지로 오게 되었는지 알 수 가 없지만, 어찌됐든 ‘상당히 노력했다’는 것만큼은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다. “법칙의 첫 번째는! 가장 오래된 형상화는 사라진다!” “클러우”는 SF적인 요소가 가미된 판타지다. 주인공인 이아이는 ‘자신이 머릿속에 이미지한 것을 생물로 형상화할 수 있는 초능력자’다.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이 능력을, 관리하는 조직이 있다. 스스로를 “구세력”이라 부르는 정체불명의 집단은 이아이를 ‘생물형상화자’라 부르며, ‘관리자’를 파견하여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호’라는 명목 하에 감시하고 통제한다. “클러우”는 꽤나 복잡한 작품의 설정들에 대해 독자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고, 갑작스럽게 시작한다. 1권 초반에 ‘감기기간’이라 불리는 이아이의 능력 감소 기간을 관리하기 위해, 조직에서 파견된 관리자 차무와 만나게 하고, 다짜고짜 ‘균’이라 불리는 이형의 존재들과 전투를 시작한다. 이런 식의 급작스러운 전개는, 한마디로 ‘읽어가면서 알아서 적응하라’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작품 초반에 스토리나 설정에 익숙해지기가 힘들었다. 모르는 이야기나 생소한 설정들이 너무 많아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를 정도로 답답했다. 하지만 그만큼 ‘신선하다’는 반증도 된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설정이나 스토리가 아닌 아주 새로운 느낌의 판타지로 다가왔던 것이다. “관리자들은 크거나 작은 능력들을 갖고 태어나는데, 너희 형상화자들이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반면, 우리 관리자들은 사람의 마음, 병, 약점들을 파고들 수 있는 심리나 물체를 이용, 적을 교란, 제거하지, 마구 만들어낼 줄만 아는 너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구, 너희가 돌연변이야.” “클러우”의 설정에 있어 “핵심요소”는, “형상화자”라 불리는 초능력자들과 “관리자”라 불리는 초능력자다. “형상화자”는 물질계통의 초능력자로 ‘자신이 머릿속에 이미지한 것을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자’이기 때문에 상대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거나 물리적인 장치들을 적용시킬 수 있다. “관리자”는 정신계통의 초능력자로 ‘사람의 마음, 병, 약점들을 파고들 수 있는, 즉 심리나 정신 상태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자’이다. 서로 계통이 다른 두 능력자들은 미묘한 상관관계에 놓여 있는데, 아무래도 “관리자”라 불리는 정신계통의 초능력자들이 물질계통의 “형상화자”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듯하다. “클러우”는 단순히 초능력에만 소재를 국한시키지 않는다. 현재 이 초능력자들의 세계는 “구세력”과 “신세력”으로 나뉘어 살벌하게 대치중이다. 이렇게 조직이 양분된 이유는 무언가 거대한 음모나 사정이 있었겠지만, 3권이 나온 지금까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작가가 자세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복잡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클러우”는 재미있다. “표면 이상은 모르지만, 표면이 우두머리로서 관리자들을 부리고 그 아래 관리자가 이어져 있다고 들었어, 얼마 안 남은 형상화자를 신세력파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한다는 얘기도 들었지.” “감기기간”이란, 형상화자의 능력이 갑작스럽게 감소하는 위험한 상태를 뜻한다. 관리자들의 말에 의하면 형상화자의 능력이 ‘응축되는 기간’이라고 하는데, 이 기간이 지나면 형상화자의 능력은 기간 전보다 엄청나게 향상된다고 한다. “클러우”는, 아주 특이하게도, 다른 형상화자들에게는 오지 않는 ‘두 번째의 감기기간’이 온, 생물형상화자 이아이를 두고 “구세력”과 “신세력”이 서로 대립하는 이야기다. 현재 3권까지 발매된 “클러우”는, 초반의 난제만 극복하면 작품에 빠져들어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수작(秀作)’이다. 강은영의 팬들에게는 아주 색다른 선물이 될지도 모르겠다.